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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Oct 25. 2019

부부싸움의 기술 - 이기는 습관

나는 착하지 않은 여자다.


 남편은 당당함이 가득한 눈이었다.

 “회사 일이잖아!”

 그 눈빛과 말투에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눈알이 뒤집히는 분노를 느꼈다.

 “돈 번다고 유세해?”

 초반의 신경전 없이 단 10초 만에 부부싸움은 절정에 달했고 나의 화는 이미 지붕을 뚫고 나갔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가을 불대(정토회 불교대학 가을학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양해를 구해둔 날짜가 있다. 수업이 있는 매주 목요일 저녁과 경주 남산 순례가 예정된 이번 주 토요일이 그렇다.

 경주 남산 순례는 불대에서 매우 중요한 일정이며 출석에도 포함이 된다. 나는 26일엔 육아를 전담해줘야 한다고 남편에게 몇 번이나 얘기해두었다. 그런데 남편 회사에 일이 생겨 남편이 26일에 출근하게 된 것이다.

 만약 남편이

 “나도 꼭 출근해야 하는 일이야. 미안해”

 정도만 해줬으면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내 일정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회사 사정만 떠벌리며 “회사일이잖아”라고 말했다. 내 귀에는

 “넌 먹고 노는 일이고 난 돈 버는 일이잖아.”

 로 들렸다. 때문에 나는 “돈 번다고 유세해?”하고 받아쳤다.

 

 “꼬막 삶아줄 테니까 집에 와서 저녁 먹어”

 하고 불과 몇 시간 전에 통화를 했는데 이젠 식탁을 다 엎을 기세로 열을 내는 나를 마주했다.

 ‘내 일정을 무시했어. 아주 크게 실례한 거야’

 이가 갈렸다.



 

 평소 남편과는 다툴 일이 잘 없다. 나는 가정적이고 이해심 많은 남자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가끔 한번 부딪히게 될 때면

 ‘내가 저 답답이랑 결혼을 했다니!’

 싶게 서로 뜻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는다.

 남편과의 다툼에서 제일 답답한 부분은 ‘그는 내가 무엇 때문에 화났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잘못을 해놓고 왜 모르지?’ 그의 헛다리 사과는 나를 더 화나게 했다. 


 살아생전 외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남자는 결혼 초반에 잘 가르치면 오래도록 편타”

 할머니가 택한 몇 가지 방법은 현시대와 맞지 않아 실전에 써먹을 수 없지만 할머니의 논리만은 여전히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편에게 ‘화난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해서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를 약속받고 있다.


 한 번은 이런적이 있었다. 곧 귀가한다던 남편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5시간 뒤 집에 왔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남편에게 나는 간곡히 부탁했다.


“늦게 귀가해서 화난 게 아니고 순간의 화를 면하려고 거짓말을 늘어놓아서 화가 났어. 나는 그런 태도는 유아적이고 비겁하다고 생각하거든. 아내한테 비겁해 보이고 싶지 않다면 앞으로 그러지 말아 줘”


 감정으로 싸우고 들자면 당장 도장 찍자고 소리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나는 차분함을 선택했다. ‘비겁’이란 단어에 소스라치게 놀란 남편이 달라진 것은 차분함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뭐라고? 정확히 말을 해야 알지!


 화를 내는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상해버린 내 감정을 상대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분노라는 녀석은 제 멋대로라 진짜 내 감정보다 더 크게 자리 잡아 버릴 때가 있다. 그러므로 화가 날 땐 분노를 삭이고 ‘내가 어느 포인트에 화가 났는지’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


이기는 싸움의 기술 세 가지.


|| 왜 화가 났지?

 내가 화난 부분이 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너무 화가 나서 왜 화를 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거나 나중에 얘기하자며 대화를 단절시키는 일은 옳지 않다. 화난 부분을 빨리 파악하고 상대에게 설명해야 한다.


||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 각성을 유도한다.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상대가 둔해서 개선의 의지가 없다면 그때는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야 한다. 내가 경험한 보통의 한국 남자는 ‘비겁하다’, ‘남자답지 못하다.’라는 말에 크게 반발했다. 아마도 한 가정의 가장에게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라고 한다면 울지도 모른다. 예쁘고 지혜롭게 약점을 건드려보자.

 “당신을 존경하고 싶고 나는 존중받고 싶어”

 “남자답고 믿음직스러운 게 당신 매력이잖아”


|| 마지막 자존심은 건들지 마라.

 뱉은 말은 담을 수 없다. 마지막까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혹시 당신 부모님도 이래서 이혼하신 거 아냐?”

 “어떤 꼴을 보고 자랐길래 이 모양이니?”

 할 말 못 할 말은 언제 어디서고 가려야 한다. 팩트라 해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이번에 내가 남편에게 화가 난 이유는 나의 중요 일정이 잊어도 되고 밀려도 되는 취급을 당했기 때문이다. 지붕을 뚫을 만큼 화가 났어도 내 감정을 남편에게 알려야 했다.


 “먹고사는 일보다 나와의 관계 유지가 더 중요하다면 내 일정을 잊어버리지 마. 나는 가볍게 취급당할 때 아주 화가 나.”

 분위기를 감지한 남편이 금세 사과해 주었다.

 “이야기 순서와 말투가 적당하지 않았어. 미안해”


 우리는 길게 싸우지 않고 아이들을 부탁할 사람을 찾는데 힘을 모았다. 몇 통의 전화 끝에 시댁에 아이들을 맡기기로 했다. 26일 날 남편은 회사에 가고 나는 불대에 갈 것이다. 착하진 않지만 감정에 솔직한 나라서 이번 부부싸움도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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