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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May 03. 2021

인연 끊기

상처는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의 기억에 더 오래 남나 보다.

인연 끊기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다.

부산에서 대학을 갓 졸업하고 서울에 취직이 되어 왔다가 갑작스럽게 실직을 해서 빌빌대고 있을 때였다. 

선배의 소개로 우연찮게 체육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지하에 있는 체육관이었는데 관장이 놀기를 좋아해 관리할 사람을 찾고 있던 곳이었다. 


체육관에서 일해서 좋은 점은 숙식이 제공된다는 것이다.

체육관들은 새벽에 문을 열어야 해서 간이로라도 숙식을 할 수 있게끔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당장 먹고 잘 곳이 없던 터였던 내게 이보다 좋은 조건의 일자리는 없었다.

월급은 적었지만 마다할 이유가 없는 자리였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시간이 흘러 직장이 됐고 체육관이 내 것처럼 됐다. 

관장은 하루에 한 번도 안 오는 날이 많았고 중요한 일이 생기면 전화와 온라인으로 처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에 있던 대학 동기 A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에 면접이 있다면서 며칠 묵어도 되겠냐는 전화였다.

특별히 안 될 이유가 없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 친구는 다음 날 일정이 3일 정도 된다며 체육관으로 찾아왔다.


첫날은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무실이 좁았지만 억지로 끼어 자면 못 잘 것도 없었다.

그런데 면접을 본다던 이 친구는 며칠 동안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열흘이 훌쩍 지났다. 

박봉인 내 입장에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군식구를 데리고 있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게다가 그 친구는 생활비를 한 푼도 보태지 않았다.


특히 힘들었던 점은 관장이 한 번씩 올 때였다.

처음 한 두 번은 별 말이 없다가 올 때마다 매번 그 친구가 있는 걸 보더니 썩 좋아하지 않았다. 

관장은 낮이나 밤이나 때 없이 불쑥불쑥 나타났기 때문에 숨거나 피하기가 어려웠다.


한 번은 관장이 내게 물었다.

“저 친구는 언제 내려가?”,

“ 곧 내려갈 겁니다.”,

“응, 알았어. 별일 없게 잘해...”

“네”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내겐 꽤나 부담되는 말이었다.


A는 그 후로도 10일이나 더 머물다 서울을 떠났다. 취직은 잘 안된 것 같았다. 

마음이 짠해서 갈 때까지 최대한 섭섭하지 않게 해 주려고 노력했었다. 

20일이 넘는 시간을 좁은 체육관 사무실에서 함께 숙식을 했으니 이것도 인연이다 생각했다.


그러고 몇 달이 지났을까 부산에서 또 다른 친구 B에게 연락이 왔다.

똑같은 이유에서였다. 그 친구는 주말만 머무른다고 했다.

월요일에 면접을 보고 바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나는 오라고 했다. B는 학교 때 나와 무척 친하게 지냈던 친구다.


B는 서울에서 바쁜 일정 탓에 거의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일요일도 밤늦게 들어와 잠만 자고 아침 일찍 나갔다. 월요일에는 면접도 마쳤다. 

그런데 부산 가는 차를 놓쳐서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더 체육관에 머물게 됐다.


마지막 날 밤 소주를 한 잔 하고 잠자리에 드는데 그 친구가 물었다.


“너 A에게 왜 그랬어?”

“내가 뭘? A가 뭐라 그래?”

“A가 졸업생 모임에 와서 이상한 소리 하던데?”

“뭐라고 하던데?”


술이 좀 됐던 그 친구는 부산에서 있었던 일을 술술 털어놨다.

A가 서울에서 얼마나 구박을 받았는지 다시 서울 가기 싫다고,

앞으로 내게 연락 안 할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A의 말로는 내가 좁은 사무실에서 자면서 발로 계속 툭툭 차면서 구석으로 밀어냈다는 것이다. 

너무 추워 사무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데 구석으로 자꾸 밀어서 엄청 서러웠다는 것이다.

게다가 컴퓨터도 사용하지 못하게 락을 걸어 놓고, 밥 먹을 때도 눈치를 많이 줘서 구박받으며 지낸 게 

힘들고 서러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야 그 녀석 서울에서 고생 엄청 하고 있으니까 서울 가도 연락하지 마라.

괜히 민폐 끼친다.”


나는 잠이 확 달아났다.


“뭐가 어째? 너 그 말을 믿냐?”

“뭐 꼭 믿는 다기 보다. '너 서울에서 되게 힘들게 살고 있구나', 

다들 그렇게 알고 있을 걸.” 


B는 이렇게 얼버무렸다.


나는 너무 분해서 뭔가 설명을 하려고 계속 횡설수설 해댔다. 


“사무실은 원래 좁으니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나가서 자라고 한 적 없어.

컴퓨터는 사무실에 관원들이 많아 왔다 갔다 해서 관장이 비밀번호 걸어 둔 거야”

라고 일일이 설명을 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야, 네가 안 그랬을 거 다 알아. 그래서 내가 온 거잖아.

그 녀석 학교 때부터 원래 뻥이 심했던 거 애들이 다 알잖아.

너무 신경 쓰지 마.”


이 말을 끝으로 그 친구는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한동안 잠들 수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몰려왔다.

게다가 변명을 괜히 했다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누구에게 설명한다고 해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게 더 화가 났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부산에 있던 동기들과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공적인 모임에 관련된 연락도 나는 더는 답을 하지 않았다.


B의 말처럼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을 텐데 몸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솔직히 학과 친구들과는 학교 때도 별로 친하지 않았기에 연락이 끊어진다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인연이 끊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웃기는 건 A가 몇 달 후 다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서울에 일이 있어 또 온다는 것이었다. 

그 전화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 체육관 그만뒀다. 그냥 방 잡아라...”

그 후로 A는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


살다 보니 인연이라는 게 참 쉽게 끊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상처는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의 기억에 더 오래 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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