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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Nov 10. 2019

뿌리 깊은 자존감은 바람에 아니뮐세

긍정적으로 살자!



 || 긍정의 말

 “넌 할 수 있어. 널 믿는다.”

 부모님의 격려와 응원이 시작된 건 학업이 시작된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다. 나는 그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는 어려워서 머리가 굵어진 고등학생 때는 ‘응. 나 공부 못해. 배 째’하는 자세로 살았다.

 “넌 머리가 좋아서 조금만 노력하면 금세 따라잡을 수 있어.”

 우리 부모님은 수능을 며칠 앞둔 어느 날에도 나를 격려해주셨다.


|| 사실은 나도 나를 믿어.

 부모님의 믿음 주입 12년. 덕분에 대학생이 된 나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었다. 그러나 자빠지고 주저앉을 일은 자꾸만 일어나서 나는 목표의 끝을 못 보고 포기하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리 엄마가 난 할 수 있는 사람이랬는데 또 왜 이럴까?”

 하며 자책과 자학으로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자책과 자학의 마무리에는 ‘다음번에는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다’고 나를 긍정했다. 긍정은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아주 오래된 믿음이다.


||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

 며칠 전, 내 집 마련을 위해 은행 빚을 얻겠다는 남편의 말에 나는 무한 낙하하는 한 방울의 소나기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큰돈을??”

 “책임질게. 자신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닥에 닿아 폭발하듯 부서지는 한 방울의 빗방울이 나의 심정이었다. 책임지겠다고, 자신 있다고 말하는 그의 계획에 내 몫은 없었다. 나도 남편을 도와 빚을 갚겠다고 말하고 싶은데 나에겐 경제적 능력이 없다. 큰 빚을 혼자 책임지겠다는 남편의 말이 나의 무능력을 자극했다.

 가자. 자책의 방으로! 자책의 방에 문을 두드리면 ‘넌 할 수 있어. 널 믿어’가 나를 맞이 한다. 난 뭐든 해낼 수 있는데, 이미 10대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30대 후반이 된 지금 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걸까? 나는 내 무능력을 경멸한다.


|| 진짜 긍정은 무엇?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동체 속의 한 사람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며 산다고 한다. 얀테의 법칙(jantelagen)이라고 부르는 그들 사회 통념이 이럴 때 참 부럽다.

 ‘뭐든지 해낼 수 있다고 너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주입되기보다는 공동체 속에 정신이 건강한 한 구성원으로 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그저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라고 배웠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 팩트는 팩트다.

 “나는 머리가 나빠. 얼굴도 안 예뻐”

 내가 스스로에게 솔직하겠다는데 굳이 그 말을 부정하며 “아니야. 너 머리 좋아. 너 예뻐. 자존감이 정말 낮구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거짓으로 포장하는 게 높은 자존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머리가 나쁘지만 괜찮아’

 ‘얼굴이 안 예쁘지만 괜찮아’

 ‘당장은 경제력이 없지만 괜찮아. 뭐라도 해서 벌면 되지”

 나는 자존감이 높지 않고 높은 척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부모님이 심어주신 뿌리 깊은 자기 긍정이 나에게 자존감도 되고 얀테도 되어 ‘괜찮아.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살길 바란다.


|| 고마워.

 나는 남편 덕분에 넓은 집에 이사 가게 생겼다. 그 집에서 따뜻한 밥을 짓고 귀여운 두 아이를 키울 것이다. 내 주제에 참 좋은 남편을 만났다. 내 꼬라지를 바로 보니 투정이 안 나온다.

 언젠가 나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살림에 보탤 날이 오길 바라며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일을 하게 되더라도 감사함을 잃지 말아야지’ 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점쳐본다. 좌절이 반복되어도 다시 일어나 긍정적으로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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