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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Feb 12. 2020

맞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내 눈에 내 아이가 가장 예쁜 순간은 잘 때다. 첫 번째는 낮잠 잘 때, 두 번째는 밤잠 잘 때, 그리고 세 번째는 아파서 누워 잘 때. 세 번째 잘 때는.. 뭐랄까.. 모성을 넘어 나의 인간성이 스스로 의심스럽지만 사실이 그렇다. 병마와 싸우는 아이를 끼고 누워서 ‘며칠만 고생하면 다 나을 거야. 다 나으면 맛있는 거 해줄게’하고 속삭이며 하루를 보내면 그날은 휴가를 받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반대로 아이가 안 예쁠 때는 징징거리며 놀아달라고 매달리는 순간이다. 징징거리는 소리는 이유를 막론하고 일단 듣기 싫고 신경이 곤두선다. 그러나 친정어머니 피셜 “너도 그랬다.” 하시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길이 없다.


 최근 나의 육아 고민은 남의 것을 뺏아 “아기 꺼 아기 꺼”라고 말하는 둘째에게서 시작되었다. 가만 관찰해보니 누나 손에 있는 장난감을 낚아채듯 뺏는데 잘 뺏아지지 않으면 서슴없이 주먹을 사용했다! 게다가 같은 단어를 7~10번씩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도 무척 걱정스러웠다.

 “엄마 화장실 다녀올게”

 하고 휴대전화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검색창에 상담내용을 쓰자 쏟아지는 유사 고민과 해결책들. “엄마 빨리 나와”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 때문에 감질나게 읽어보다가 나오니 모든 신경이 휴대전화로 쏠렸다.

 “자자”

 낮잠시간이 다가온 둘째를 업고 첫째에게는 만화영화를 켜줬다. 그리고 나선 무아지경 스마트폰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만에 하나 자폐라면’ 하는 우려에 가슴 조리고 ‘시간이 약’이라는 명언에 안도하며 한참을 읽어보다가 등에 업힌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는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며 마음속 무거운 벽돌을 내려놓지 못함을 인지했다. 스마트폰을 끄고 아이 옆에 누워 가만가만 생각에 잠겨본다.


 인터넷 세상엔 가벼운 체벌 혹은 벌세우기 등으로 훈육하는 분들이 생각 외로 많았다.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확고하신 분들이었다. 나도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지만 ‘훈육’ 그 자체에 용기가 없다. 내가 하는 훈육은 사실상 ‘화내기. 성질부리기. 힘의 논리로 억압하기’일 뿐인 것이다. 이 참에 제대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때문이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왔으니까.

 

 그러나 잠든 둘째를 토닥이며 이내 생각이 달라졌다. 나라는 인간은 인정받고 보상받길 좋아하니까 만약 아이를 때려서라도 못된 버릇을 고치게 되었다면 이다음에 나같이 어영부영한 엄마와 망난이같은 아이를 만났을 때,

 “우린 해냈는데 너희는 왜 못해내니? 우린 안 힘들었는 줄 아니? 왜 피해를 우리 애가 고스란히 봐야 하니?”

하고 나의 잣대를 남에게 드리대고 말 것이다.


 나는 참 착각을 잘한다.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하도 많이 들으니 질문만 들어도 스님 답변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러자 마치 내가 깨달은 자인 듯 착각했다가 어느 순간에 범부중생 그 자체임을 바로 보면 얼굴을 못 들만큼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또한, 기저귀 떼기가 식은 죽 먹기였던 첫째 때는 ‘난 이제 육아 만랩이야’했는데 둘째를 키우면서는 첫 육아만큼 헤매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런 어리석음을 기준으로 “난 때려서 고쳤다. 당신도 애 좀 때려라”라고 말하는 나를 상상하면 구역질이 올라온다. 아.. 그냥 생긴 데로 살아야지.


고집으로 살아 온 28개월


 우리 둘째는 공격성이 강하고 고집도 세다. 3월에 어린이집에 입소하면 선생님들과 학부형들에게 머리를 조아릴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 내가 지금 할 일은 아이를 때려 고칠게 아니라 진심으로 사죄하는 법을 궁리해 놓는 게 더 옳을 것 같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한다. 사랑과 용서의 힘이 언제나 승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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