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정리

버리는 책도 다시 주워보자...

by 희윤

회사를 쉬기 시작한 뒤 어느날 나는 5일 넘는 기간에 걸쳐 방 정리를 했다. 책꽂이의 책들을 다시 배치하고 리빙박스도 하나씩 꺼낸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묵은 것에 미련 두지 않고 정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는데 바로 버려버리기엔 좀 아까운 것들이 있었다.


특히 책이 그랬다.


그래서 나는 책꽂이 한 칸에 빨리 읽고 정리해버릴 책들을 한 곳에 모았다. 그냥 눕혀서 쌓고 무조건 많이 넣는 것을 목표로 모아둔 뒤 역시나 또 읽는 것을 잊어버렸다. 분명 디자인 관련 책도 있었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프로그램 버전도 낮고 예전 것이라 질렸던 것인지, 어도비 프로그램에 대해 다룬 책 세권을 나란히 쌓아뒀었다. 인디자인에 대해 참고할 내용이 있나 펼쳐봤더니 인디자인으로 작업된 작업물들 이미지 말고도 무려 그리드 설정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최근에 공부하던 것이었는데 당시엔 묵은 책을 없애버리겠다는 일념으로 꽂아뒀던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결국 이 책들은 정리 칸에서 빠져나오게 됐다.


왜 저 책들을 정리하려고 한걸까 다시 생각해봤는데, 왠지 내 생각엔 지긋지긋했던 것 같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쌓아두고 계획만 가득한 스스로에 대해서 말이다. 하나씩 조금씩 쌓아올리는 수밖에 없는데 실력이 x밥인 나를 견디지 못하고 목표에 집중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나만의 해결법으로 사람을 모아 함께 뭔가를 해내는 것을 기획하게 된 것 같다.


혼자서도 잘 하면 좋겠지만 당장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고, 또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올 한 해동안 사람들과 스터디도 하고 이런저런 만남도 가지면서 연말모임을 작게 진행하게 되었는데 그게 마침 어제였다.


나는 항상 이런 모임의 주최를 맡게 되면 혼자서 한번에 해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상 속의 완벽한 퀄리티를 내야 한다며 스스로 압박감을 받곤 하는데 비까지 오고 있어서 진행이 더뎠다. 연말 파티라고 케이크도 준비했는데 케이크 가게가 생각보다 멀고, 신발은 비에 젖고 신발끈이 계속 풀렸다. 심지어 인쇄 오류로 사람들과 나누려던 엽서와 굿즈는 제때 도착하지도 않았다.


서두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닌데 초조해봤자 더 실수만 하지 않을까 싶었다. 다시 심호흡하며 음료 주문처럼 조금 늦어져도 되는 것은 미뤄두고 우선 케이크를 찾으러 갔다. 다행히 가게까지 가는 시간은 잘 맞췄고, 모임 장소에도 늦지 않았다. 모인 사람들도 언제 이렇게 준비했냐, 많이 준비했다며 격려해줬고 계획이랑 조금 달라졌지만 정말 즐거운 모임을 가진 뒤 헤어질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내가 엄두도 내지 못하던 독서나 공부를 위한 계획도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한번에 완벽하게 한다거나 나 혼자 머리 굴려봤자 모르는 것을 알아서 해결할 순 없다.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을 무시하고 일단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더 느끼게된 것 같다.


다행히 모임에서 주최해보고 싶은 모임 주제들을 이야기했을 때 반응들도 좋았기 때문에 서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내년에도 올해처럼 즐겁게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멋진 12월 마무리를 위해 부담을 내려놓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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