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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Sep 14. 2019

어머니. 사실 저 그런 애 아니에요.

무뚝뚝한 며느리의 고백



 나는 정월 대보름 둥근달만큼 커다란 비밀이 있다.  비밀을 유지하려면 거짓말은 필수다.

 딱 한 사람만 속이면 된다. 한치의 서슴거림도 없이 금팔찌를 빼 나에게 주시고, 나를 위해 따로 고기반찬을 해주시고, 내 아이들을 너무너무 예뻐해 주시는 분. 바로 시어머니다.



**비밀 하나. 어머니 저 아직 술이 안 깼어요.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밤, 나는 오랜만에 술 약속을 잡았다. 첫째를 키울 때 한 동네에 살며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엄마들처럼 지낸 육아 동지들과의 만남이다. 모두들 다음날 시댁에 음식하러 가야 하는 처지지만 ‘내일은 없다’는 자세로 밤새 놀았다.

 다음날 비몽사몽은 당연했다. 술에서도 잠에서도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시댁에 갔다.

 “얼굴이 많이 상했네. 원래 딸 키우다가 아들 키우면 힘든 법이다.”

 내 몰골을 보신 시댁 어른들은 육아가 쉽지 않다며 나를 위로해주셨다.

 “아직도 둘째가 통잠을 못 자요.”

 남편이 한마디 거들자 어른들은 더욱 진심을 담아 나를 위로하신다. 차마 밤새 술 마셨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비밀 둘. 저희 부모님 시골 안 가세요.

 한참 음식을 하고 있는데 ‘사돈어른들은 고향에 가셨어?’하고 시어머니가 물어 오셨다.

 “네”

 하고 얼른 거짓말을 했다.

 내가 결혼한 뒤 우리 부모님은 명절에 큰집에 가지 않으신다. 친정엄마는 막내딸을 출가시키며 명절 노동에서 스스로 졸업하셨다. 엄마에게 목적 없는 시댁 나들이는 없다. 꼬박꼬박 벌초에 가시는 이유는 시골 장에서 자동차 트렁크를 가득 채울 만큼 장을 보기 위해서고 가끔 할아버지 제사가 가는 이유는 고모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러시는 데는 40년의 결혼생활 중 절대 해결되지 않는 큰집과의 갈등도 한 몫한다. 큰엄마는 계모다. 팥쥐 엄마만큼 나쁜 사람도 아닌데 할머니, 엄마, 작은엄마, 고모는 큰엄마를 탐탁지 않아한다. 재혼하신 지 30년을 훌쩍 넘겼음에도 그 시선은 여전하다.

 내가 시댁에서 전을 부칠 때 아마도 친정부모님은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계실 터였지만 나는 눈도 깜짝 않고 거짓말을 했다. 시어머니께 우리 집 사정을 조곤조곤 설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비밀 셋. 어머니 저 여전히 생선 안 먹어요.

 바다가 고향인 시댁은 상에 생선을 많이 올리신다. 명절이든 제사든 항상 한 줄은 생선이다. 제사를 맡고 계신 큰어머니는 며칠에 걸쳐 여러 시장을 훑어보시고 생선을 구입하시는데 대략 20여 마리는 된다.

 나는 이미 이유식 시기부터 생선을 못 먹는 사람이다. 어릴 땐 생선을 혐오하는 수준이어서 내가 수학여행을 가면 그동안 식구들은 생선을 먹을 수 있었다. 자라면서 많이 순화되어 멸치, 고등어, 갈치는 조금 먹지만 생김새가 우락부락한 제사 고기는 음식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아이들 잘 먹으니 몇 마리 가져가”

 음식을 싸주실 때 항상 생선을 권유받지만 나는 항상 거절한다. 생선을 집에 들이는 것 자체가 싫다.

 그런데 이번 명절엔 생선을 3마리나 받아왔다. 생선을 가져가겠다는 나의 말에 어른들이 깜짝 놀라셨다.

 “이제 우리 집 사람 다 됐네”

 나는 배실배실 웃어 보일 뿐 친정부모님 갖다 드릴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비밀 넷. 왜 자꾸 거짓말을 하냐면요.

 남편은 외아들이다. 시어머니에게 남편은 그야말로 금지옥엽. 내 조부모님의 유별난 자식사랑을 보고자란 나는 아들에게 무한 애정을 쏟는 시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는 내가 딸이 되어 드리면 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속으로 다짐하고 입 밖으로 내지 않아 참 다행이다.

 막상 결혼해서 어머니와 외아들 사이에 들어와 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분가해서 살림을 꾸몄음에도 정서적으로 셋이 묶여 있는 기분이었다. 어머니 내면에는 아들을 출가시킨 적 없음이 분명했다. 

 “독립되고 성숙한 가정을 꾸미고 싶어”

 남편은 내 말을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첨엔 정말 엄마의 아바타에서 아내의 아바타로 갈아타는 모양이었다. 나는 법륜스님의 법문을 찾아내 남편에게 보여주며 어머니와 의젓하게 이별하라고 애원을 했다. 다행히 남편은 현명한 사람이라 금방 사고체계 변신을 했지만 내가 시어머니께 법륜스님을 드리 댈 수는 없었다. 하여 내가 택한 방법은 어머니와 대화를 줄여 자연히 간섭을 차단하는 방법이었다. 

 “네”

 “아니오”

 주로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그냥 뭐. 이것저것이요.”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


**사실은요. 무뚝뚝은 콘셉트이에요.

 살갑다, 친절하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

 시댁 아닌 곳에서 타인이 나를 평가할 때 나왔으면 하는 단어들이다. 실제로 나는 꽤 사교적이고 내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만 시댁에서만큼은 무뚝뚝이다. 무뚝뚝한 며느리로 살려면 반드시 각오해야 하는 바가 있다.

 “싹퉁바가지”

 “친정에서 뭘 배웠길래”

 같은 센 말들이 혹시나 들려와도

 “제가 뭘요?”

 하며 덤비지 않아야 한다. 싫은 소리 듣기 싫으면 효부 노릇을 하던가 그렇지 않다면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네. 죄송합니다.”

 나는 사죄가 준비된 무뚝뚝한 며느리다.

 비난을 각오하고 산다는 건 생각 외로 엄청 편하다. 착하지 않은 덕분에 나는 시댁 스트레스가 없다. 명절이 끝나면 부부싸움을 하거나 남편에게 고가의 선물을 받아 낸다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우리 집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어머니 저 그런 애 아니에요.

 하나뿐인 아들과 결혼한 무뚝뚝한 며느리는 어머니 입장에서 정말 낭패일 것이다. 가끔 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너무 죄송하다. 그러나 내가 한 발 다가가면 열 발 다가오시는 모습에 결국 다시 도망치게 된다.

 어머니께 살가운 며느리는 결코 될 수 없지만 어머니 아들과는 사이좋게 지내니 그에 만족하시길.. 언젠가는 어머니께 고백하고 싶다.

 “어머니 저 그런 애 아니에요.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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