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처음 배운 것

간격 맞추기

by 희윤

나는 대학 졸업반 당시 출판학교인 SBI의 출판디자인반을 통해 디자인을 배웠다. 정확히는 디자인 공부를 위한 기반을 배운 것인데 내가 어떤 것을 더 익혀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졸업하고 취직해버린 것이다.


대학을 다니며 국비지원이란 것이 있는 것도 모르고 부모님의 지원으로 학원에서 툴 다루는 것을 배웠다. 덕분에 기초를 배웠다 생각했으나 툴을 다뤄 디자인을 구현하는 것과 디자인의 이론은 완전 다른 내용이었다.


디자인의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보기 위해 대학교 커리큘럼도 참고했었으나 용어를 막연하게 알아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좋은 선생님들이 꾸려주시는 수업이었는데 그걸 캐치할 머리가 내겐 없었다.


문자의 시작부터 글자가 어떻게 발달하고 이것이 책이 되기까지 책을 보긴 했으나 이것을 창작에 쏟아붓기엔 감각도 시간도 없던 것 같다. 배우고 싶다는 의욕은 있었지만... 잘하지 못하는 날 챙겨줄 사람도 여유도 없었는데 어떻게 하여 취직을 했다...!


처음 작업한 것은 고문서 누끼따는 작업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인디자인 작업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것은 과장님께 불려가 그림과 글의 간격이 둘쭉날쭉하다. 이걸 맞춰야 원고가 정갈하게 보이지...! 하는 내용이었다. 혼났다기보다 처음으로 이정표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내게 간격을 맞추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간격도 못맞추던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겠나. 공부였다. 뭐가 필요한지는 모르지만 디자인 책을 닥치는대로 모으고 구경했다. 알아듣기앤 너무 먼 거 같았건만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났다.


간격을 맞춘다는 것은 그리드와 비슷했다. 사람이 적절하게 느끼는 황금비율이라던가 그리드, 여백 하나씩 연결해나가면서 어느새 나도 그럴듯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간격을 배운 곳은 떠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기억나는 조언이고 나도모르게 후배들에게도 간격만 맞춰도 훨씬 정돈되어보인다는 조언을 하게 됐다.


그리고 사람간의 간격도 중요하다는 것을 크게 배우며 살았다. 너무 가까울 필요도 너무 멀 필요도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간격을 지키며 서로의 범위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생활과 함께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는데 어떻게보면 디자인이랑도 비슷하다. 고유의 속성이 돋보이도록 적절한 간격을 주고 배치하는 것은 중요하니까.


새삼 처음 일을 시작하고 디자인 배우던 때를 생각하니 지금까지 어쨌든 성실히 살아왔다 싶다. 조금 미련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지금까지 잘 공부하고 일해온만큼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겠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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