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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Aug 17. 2019

돼지는 알까? 자기 등뼈가 얼마나 맛있는지.

할머니는 알까? 내가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1. 따뜻한 냉장고

 외할머니 냉장고는 조명이 희미해 보일 만큼 많은 재료들이 들어차 있었다. 조금 사서 조금 만들어 먹는 생활을 일생 안 해보신 분이라 할머니 냉장고는 그야말로 작은 마트였다. 음식하길 좋아하시는 할머니를 위해 자손들은 전국 각지에서 재료들을 사 날랐고 그 탓에 냉장고에는 감당하기 힘든 무질서가 자리 잡았지만 다행히 할머니는 이것저것 잘 찾아내 맛있게 요리하셨다. 덕분에 우리 모두는 냉장고를 채우는 보람을 느꼈지만 그 기쁨은 오래지 않아 할머니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손가락이 아프게 육수용 다시마를 자르셨다.

2.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찌개

 할머니는 팔순을 넘기신 후 하루가 다르게 거동을 불편해하시다가 마침내는 현관 출입이 불가능해지셨다. 노환으로 인해 삭신이 아픈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심각한 어지럼증이었다. 앉아 계실 때는 괜찮지만 화장실이라도 가기 위해 일어나시면 휘어청 휘어청 불안한 걸음을 옮기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불쑥 찾아오는 자손들을 위해 두 가지를 놓치지 않으셨다. 그중 하나는 전기밥솥에 넉넉한 양의 밥을 따뜻하게 넣어 두는 습관이다.

 “할머니 밥 있어?”

 이건 진짜 물으나마나 한 질문이다. 한강물은 말라도 우리 할머니 밥솥에 밥 마르는 날은 없었다. 할머니는 압력솥에 밥을 한 뒤 동그랗고 깊은 스텐 찬합에 옮겨 담아 물이 자박한 전기밥통에 넣어 두셨다. 언제 누가와도 밥은 준비되어 있고 심지어 갓 한 밥처럼 촉촉하고 맛있었다.

 또 한 가지. 냉장고 파먹기에 최적합인 돼지등뼈 된장찌개가 늘 가스레인지에 대기 중이었다.

 할머니는 육수내기가 버거워지자 손질한 국물멸치를 볶아 믹서기에 갈고 다시마를 직경 5mm 정도로 작게 잘라 육수 대신 바로 쓰셨다. 손이 아프도록 다시마를 자르는 할머니께 그냥 육수를 내는 편이 낫지 않느냐고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셨다.

 “무거바서 못 든다.”

 ‘아 그렇구나! 무겁구나! 육수의 무게 대신 손가락의 아픔을 선택하셨구나!’

 육수를 내는 일이 사치가 되도록 육신이 늙고 있다니. 도끼빗으로 내 어린 머리칼을 빗겨 주신 뒤 몸통을 번쩍 들어 올려 거울을 보여주시던 젊음은 어디 가고 이젠 생수통 하나 드는 일이 힘든 노인이 되셨다. 젊고 탱탱한 나의 마음이 아렸다.     

먹어보면 안다. 소울푸드-돼지등뼈된장찌개

 내가 하겠다 해도 비틀비틀 부엌으로 오신 할머니는 진회색 경질 냄비에 물을 조금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리신 뒤 멸치가루 두 스푼과 잘라둔 다시마 한 줌을 투하하신 후 된장을 크게 두 스푼 퍼 넣어 끓이셨다. 감자, 양파, 파, 고추 등 집에 있는 야채를 대충 썰어 끓고 있는 냄비에 넣고 냉장고 앞에서 한참 숨을 몰아 쉬다가 냉동실에서 돼지등뼈를 꺼내, 따로 해동도 없이, 핏물 제거는 당연히 없이 그냥 냄비에 넣고 약한 불이 익혀주길 기다린다.

 젊은 컨디션이었다면 냉장고에 상비된 진한 멸치육수에 정육점에서 막 끊어 온 고기를 핏물을 뺀 뒤 쓰셨을 것이다. 늙은 컨디션은 생략 또는 간소화를 만들어 냈다. 다 놓아도 될 컨디션이지만 할머니는 놓지 않으셨다.  

 완성된 돼지등뼈된장찌개는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야채는 형태를 잃을 만큼 물러져 있고 작고 까만 다시마들이 부드럽게 씹힌다. 걸쭉한 국물에 밥을 비벼 먹다가 뜨거운 김이 가신 등뼈를 쪽쪽 빨아먹으면 넉넉히 짭조름하고 베지근한 맛이 입안에, 목구멍에, 배배 꼬인 마음에 스며들며 안정과 쾌락을 동시에 주었다.

 나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할머니 된장찌개에 매료되어 주말이면 사귀던 남자(지금의 남편)와 할머니 집에 갔다. 된장찌개밖에 못해준다고 안타까워하시는 할머니께 “진짜 이거면 충분해!”라고 말씀드렸으나 할머니는 지나간 시간과 노쇠한 몸을 원망하셨다.      


3. 결혼, 출산 그리고 이별

 남편은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친가, 외가에 정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우리가 결혼하면 할머니한테 더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식으로 결혼 말씀을 드렸을 때 3년간 간수를 뺀 소금과 곱게 자른 실고추, 그리고 잘게 자른 다시마 한통을 내주시며 “잘해 먹고살아라.”하고 덕담해 주셨다.

 할머니 은혜로 재미난 신혼생활을 하던 나는 이내 아기를 가졌다. 길지 않은 입덧 뒤에 식욕이 폭발하는 시기가 오자 할머니 맛이 그리워 더욱 자주 찾아뵙게 되었고 돼지등뼈 된장찌개는 나의 소울푸드로 완벽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돼지의 등뼈를 빨아 댔는지, 돼지처럼 우람하고 뼈대 좋은 아기를 낳았다. 꼬물거리는 아기를 안고 눈 마주쳐 주시던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기가 100일 사진을 찍던 날, 스튜디오에서 나오던 남편이 할머니 집에 가자고 했지만 너무 지쳐서 다음에 가지고 했다. 그날 할머니가 돌아가실 줄 정말 몰랐다.       

베베꼬인 마음을 풀어주는 마법의 찌개

4. 그리움. 그래 이 맛이야!

 가끔은 너무 먹고 싶어 미칠 것 같다.

 그래서 직접 끓여 본 적도 있었다. 쌀뜨물에 멸치와 다시마를 우리고 냉동한 적 없는 돼지등뼈를 이용했더니 무척 맛있었다. 할머니보다 더 맛있게 끓여 낸 것이다. 그러나 연신 맛있다고 칭찬하며 허겁지겁 먹는 남편에게 눈이 흘겨졌다. 직접 안을 수 없는 할머니를 맛으로나마 추억하고 싶었는데 ‘더 맛있다’는 비교의 말이 왜 필요한지 부애가 났다. ‘맛’이라는 그리움은 무형의 추억으로 간직해야 하는 고통인가 보다.

 지금도 어디 가서 진회색의 경질 냄비를 보면 주인 몰래 뚜껑을 열어본다. 그 안에 틀림없이 돼지등뼈된장찌개가 있을 것 같다. 냄비 위로 늙고 뭉툭한 손이 몇 번 다녀가고 가뿐 숨소리가 찌개 끓는 소리와 뒤섞여야 할머니 맛이 날 텐데 차갑게 비어있는 냄비를 보면 할머니를 보내드리던 날 만큼 아프고 섭섭하다.    

 글을 쓰는 내내 돼지등뼈된장찌개 맛이 입가에 감돈다.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참 맛있다. 그리워서 더 맛있고 다시는 없을 맛이라 더 맛있다. 할머니가 무척 보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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