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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Sep 04. 2019

너무 늦게 나를 찾아온 ‘싶다 중독’

~이 하고 싶다.



 요 며칠 글쓰기가 무척 어렵다.

———

 아직 기관에 다니지 않는 둘째가 집에 있어서 노트북을 켜거나 휴대전화를 오래 붙잡고 있는 일이 불가능하다. 대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아무 종이에나 갈겨 두었다가 육아 퇴근 후 노트북에 정리해 두는 즐거움은 나의 숨 쉴 구멍이었다.

 그런데 최근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글 한 줄 적지 못했다.


  너무 하고 싶다.

———

 나는 이미 다 자란 어른이다. 학습기는 옛날에 지나갔고 이제는 배운 걸 써먹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도대체 내가 배운 게 뭐지? 아는 게 뭐야?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있는 중, 고등학생 수학 과외 광고지를 보며 “아.. 나도 수학 못하는데! 과외받고 싶다!” 생각했다. 그 옆에 ‘영어 파닉스부터’라고 적힌 광고지를 보고는 “기초부터 다시 배우고 싶다!”하며 공부하는 내 모습을 그리며 설레어했다. 그 순간 뽀얗게 화장하고 학교 가는 학생의 책가방을 뺏아 들고 싶었다.


 집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뜨거운 물로 소독하고 싶다.” 청소기를 밀면서 “엎드려 바닥을 빡빡 닦고 싶다.”하고 또 ‘싶다’에 빠진다. 프랑스 자수를 배우고 싶고, 텃밭을 가꾸고 싶고, 돈 되는 일을 하고 싶고, 집에서 장류를 담그고 싶다.


 발 밑에서 징징거리는 어린아이만 아니면 당장 ‘싶다’를 행동으로 옮길 텐데, 나는 자식을 ‘족쇄’ 삼아 버린다.


 진짜 족쇄는 마흔이 코 앞에 오도록 천직을 못 찾은 나의 게으름, 우유부단함일 텐데, 자식 탓을 하고 자식 뒤로 숨는 못난 어미가 지금 내 현실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뭐지?

———

 어릴 때 내 꿈은 고아원 원장이었다. 사실 이 꿈은 부모님이 심어준 것이다. 부모님은 내가 자비심과 리더십이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셨나 보다.

 부모님이 “넌 고아원 원장이 될 거지?”하시면 내 머릿속엔 얼른 2층 건물이 지어지고 그 앞으로 멋진 놀이터를 가진 넓은 운동장이 그려졌다.

 그 고아원에는 왼손으로 밥을 먹는 애, 물구나무를 설 줄 아는 애, 방귀를 많이 뀌는 애 등 많은 아이들이 원장인 나에게 의지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를 그리워해 매일 우는 아이가 새로 왔는데 나의 정성으로 울음을 그치고 친구들과 잘 지내게 되었다.

 이런 상상을 하면 너무 즐거워서 나는 꼭 고아원 원장이 되고 싶었다.


 중학생이 되자 자비심이나 배려심이 전혀 없이 ‘나만 아름다운 여자’가 되고 싶었다. 외모에 관심이 많을 때라 거울을 자주 보자 아름다움에 대한 마음은 확실히 접어졌다.

 그 무렵 부모님은 나에게 ‘스튜어디스’라는 새로운 꿈을 주셨다.

 나는 몹시 피곤한 가운데 미국행 비행을 가게 되었는데 미국 공연을 가는 H.O.T오빠들에게 서비스를 하게 되었다. 오빠들은 나한테 한눈에 반했고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은 긴장감이 팽배해졌다. 그때, 내가 과로로 쓰러지자 오빠들은 승객 중 의사를 찾아내어 나의 회복을 도왔다. 그런데 그만 그 의사도 나한테 반해서 나는 여섯 남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상상에는 설렘이 한가득이라 나는 빨리 자라서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커보니 직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직업을 갖기 위한 노력보다 상상놀이가 훨씬 재밌어서 상상하고 상상하고 상상을 돕기 위한 독서를 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후회되는 시간들이다.


 그때 노력해서 구체적인 직업을 가졌더라면 지금 나는 ‘싶다 중독’에 걸리지 않았을 것 같다. ‘싶다 중독’은 불만족스러운 자신을 발전시키고픈 발악에서 오니까.


 굼벵이의 구르는 재주

———

 오춘기 아줌마에게 불어닥친 ‘싶다 중독’은 내가 무엇인가 할 일을 찾아야 지나갈 병이다.

  나는 직업을 갖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열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너무 열중해서 어린 시절을 다 날려 먹은 일.

 나만의 상상을 모두가 즐거운 이야기로 바꾸는 작업을 해볼 생각이다. 글쓰기만큼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은 없다. 그 사실만은 확실하다.

 

 써지든 말든 매일 끼적이자.

———

 글을 잘 쓰고 싶다. 술술 쓰고 싶다.

 싶다. 싶다.

 글은 집착할수록 도망가는 연인과 같다. 오래도록 사랑하는 사이를 유지하려면 꾸준히 곁에 있어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요 며칠 내 상상의 나라는 뒤죽박죽에게 점령당해 조바심이 최전선에 서 있다. 나는 전술을 쓸 만큼 똑똑하지 못하므로 그냥 버티는 방법을 택하려 한다. 써지든 말든 매일 끼적이자. 끼적여 보자!


무엇보다 카페 나들이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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