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알바 달리기

머리 비우고 단순 작업하기!

by 희윤

나는 아무래도 머리는 복잡한데 머뭇대다 실행이 좀 늦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어머니도 항상 일단 하라는 가르침을 내리시곤 하셨다. 결국 완벽하게 계획을 세웠다 하더래도 그대로 지키지 않을 거란 것을 알기에 이도저도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중이었다.


그냥 흘려보냈다기보다... 11월부터 나는 단기 알바에 지원했다.

고등학생 때 잠깐 편의점 알바를 체험한 뒤(2주만 일하고 결국 학생이라 못하게 됐다), 대학생이 되고 카페 알바(였으나 드립커피로 만드는 곳이라 에스프레소추출 커피는 못해봤다), 사무실 비서 보조 알바, 학원 보조강사 알바처럼 이것저것 하긴 했으나 뭔가 내세울만큼 다양하고 많이 해보진 않았다.

그리고 회사 다니면서부터는 마음 속 어디엔가 회사에 다니면서만 돈을 벌어야 한다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백수인 기간에도 알바를 하겠다는 생각은 못해봤다. 그러다 갑자기 어? 왜 안되지? 싶었다.


학원 보조강사 알바를 할 때의 내 업무는 주로 전화를 받아 담당 선생에게 돌려주거나, 세무담당자를 도와 영수증을 노트에 붙이거나, 강의실 오픈 준비를 하고 뭐 그런 것들이었다. 그때 잊혀지지 않는 것중 하나가 DM작업용 단기 밤샘알바를 학원에서 따로 모집했을 때 일하러 온 중년을 향해가는 듯한 여성분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왜냐면 나이가 있는 사람도 알바를 할 수 있구나란 것을 처음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대학생 1이었기에 아직 머리 속이 휘황찬란 꽃밭이었고 뭘 몰랐다. 학생이 일하는게 아르바이트인줄 알았으니까.


갑자기 그때 일이 생각나면서 나도 알바 구인어플을 깔았다. 디자인도 몇 개 있었지만 그쪽은 답이 오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날짜에 일할 수 있다는 단기 알바에 눈이 갔다. 초보도 할 수 있는 거니까...!!! 가보자!!!!!


해서 11월 동안 총 8일 정도 나가 일을 했던 것 같다. 일단 작업이 없다면 비는 날짜에 가기 좋았고, 또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순전히 육체 노동으로 승부보는 거라 그냥 오래 서있어서 다리 아픈 정도? 단순 반복 작업 하는 소근육이 어떻게 분포되어있는지까지 느껴질 정도로 근육통이 찾아온다는 정도?


이 이야기를 들은 사촌은 야, 그래도 니 전문성이 너무...!!! 하긴 했는데 난 그냥 재밌게 일했다. 내가 나간 알바는 주로 아이돌 화보 포장이라고 써있는 곳이었는데 처음 해본 일은 박스 접는 일이었다. 오 알지알지, 여기 위에 판 넣어서 구성품 채워서 래핑한 뒤 나가는거구나. 항상 보던 물건의 공정은 그야말로 사람 손 하나하나 거쳐 만들어지는 수제품이었던 것이다.


박스를 접으면서는 아무 생각도 안 할 거 같지만 생각보다 실없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나는 패키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지만 이게 지기구조구나. 이렇게 서로 지탱해서 튼튼하게 결합이 되는 방식이구나, 여긴 인쇄가 밀렸네, 오시선이나 칼선도 밀리다보니 어떤 건 똑같이 조립해도 모양이 이상할 수 있구나 등등을 하나하나 느껴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아이돌 친구들 앨범도 이런 식이었을까, 그래도 걔네껀 좀 쉬웠을듯... 같은 정말 시덥잖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공단에 있는 밥집들은 다 맛있는 고기 반찬을 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떡갈비랑 제육이었던 거 같다. 두번째 일한 곳의 밥집은 소세지 볶음도 있고 핫도그도 나오는 신선한 구성이었다.


두번째 일한 곳은 앉아서 일할 수도 있던 거 같은데 포지션이 잘못 잡혔다. 또 하루종일 서서 컨베이어 벨트 위에 물건을 쉬지 않고 올려야 하는 작업이었다. 이 컨베이어 벨트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날카롭게 하고 재촉을 하는지 모던타임즈가 왜 아직도 명작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정말 고되고 힘든데... 그래도 재밌긴 했다. 사람들끼리 날카롭게 말하지만 일을 멈출 수 없다보니 말이 그렇게 튀어나온다. 이건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그리고 하루종일 서 있다보니 집에 가는 길엔 술취한 사람마냥 걷는 것도 이상한 거 같았다. 다리가 너무 아프고 허리도 아프니까... 길에서 가끔 보는 옷은 후줄근하고 이상하게 걷는 사람들을 무조건 이상하게 보는 시선은 정말 없애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사람은 역지사지를 해야하는구나... 많은 것을 깨달으며 일했다. 사실 일하기 시작한 건 이때쯤 같이 일하자고 한 연락들이 오지 않아 돈이 바닥나서였지만 고행을 해서 그런가... 갑자기 연락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다행히 본업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본업이 더 소중했다. 그리고 단기 알바도 소중하다... 무엇보다 내가 아무 근거없이 잘될거라며 집에만 틀어박혀 아무것도 안 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제일 뿌듯하게 느껴졌다.


이런 일을 거치며 나는 드디어 개인 사업자를 냈다. 또 공부할 게 늘어났는데 공장 가서 단기 알바도 해봤는데 뭘 못하겠나 싶다. 벌써 연말인데 앞으로 나는 또 어떻게 될까 어두워지면서도 안되면 최저시급이지만 알바로 입에 풀칠이라도 하지뭐 싶은 베짱이 생겨버렸다.


그래도 역시 본업을 더 많이 그리고 잘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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