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아님.
무능력이 무기력으로 나를 덮칠 때 반가운 카톡이 왔다. 대학 친구 3명이 내가 사는 고장으로 놀러 온다는 내용이었다.
“너도 볼 겸”
목적은 따로 있고 나와의 만남은 곁다리 일뿐이지만 나는 설렘으로 가득 찼다. 옛 친구들을 만나기에 매우 적절한 때였다. 방황하는 내 행복에게 쉬엄쉬엄 고독하라고 친구들이 오는 것 같았다.
우린 대학교 동아리 동기들이다. 1학년 땐 동기가 60여 명이었는데 4학년 때는 진성 멤버 19명이 남아서 여태껏 유별나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지만 지금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얼굴 볼일을 만들어 낸다.
이번에 나를 찾아준 친구들은 특히 단짝으로 붙어 다녔던 애들이다. 출발 전날 한 친구가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못 오게 되었지만 나를 포함해 3명으로도 밤새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이야깃거리가 가득했다. 풀어도 풀어도 쏟아지는 옛이야기와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사건들에 대해 기억을 짜 맞추느라 우리의 밤은 짧기만 했다.
|| 하필이면...
오후 2시쯤 만난 우리는 술 마시기엔 아직 이르다는 판단하에 한 명은 미술관 관람을 두 명은 영화 관람을 하기로 했다. 나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정작 육아 중인 나는 시큰둥했지만 미혼인 친구는 내 손을 붙잡으며 오열했다.
‘저렇게 힘들어서 너 어떻게 사니?’
그 친구와 거진 10년 만의 영화 관람인데 왜 하필 김지영이었을까...
영화를 통해 감독이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나 같은 무지렁이가 알턱이 없지만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은 소외감이었다.
타인의 눈에 김지영은 아기 엄마, 주부로 고정화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아줌마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적이 없는데 말이다.
지난 10년간 나는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으로 삶을 변화시켜왔지만 친구들의 기억 속에는 전공서적을 팔에 끼고 부지런히 캠퍼스를 걸어가던 내가 살아있었다.
“너 독일어 정말 좋아했잖아. 다시 공부해서 번역일을 해보면 어때?”
what? 아니 was??
‘내가 전공이 독일어였지..!’
내 전공을 내가 되새기는 일이 이렇게 큰 충격이라니!!
“이제 와서 어떻게 번역을 해?”
“네 열정이면 할 수 있지. 너 독일어 정말 좋아했잖아!”
그랬던 것 같다. 어느 한 시절.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 때쯤 본격적으로 전공수업을 듣기 시작했을 때 독일어가 너무 재밌었다. 시험기간이 아닌데도 산꼭대기에 있던 중앙도서관에 공부하러 갔었다. 꼭 교환학생에 선발되리라! 스스로를 믿었다.
그러나 인생의 돌발점이 찾아온 것도 그쯤이라 나는 공부를 완전 접고 새로운 관심사에 집중했다. 나의 확실한 외도를 친구들도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 인상적이었던 아주 짧은 시절 Deutsche liebe는 여전히 강력한 기억인지 나에게 독일어 공부를 다시 할 것을 제안해왔다.
|| 하마터면..
친구들이 과거의 나를 일깨워 줄수록 나는 사회로부터 소외됨을 느꼈다. 아주 오래전 캠퍼스를 누비던 그 여자애는 진짜 나였을까? 하늘에서 유모차와 함께 뚝 떨어진 아줌마 캐릭터가 지금의 나인데. 한때 주인공을 꿰차던 배우가 한물가서 단역으로 밀려났다면 그가 바로 나일 것 같았다. 촬영장에서 소외된 단역. 누구라도 대체 가능한 역할.
행복하다고 줄곧 생각해왔지만 최근 경제적 무능력 앞에 무기력해진 나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사는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82년생 김지영을 만나지 않았다면, 미혼인 친구가 내 손을 잡고 오열하지 않았다면, 내 짝사랑 독일어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그 밤이 그토록 시리지는 않았을 텐데.
하마터면 펑펑 울뻔했다. 차라리 막 울어서 새로운 주사가 생겼다고 놀림받으면 좋았으련만 원망스러운 눈물샘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뒤통수 한대 후려줄까?”
울기를 소원하는 나에게 친구가 우정 어린 제안을 해왔다.
“그래 줄래?”
냉큼 대답했지만,
“..... 내가 널 어떻게 때리겠니?”
그 말에 나는 가슴으로 울었다. 나의 20대를 함께해주고 기억해주는 친구들. 여전히 소중한 사람으로 나를 취급해주는 마음. 눈물을 흘리는 대신 목구멍으로 맥주를 흘리며 푼수같이 웃었다.
“울고 싶은데 자꾸 웃음이 나.”
집에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친구들의 숙소로 달려갔다. 친구들을 만나는 게 20대의 나를 만나는 것처럼 느껴져서 잠을 잘 수도, 집에 있을 수도 없었다.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라길래 생맥주를 주문했다. 시계가 오전 10시를 향하고 있었으니 20대의 어느 날처럼 한 모금 한 모금이 달고 소중했다.
“더 얘기해줘. 나 학교 때 어땠는지?”
“그때도 낮술에 강했지.”
허공을 바라보는 친구가 ‘수업이나 가자!’하고 벌떡 일어나 주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고마워’
한때 오래 만났고 현재 오래 떨어져 있는 친구들이란 참 아련하다. 그 기억이 아프고 존재가 고마웠다. 과거도 미래도 없이 아기 엄마로 고정된 김지영에게 넌 독일어에 열정적이었다고, 동아리를 사랑하고 선후배를 잘 챙겼다고, 밤술에는 취해도 낮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서사를 심어준다.
친구들을 보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과거에 그토록 바라던 따뜻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편하지 않았다. 방금 보내고 온 20대의 내가 훨씬 눈부셔 보였다.
‘배부른 소리 말고 다시 현실로!’
지금 내 가족, 내 친구와 마주한다. 그들에게 10년 뒤 나는 어떻게 추억될까? 부디 그때도 30대에는 눈부셨다고 돌아가도 괜찮을 만큼 시리고 아련했다고 기억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