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없는 여행이 가능할까?
여기는 가오슝.
대만의 부산에 해당하는 도시다.
올해는 해외여행을 하지 말자고 남편과 손가락을 걸었는데 그이의 변심으로 비행기 티켓을 사고 말았다. 나는 마치 억지로 여행 가는 사람처럼, 여행 날짜가 다가오는데 설렘이 없어서 여행 준비를 온전히 남편에게 맡겼다. 여행 하루 전날 불교대학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이번 여행은 완벽하게 수동적인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불교대학의 첫 수업시간. 수행자란 어떻게 생활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강론을 들었다. 여러 말씀 중에 귀를 솔깃하게 한 내용은 수행자는 일회용품을 쉽게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지속 가능한 소비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이전부터 생각해왔기에 일회용품, 비닐봉지, 플라스틱 줄이기를 응원하고 낮은 단계에서 실천했는데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쓰레기를 줄여보자고 결심했다.
“가오슝에도 야시장이 많네”
남편의 말에 ‘돈을 내면 약간의 음식과 쓰레기(1회 용기)를 함께 주는 그곳 말이지?’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더운 나라에 발달해있는 야시장을 ‘여행의 꽃’이라 여긴 적도 있었지만 감당하기 힘들게 쌓이는 쓰레기를 볼 때면 죄책감이 들었던 차다. 이번 여행에서 일회용품을 완전 배격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우선 다회용 봉투가 필요했다. 아이들이 갓난쟁이일 때 쓰던 목욕수건을 잘라 옆면을 재봉틀로 박았다. 흰색 실이 없어 검은색으로, 흔한 손잡이도 입구를 봉하는 끈도 없는 불친절한 천봉투가 완성됐다.
대만 사람들이 커피보다 많이 먹는다는 버블티, 밀크티를 사 먹기 위해 용량이 큰 컵도 챙기고 플라스틱접시나 종이접시를 피하기 위해 찬합도 챙겼다.
한국에서도 해보지 않았던 NO쓰레기, NO일회용품 라이프의 시작이다. 비로소 설렌다.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해서 새벽부터 서둘렀다. 깨우지 않아도 벌떡 일어나 세수하고 옷 갈아입는 아이들을 앞세워 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여행객들이 가득했다. 그들이 끌고 다니는 캐리어 바퀴소리가 경쾌하다.
“기내 반입 가능해요!”
아장거리며 걸어가는 둘째가 귀여웠는지 누군가 소시지와 막대사탕을 주셨다. 기내 반입 가능하니 안심하고 받으라는 호의에 ‘고맙습니다.’ 인사했지만 재활용이 불가한 쓰레기도 덩달아 생김에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미리 준비해 간 아이들 음료수와 간식을 기내에서 먹이니 또 쓰레기가 생겼다.
‘그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아마도 그동안 무의식으로 쓰고 버린 쓰레기에 대한 ‘최초의 인식’이 아닌가 싶다.
가오슝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로 이동하니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서 우육탕을 먹고 후식을 위해 편의점에 갔다. 남편과 아이들이 고른 음료수는 또다시 쓰레기를 만들어냈다.
“이제 고만하자!”
편의점에서 손쉽게 사 먹는 습관을 유지하면서 쓰레기를 신경 쓰는 일은 위선일 뿐이었다. 나는 몇 가지만 정해두고 지키기로 했다.
1. 일회용 접시, 수저, 빨대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2. 부득이 쓰게 될 때는 몇 번 더 재사용한다.
쓰레기를 안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숙소 근처 보얼 예술특구에서 마켓이 열렸다. 퀄리티 높은 수공예품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걷다 보니 목이 말라와서 두부와 단팥 등을 넣은 독특한 음료수를 마셔보기로 했다. 준비해 간 컵을 내밀며 여기 담아 달라고 하자 판매자가 조금 당황했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아야 제 비주얼이 살아날 텐데 내가 내민 컵은 검고 불투명했다.
“노 프라브럼”
“이츠 오케이!”
한국과 대만. 양국 간에 짧은 영어가 오가고 나서 우리는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독특한 맛! 평소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는 텀블러를 사용이 처음이다. 남편은 불편해하는 눈치지만 나는 뿌듯했다.
저녁식사는 야시장에서 하기로 했다. 첫째가 고른 찹쌀 찐 밥과 소시지를 구입해 찬합에 담아 달라고 부탁했다. 기꺼이 담아주셔서 기분이 좋던 차, 남편은 옆집에서 타코야끼를 샀다. 여분의 찬합이 있었지만 일회용 용기에 받아왔다.
“깜박했네”
남편이 내 눈치를 살핀다. 남편의 기색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개인이 개인에게 강제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아이들을 좀 앉게 하려고 들어간 식당에서 맥주와 닭고기 덮밥을 주문했는데 밥그릇도 술잔도 일회용이다. 남편 말이 대만은 물이 귀한 나라라서 설거지를 안 좋아한다나.. 나무젓가락만은 거절하고 가지고 간 수저를 이용해 식사를 했다. 밤이지만 무더워서 음식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때 불 앞에 서서 음식을 하시던 분이 선풍기 방향을 아이들 쪽으로 돌려주셨다. 커다란 선풍기에서 재빠르게 돌아가는 팬이 바람을 일으키자 음식 냄새와 하수도 냄새가 섞여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야시장의 정취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이게 그리워서 왔지.”
나는 플라스틱 컵에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보통 사람들은 선한 마음으로 산다. 찬합을 깜박한 남편도 음식과 쓰레기를 함께 준 행인과 상인도. 나의 실천은 엄격하되 남에게는 어떤 잣대도 들이대지 말자고 다짐했다.
쓰레기 없는 여행과 일상은 도시에 살며 모든 필요품을 돈으로 사는 나에게 불가능 한 목표일지 모르겠다. 다만 줄여 나가고 재활용한다면, 그 습관에 깨어있다면 수행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