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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n 15. 2021

"밀면"을 아시나요..

[밀면 이야기]


“야! 너 이번 학기 끝나면 군대 가지?”

“네...”

“형이 오늘 맛있는 거 사줄게.... 같이 가자..”

학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선배가 날 보고 이런 말을 했다.

뭔가 맛난 걸 얻어먹는다는 생각에 그 선배를 따라나섰는데 간 곳은 식당이 아니었다.

골목 입구까지 사람들이 줄이 늘어서 있었고 건물은 보루꾸(시멘트 블록)로 얼기설기

엮여있는 폐공장 건물이었다. 간판도 없었다.


그곳은 공장 마당에 테이블이 불규칙적으로 놓여 있는 식당도 아닌 공장도 아닌 

이상한 공간이었다. 아마도 공장이 문을 닫았는데 거기를 정리하지도 않고 식당으로 

개조한 것 같았다. 그 공장 터에 사람들이 꽉 차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여기 뭐 파는 데예요?”하고 선배에게 물었더니,

“여기 모르냐?, ‘밀면’ 집이야..” 하는 거다.


나는 ‘밀면’이라는 음식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생각해 보니 가끔 거리의 식당에서 빨간색으로 쓴 ‘밀면’ 간판을 본 적은 있었지만 

먹어 본 적은 없었다. 부산에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밀면이라는 음식은 간판으로만

본 음식이었다. 


그 '밀면'집은 생긴 것도 특이했지만 음식 값을 내는 방식도 색달랐다. 

방식은 이랬다. 입구에 서 있는 직원이 손님이 입구에 들어오면 

“몇 명이세요?”하고 물어본다. 손님이 “몇 명요.”하면,

“얼마요..” 하고 입장료 받듯이 밥 값을 받고 공장(?)으로 입장시켰다.


손님이 워낙 많다 보니 식사가 끝나고 돈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무너진 담벼락으로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보니 어떤 형태로든 돈 받기가

쉽진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메뉴가 하나뿐이니 음식 값을 따로 계산할 필요가 

없으니 이런 식이 가능했던 것 같다.


손님이 입장료를 내고 공장 한편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기다리면 한 번에 10명 

혹은 20명에게 음식이 배달 됐다. 육수가 부족하면 식당(공장?) 구석의 육수 

주전자에서 손님이 육수를 부어서 먹으면 됐다. 물론 그건 공짜였다.


추가 메뉴는 ‘사리’ 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입장료 낼 때 미리 돈을

내야 먹을 수 있었다. 손님들이 담 밖에서 안을 보면서 언제 자리가

날까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으니, 안에서 먹는 사람이 맘 편하게

추가 메뉴를 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후다닥 먹고 빨리 비켜주는 뭔가 모를 질서가

잡혀있는 특이한 식당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그랬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밀면은 당시 학교 앞 짜장면 

값 보다 쌌다.  


나는 음식 맛을 잘 모른다. 그냥 식사는 배만 부르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밥을 먹는다. 딱히 맛있는 걸 찾아다니지도 않고 떡볶이나 짜장면이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먹는 고급 음식은 설렁탕이나 곰탕 또는 돼지국밥 정도이다.

미각이 날 행복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잘 없기에 맛 집을 따로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이렇다 보니 내게 좋은 식당은 가격이 싼 식당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어쨌든 당시에는 그 신기한 광경을 보면서 호기심 반 배고픔 반으로 기대하며

음식을 맞이했다. 솔직히 그때 먹은 밀면이 그렇게 줄 서서 먹을 정도의 맛은 아닌 듯했다. 

아무리 내가 맛을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나도 사람이다. 그러니 입맛은 있다.

솔직히 줄을 서서 먹을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격을 듣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좋은 식당이네!!!" 


그 뒤 한 번 더 그곳을 찾은 적이 있다.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 후 혼자서 그 집을 찾아갔다. 

특이한 식당 모습이 보고 싶기도 했고 마침 학교에서 그 식당 쪽으로 길이 뚫려서 그 앞을 지날

길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 그 동네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큰 길이 생겨서인지 뭔가 많이 변한 모습이었다.


그 동네엔 ‘밀면’이라고 붙어있는 식당들이 너무 많이 들어서 있었는데, 

공장 건물의 '밀면' 집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물어물어 이전의 공장 집이 어느 식당으로 바뀌었는지 찾아갔지만 내가 두 번째로 

가서 먹은 밀면이 3년 전 그 밀면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 동네는 이미 '밀면'으로 유명한 동네가 되어 식당마다 빨간색 글씨로 

"밀면"이라는 간판을 붙여놓고 있었다.


몇 년 뒤 우연찮게 그 앞을 지나다 보니 밀면 식당들 앞에 관광버스들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 동네 '밀면'집들이 부산의 맛집으로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사실 그 공장 같은 식당은 이름이 없었다. 그냥 간판에 빨간 글씨로 딱 두 글자

"밀면’"만 쓰여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동네 이름을 따서 "가야동"에 있는 '밀면' 집이라고, 

그곳을 “가야 밀면”이라 불렀고 나는 그것도 뒤에 알았다.


아직도 나는 ‘밀면’이 왜? 부산의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됐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혹시, 가야동의 그 폐공장에서 팔던 밀면이 지금 부산의 명물이 된 '가야 밀면'의 

시초가 아닐까?


서울에서 일할 때 지인이 주말에 부산에 비행기 타고 ‘가야 밀면’ 먹으러 간다는

말을 해서 피식~ 웃은 적이 있다.


그때 그 친구가 "부산서 오셨으니 혹시 '가야 밀면' 아세요 하고 물었다. 

나는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잘 다녀오라는 말만 했다.

아마도 예전 그 시절이 생각 나서였을 것이다.


지인이 비행기를 타고 먹으러 간다는 그 밀면은 학생들이나 공장의 어린 직공들이 

싼 가격에 한 끼를 때우던 서민의 음식이었다.

무너진 담벼락의 폐공장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육수를 따라먹던

그 밀면을 먹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다니.........


세상이 바뀌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바뀌기 전의 것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더 신기한 일이고.....


간혹,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겪었는데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 자기의 이익에 맞춰 다르게 기억해 내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현재에 맞춰 과거를 조작하며 산다면 개인은 추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사회는 역사라는 걸 만들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밀면' 생각하다가 또 쓸데없는 생각까지 오버하고 있다.

그래도 뭔가 통하는 것 같기는 하다.

맞는진 모르겠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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