퍽퍽살 같은 너

다리살만 있다면 참 좋겠지만

by 그래좋다고치자

나는 퍽퍽살(닭가슴살)을 싫어한다. 고무를 씹는 듯한 식감과 목 넘김은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제대로 넘어가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퍽퍽' 달려줘야 할 때도 있다. 근육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퍽퍽살을 찾아 먹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같은 돈이라면 퍽퍽살 보단 다리살을 먹는 게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불행하게도 다리살로만 이루어진 닭은 없다. 기능에 맞는 '살'들이 따로 있다. 특히 날갯짓을 하는 조류의 경우 가슴 근육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닭은 날지 못하지만 조류는 조류다. 때문에 닭의 가슴 근육은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닭가슴살을 버릴 수는 없다. 무엇보다 버리기 아깝다. 재정적으로 큰 손해다. 모든 부위가 다리살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닭다리를 먹기 위한 신경전 또한 벌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다리살이 나오는 수만큼 그에 못지않은 양의 퍽퍽살이 나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교실 속 아이들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아이들을 닭으로 비유하려니 찜찜한 마음이 들지만) 알아서 잘하는 학생을 다리살에 그리고 지도하기 어려운 학생을 퍽퍽살에 비유해볼 수 있겠다. 한 가지 종류의 살로만 이루어진 닭은 없는 것처럼 '알아서 잘하는' 학생만 있는 교실은 없다. '지도하기 어려운' 학생만 있는 교실 또한 없다. 비율에 차이가 있을 뿐 다양한 아이들이 한 데 섞여있는 곳이 바로 교실이다.



* 한국에서 닭가슴살이 인기가 많지 않은 이유는 한국에서의 닭 요리법이 닭고기를 거의 한 번에 조리하는 것이라 그렇다. 푹 익히거나 바싹 굽는 게 주류인 한국의 요리법으로 하면 닭가슴살의 수분이 다 증발해 자연스레 퍽퍽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부위에 비해 닭가슴살은 빨리 수분이 빠져나가 퍽퍽해져서 따로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다른 부위와 똑같은 수준으로 조리하니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출처:나무 위키)



퍽퍽살이라도 다리살 못지않은 촉촉한 맛을 낼 수 있다. 그에 맞는 적절한 손질법과 조리법만 적용하면 된다. 하지만 '거의 한 번에' 조리하려는 것이 문제다. 이 점은 교육 과정에서 강조하는 '개별화 교육'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교실 속에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아이들이 존재한다. 같은 방식으로 지도하더라도 모든 학생들을 100% 만족시킬 수 없다. 그 어떤 훌륭한 교육 방식이라도 예외는 없다. 하지만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머리로는 알겠는다. 그런데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답답해지는 마음을 달랠 길 없다. 애꿎은 가슴을 '퍽퍽' 친다. 내가 세운 기준을 넘지 못하는 아이들을 다그친다. 왜 이렇게 따라오질 못하느냐고. 정말 아이들의 문제였나? 학생에게 맞는 지도 방법을 적용하기 위한 시도는 충분했다고 말할 수 있나? 교실 속 내 모습을 돌아본다.



요리사는 재료에 맞는 손질법과 조리법을 선택한다. 최상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 아주 세세한 것에도 신경을 쓴다. 비단 요리사에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교사 또한 학생 개별 특성에 맞는 지도 방법을 선택하고 적재적소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 음식을 만들기 위한 '한 가지 요리법'이 없는 것처럼,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한 '한 가지 지도법'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닭가슴살 조리 과정에서 특유의 성질을 없애려는 시도가 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가슴살 자체의 퍽퍽한 식감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개별화 교육이라 할지라도 결국엔, '내가 지도하기 편한 상태'로 만들기 위한 욕심은 아닐지 걱정된다. 학생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학생의 '문제가 되는' 면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다. 동시에 아이들 '특유의' 매력을 찾는 눈을 길러야 한다. 퍽퍽하긴 해도 담백한 맛이 닭가슴살의 매력이라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학생이 가진 다양한 형태의 매력을 기꺼이 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개별화 교육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뭔데?라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교직에 대한 나의 생각을 두루뭉술하게 포장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지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은 곧 행동이 된다는 말이 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과 생각도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생각한다. 앞으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오늘의 글을 떠올리며 다짐하려 한다.



가슴을 '퍽퍽' 치게 만드는 학생을 만났다면 기꺼이 받아들이자.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수정하고 또 도전하자. 실패하더라도 포기만은 하지 말자. 무엇보다 모든 과정을 '즐기는' 교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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