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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n 01. 2021

마마보이의 귀향..

마마보이의 귀향..


언젠가부터 ‘마마보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게 그리 좋은 어감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이렇게 부르면 화를 냈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자주 듣다 보니 내가 ‘마마보이’가 맞다는 생각이 들어 

대꾸하는 걸 포기했다.


그래서 지금은 “야! 너 마마보이구나!”라고 하면, 

“응, 나 마마보이야!”라고 대답한다. 


어머니는 혼자 사신다. 아버님은 6년 전 먼저 떠나셨다.

2년 가까이 병시중을 하셨고 부족한 아들 덕에 남편의 임종을 홀로 지키셨다.


혼자되고도 어머니는 꽤나 즐겁게 생활하신다. 

78세가 되던 해에 성당을 찾아가 수녀님께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어머니: “내가 영감이 떠나고 혼자 살다 보니 믿을만한 게 필요할 거 같은데, 여기 다녀도 되겠소.”

수녀님: “언제든지 오세요.”

어머니: “그려, 알았소”

수녀님: “ㅎㅎㅎ”


어머니에게 왜 성당을 왜 찾아갔냐고 물었더니,

“안 가본데라 한 번 가 볼라꼬.(못 가본 곳이니 한 번 가보려고)”라고 하셨다.


외국에서 돌아와 격리를 끝내고 하릴없이 도서관으로 출퇴근을 할 때였다. 

집으로 돌아갈 즈음 갑자기 비가 와서 도서관 입구에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어머니가 우산을 들고 오고 있었다.


“여는 뭐 한다고 왔스요. 못 보먼 우짤라꼬?”

(여기는 왜 왔어요? 못 만나면 어떡하게?)


“길이 항개 삔데 못 만날 일이 뭐 있노? 마~ 바람 쐬러 나왔다.”

(외길인데 못 만날 일이 뭐가 있니? 그냥 바람 쐬러 나왔어)


이런 장면을 보면 내가 어머니와 대단히 살갑게 지내는 거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나는 예전부터 되도록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려고 노력했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이 같이 살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 거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함께 살지는 못한다.  

사랑하는 이도 일상으로 들어오면 생활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그건 또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머니와 같이 살 수 있는 한계치는 일주일 정도다.

같이 있으면 사흘 정도가 가장 즐겁고 그 이상 넘어가면 뭔가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어 행복한 건 매우 짧은 순간인 것 같다.

사랑하는 이는 함께 있을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리울 때 가장 행복하다.

내 경우는 그랬다.


양산의 집을 떠나 서울로 온 지 8개월이 훌쩍 넘었다.

오늘 오후면 시외버스로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어머니는 종교에 관계없이 아버지의 제사를 계속 지내왔다.


나는 외국에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제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한국에 있는 덕분에 아버지 제사상에 절을 할 수 있게 됐다. 

어머니와 둘만 지낼 제사지만 오랜만이다 보니 기대가 크다.


이런 것도 마마보이라 부르면 뭐 듣긴 싫지만 난 마마보이가 맞다.

어쨌든 설레는 귀향이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양산행 버스를 기다리며...


남부터미널, 서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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