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가난은 달콤해
30여 년 전의 일이다.
“집안이 망했다.”
어른들마다 망한 사연을 조금씩 다르게 기억하고 계시긴 하지만 확실하고 명확한 결론은 ‘집안이 망했다.’
도매업을 하시던 할아버지 가게에 딸린 입이 여덟이었다. 가게는 다른 이의 손에, 할아버지는 경제사범이 되어 구치소에. 그렇게 여덟 명의 밥줄이 끊어졌다.
나는 당시에 3~4살쯤이었고 식구들 중 가장 어렸다. 가난했던 기억도 부유했던 기억도 없다. 다만, 보살펴주는 이가 딱히 없어 이 그늘 저 그늘 아래서 쭈구리 생활을 했던 것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기억이라기보다는 감성이 더 옳겠다. 대가족 속에서 외로웠던 어린아이의 감정이 내 기억을 지배하는 감성이었다.
가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자기 연민에 빠지는 이유도 아주 어릴 때 했던 쭈구리 생활이 억울하고 불쌍해서였는데 나는 오늘 이 지긋지긋한 감성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친정 부모님 댁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가족 회보’.
회보라는 단어가 낯설다. ‘한딸네아들’은 또 무엇?
아빠의 5남매-(딸 하나, 아들 넷)을 뜻하는 1986년도 스타일의 재치! 벌써 갬성이 돋는다.
할아버지의 ‘발간사’를 보라.
[ 화목한 분위기를 더욱 조직적으로 심화하기 위해 한딸네아들을 출간하게 된 것을 가족과 더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하는 바이다.]
한글을 아는 가족 모두가 한 꼭지씩 맡아 글을 썼다. 모든 글은 미대를 졸업한 작은아버지를 통해 편집되었다.
당연히 우리 부모님의 글도 있다.
퇴근길에 가정이 아닌 레크리에이션 장소로 발길을 옮기는 자신을 질책하는 아빠의 글을 보면 왠지 몹시 낯설었다. 예전에 외할머니께서 우리가 고향에 살 적에 아빠가 ‘진짜 철없는 남편’이었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아빠의 글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결혼 생활 6년간 이어져 온 아빠의 레크리에이션이란 엄마의 글에서 밝혀진다.
일일연속극을 보던 딸이 [아빠는 마음은 착하니까 당구는 치지만 우리를 팔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아빠는 레크리에이션(당구)에 빠져있었나 보다.
아빠는 집안이 망했기에 개과천선한 게 분명하다.
[언제 아침햇살이 올라왔는지 유리창을 깨어버릴 들 하다. 늘 찾아오는 아침. 성가신 기상시간. 몸을 비틀며 감기는 눈을 재촉하는 난. 일어나고 싶지 않은 문을 열고 아침 장만을 해야 한다.
나물 반찬 몇 접시에 가난이 매달린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정성으로 먹어주는 가족들의 미소 띤 모습에 아침 밥상은 진수성찬. 막내 기타 소리 따라 흥얼거린다.]
세상에서 젤 예쁜 줄 알았던 우리 고모. 글솜씨도 뛰어나다. 26살 노처녀였던 고모는 오는 4월에 큰 아들을 장가보내게 되셨다.
이밖에도 사랑에 실패한 막내 삼촌의 글, 삯월세방을 얻어 분가한 큰어머니의 글 들이 실려있다.
모든 글이 관통하는 주제는 ‘가난’이다. 망해버린 집안에서 가족애를 다지는 것 만이 최선임을 모두가 알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
[내일이 걱정되어 어제 일을 잊어야 하는 어머니의 참담함을 우리 모두 생각해야 합니다.]
환갑도 되지 않았던 할머니에게 이토록 아픈 시름이 있었음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된다.
갑작스럽게 닥친 가난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화목만을 욕심내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어른들께 경외감이 들 정도로 ‘가족 회보 한딸네아들’은 강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레트로 감성이 비단 옛것이 예뻐서가 아니라 옛것에서 위로받고 싶은 심리는 아닐까?
가난에 발버둥 치는 부모님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 외롭기만 했던 나는 긴 시간이 흘러 과거 부모님의 가난에 위로를 느끼는, 어쩜 이토록 끝까지 자식이기만 한지.
위기라고 느꼈던 순간도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30년에 걸쳐 증명하고 계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더는 자기 연민에 취하지 않으리.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눈 부신 우리의 삶을 위하여]
대학시절 좋아하던 노래 가사처럼 모두의 삶은 위대하나니 근성 있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