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은 Sep 10. 2019

유산, 그 미쳐감에 대하여

가정 출산이 가장 쉬웠어요-두 번의 유산





 첫 아이 27개월쯤 ‘첫 번째 둘째’가 찾아왔다가 8주 만에 떠났다. 크게 슬프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 와서 새벽까지 깨어있거나 술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한의원에서는 몸이 쇠약해져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정말인지 열개의 손톱이 모두 빠지고 다시 났다. 철저한 계획을 세워 둘째를 맞기로 했다.


1. 한약을 먹어 몸을 보한다.

2. 매일 108배 절을 한다.

3. 매일 1시간 이상 걷는다.

4. 6개월 뒤 아이를 갖는다.


 6개월 뒤 ‘두 번째 둘째’가 생겼다.

 그러나 또 8주를 넘기지 못하고 아기가 떠났다. 이번엔 정말 슬펐다. 솔직히 떠나보낸 아기에 대한 마음이 아니라 내 인생에 둘째가 없을까 봐 겁이 났다.


 다음 달에 또 임신이 되었다.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신께 아이를 세 번 잃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마의 8주를 넘기기 전까지 광적인 집착에 매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가 비쳤다. 병원에서 유산방지 주사를 맞고 집에 오는데 가슴속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날 밤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시간, 거실에 불량하게 앉아 난데없는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집착이다. 생명을 얻고 싶은 집착이 아니다. 내 마음대로 진행되길 바라는 집착이다. 죄를 지었다. 떠나보낸 두 생명을 진심으로 애도하지 않았다.||


 나는 임테기 2줄을 보고 기뻐했고 초음파상 아기집을 보고 환희를 느꼈다. 유산 후 병원에서는 생리로 알고 넘어가라고 했지만 이미 태명까지 붙였는데 생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엄청 생명 존중하는 사람의 발상 같지만 집착과 이기심이 전제한 생각이었다. 내 것을 잃기 싫은 마음과 내 몸 상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결합이었으니.

 



 ‘첫 번째 둘째’는 초음파로 아기집만 보이고 심장소리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당장에 소파수술을 하자고 했지만 나는 집에 와버렸다. 일주일 뒤 생리처럼 아기집이 흘러나왔다. 꼭 까놓은 포도 알갱이 같았다. 변기에 흘려보낼 용기가 없어서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남편 고향 텃밭에 묻어주었다. 그 밭은 첫째의 태반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


 ‘두 번째 둘째’도 형태는 완벽하나 심장이 뛰지 않았다. 심장이 늦게 발달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며칠 뒤 생리처럼 만났다. 한번 봤다고 익숙한 포도 알갱이. 역시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세 번째 둘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유산방지 주사를 맞고 불량한 명상을 하던 때에도 우리집 냉동실엔 ‘두 번째 둘째’가 들어있었다. 뱃속에 있어야 할 자식을 냉동실에 넣어놓고 새로 임신한 나는 진짜 미친X일지도 모른다.


 그저 ‘둘째가 갖고 싶다’는 집착뿐인 나를 바로 보자 스스로가 너무 싫었다. 붙잡지 못한 생명에 대해 뒤늦게 미안해하는 마음도 집착이고 뱃속 ‘세 번째 둘째’를 지키고픈 마음도 집착이었다. 나는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고 모든 것은 엉켜있다고 느꼈다.


 어떤 배움을 얻기 위해 시련이 찾아온 건지 빨리 해결하고팠다. <거짓행복, 거짓반성, 이기적인 자기애, 불안, 욕심, 집착..> 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단어들을 털어내고 싶은 욕구에만 마음이 급해졌다. 그럴수록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해결되지 않을수록 정신 광란을 멈출 수 없었다.



 

 ‘세 번째 둘째’는 살아남았다. 우렁찬 심장소리를 들려주었고 태동도 굉장했다. 아기가 안정기에 들어갔을 때 냉동실에 있는 ‘두 번째 둘째’를 텃밭에 묻었다.

 ‘욕심대로 안된다고 슬퍼했던 지난 시간이 미안하다. 내 몸 걱정이 먼저였다. 이기적이었다. 정말 미안하다.’

 깊게 판 흙에 묻히는 포도 알갱이를 보며 진심의 속삭임을 전하자 오랜만에 내 마음에 평화가 왔다. 더 이상 미쳐 날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 날 이후엔 좀 살만 했다.


 초기 유산의 경우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대답한다. 모른다는 것이다. 태아 생명은 정말 삼신할매의 영역인 것일까? 그분은 왜 두 번이나 나에게 유산 경험을 주신 걸까?

 텃밭에 묻어주던 날 나는 삼신할매의 뜻을 좀 엿본 기분이었다. 어떠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나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 생명이란 나까짓게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 두 개의 포도 알갱이가 여전히 내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다만 이 정도 아픔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게 인생의 묘미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건강하게 살아남은 두 아이가 있으니 쓰라림쯤은 괜찮다. 미치지 않으려면 쓰라림에 만족하고 사는 수밖에.





#유산 #미안해

작가의 이전글 본격적인 산통의 시작, 나는 유서를 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