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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Sep 15. 2019

그 날, 나는 어두운 욕실에서 알을 낳았다.

가정 출산이 가장 쉬웠어요-황홀한 만남





 가을볕이 무척 뜨거운 날이었다. 확실히 더위는 한풀 꺾였으나 그 날의 햇볕은 대단했다. 만삭의 몸으로 평소 이용하는 생협 행사에 갔다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순산하라’는 인사를 들었다.

 “아직 기미가 없네요.”

 둘째 출산 예정일을 열흘 앞둔 나는 여유로웠다.


 그날 밤엔 친구 부부를 만나 3차까지 놀고 술 취한 남편 대신 내가 운전해서 집에 왔다.

 낮엔 햇볕에 돌아다니고 저녁엔 끈적하게 놀았더니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그러나 푹 퍼져 자는 남편과 첫째를 바라보며 나는 잠들지 못했다. 사실 횟집에서 2차를 할 때 10분 간격으로 진통이 있었다. 가진통이라고 생각했는데 뱃속 아기는

 ‘진짜예요. 곧 나갈게요.’

 하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첫째에 이어 둘째도 집에서 낳을 생각이었기에 아무것도 준비할 게 없었다.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서 몸을 이완하고 명상하며 긴 호흡으로 진통을 맞이했다. 잠이 쏟아지는 탓에 5분 간격 진통도 꾸벅꾸벅 졸며 그럭저럭 넘어갔는데 진통의 파도가 아닌 진통의 쓰나미가 찾아오자 더 이상 졸음이 오지 않았고 입 밖으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많은 분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금줄


 새벽 4시경 남편을 깨워 ‘때가 왔음’을 알리자 남편은 첫째를 받아주신 조산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조산사님은 우리 집에서 5시간 거리에 계신다고 마구 밟아서 3시간 안에 도착해보겠다고 하셨다.

 “그.. 그러지 마세요!”

 우리 부부가 조산사님을 말리자 조산사님은 근처에 계신 다른 조산사님을 수배해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새 조산사님이 오시기 전까지 쉬고 싶어서 남편에게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달라고 요청하고 뱃속 둘째에게도 잠시 쉬자고 부탁했다.


 촛불이 일렁이는 어두운 욕실,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자 출렁거리며 물이 넘쳐 ‘촤~악’하고 큰 소리를 냈다. 뱃속 둘째는 그 소리를 신호삼아 내 골반과 질을 파고들었고 나는 3년 전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한 마리 위험한 짐승이 되어 괴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욕실의 동굴 효과였을까? 나중에 남편이 하는 말이 ‘이 소리가 진짜 내 아내가 내는 소리가 맞나?’할 정도로 굉장했다고 한다.

 쉬기는커녕 차라리 물 밖으로 나가는 게 낫겠다 싶게 진통이 몰아치자 나는 내 질 속으로 손가락을 살짝 넣어보았다. 아주 입구임에도 손가락 끝에 탱탱볼이 닿았다. 그때는 항문으로 자꾸 힘이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내 탄생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휘몰아치는 진통에 항문으로 힘을 주었더니..!

 “퐁..! 후루루룩”

 작고 둥근 물체가 물속에서 튀어 올랐다. 긴 줄을 매단 채.

 욕실 문지방에 앉아있던 남편은 벌떡 일어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5시 2분!”

 횟집에서의 첫 진통 후 5시간이 지나 둘째를 만났다. 탯줄의 태맥이 쿵쾅거리는 작고 따스한 알. 둘째는 양막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양수 속에 있던 녀석. 품에 안고 있으니 양수는 금세 빠지고 양막만 뒤집어쓴 채 따스한 온기를 내 품에 전해주었다.

 자다 깬 첫째는 어리둥절하게 욕실 문 앞에 서서

 “엄마 그게 뭐야?”

 하고는 눈을 비볐다.

 “누나 된 거 축하해”


누나와 캥거루케어


 이후 처음 보는 조산사님이 우리 집에 오시고 이것저것 후처치를 도와주셨다. 일면식도 없는 산모 집에 새벽녘에 달려와주신 조산사님께 너무 감사해 미역국이라도 대접하고 싶었지만 다른 산모에게 콜이 와서 금방 일어나셔야 했다.

 “아기 이름은 주몽이 어때요?”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시던 조산사님이 농을 던지셨다. 알에서 나왔으니 주몽이나 박혁거세랑 동급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둘째는 탄생설화를 가진 아이가 되었다.


 밤새 한 생명이 탄생하는 위대한 일이 있었지만 자연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무심하게 날이 밝아왔다. 전날과 비슷하게 햇볕이 내리쬐고 오후엔 흐리더니 밤에는 비바람이 몰아쳤다.

 원하는 방법으로 아기를 낳았고, 태어난 아기가 건강하고, 탄생설화 에피소드까지 챙겼다한들 자연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에 지나지 않으니 너무 들뜨지 말라고 경고라고 하듯이 그날 밤에 많은 비가 내렸다.

 먹구름이 물러가자 햇볕은 젖은 땅을 말려주고 나뭇잎 색깔을 바꿔주었다. 선선한 바람이 베란다로 들어올 때 곱게 잠든 아기 머리에 손수건을 씌워주며 속삭였다.

 “자연 속에서 우리 평범하게 살아가자”

 





#출산 #가정출산 #탄생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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