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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정체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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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May 24. 2021

그런 일도 있었다.

대학생 때 양산 '천성산'등반을 했을 때 일이다. 

등산을 마치고 하산 길에 길을 잃어 '내원사(內院寺)' 뒷담을 넘어 

경내로 들어간 적이 있다.


들어서고 보니 그곳은 스님들과 보살님들이 기거하는 내실(內室)이었다. 

거지 꼴을 한 청년 다섯 명이 산으로부터 울타리를 뚫고 들어와 내실 

마당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으니 스님들이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 어여쁜 비구니 한 분이 내 앞을 막고서는,

"지금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라고 해서.


죄송하다고 길을 잘못 들어 그랬다고 하며 목례를 하고 빠져나오는데, 

방 안에서 사람들이 얼굴도 내밀지 않고 방문만 빼꼼히 열고 우리를 

훔쳐보고 있는 것을 봤다. 


"스님들이 왜, 이렇게 우리를 쳐다보나?" 생각하며 절을 나왔는데,

나중에야 '내원사(內院寺)'가 비구니들의 수도 도량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여승들만 사는 절간의 내실을 남자 대학생 다섯 명이 거지꼴로 울타리를 

뜯고 들어갔으니 우리가 떠나고 난 뒤 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혹시 젊은 여스님들이 모여서 숙덕숙덕 우리 이야기를 했을까?

아니면 예의 없는 놈들이라고 욕을 했을까? 


나는 내실 뒤뜰에 걸려 있던 빨래들을 보면서, 

여기 왜, 저런 것들이 걸려있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스님들이 모두 방으로 숨어들었을 때,  

귓불이 빨개져서 빨리 나가라고 내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던 

어린 스님이 생각해 보니 참 용감했던 것 같다. 


반짝이는 머리 밑에 큰 눈망울이 인상적인 스님이셨는데.

지금은 해탈하셨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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