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길을 잃다.
[세부(Cebu, Philippines) 남부 투어]
#10, 길을 잃다..
돌고래를 보고 돌아와서 바로 '바이스 시티(Bais, Negros)'를 출발했다.
마땅히 갈 곳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더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김 선생님께 작별 인사를 하고 “두마게티(Dumaguete)”로 향했다.
“두마게티 시티”는 네그로스 섬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다.
지금 가고 있는 “두마게티(Dumaguete)”는 세부(Cebu) 시티만큼은 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네그로스에서는 큰 도시이다. 한국 어학원이 많아 한인들도 많다고 했다.
두마게티(Dumaguete)로 가면서 생각해 보니 기왕 '네그로스 섬'으로 넘어왔으니
이곳에서 유명한 곳 몇 군데쯤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색이 가이드로
이 나라에 10년 가까이 살았는데 내가 사는 동네 이외에는 가 본 곳이 별로 없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구글 지도로 보니 바이스 시티에서 두마게티 까지는 사탕수수 밭 외에는
별로 가볼 만한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풀랑바토 폭포(Pulangbato Waterfalls)”라는 곳을
발견했다.
나는 “폭포”와 “온천”을 좋아한다.
“폭포”나 “온천”을 보면 왠지 신비한 느낌이 든다.
자연의 위대함과 오묘함이 동시에 느껴진다고 할까?
검색해 보니 “풀랑바토 폭포(Pulangbato Waterfalls)”는 네그로스에서 꽤나 유명한
관광 포인트였다. 유명한 폭포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부의 유명 관광 옵션인 “오슬롭 고래상어 투어”나 “가와산 캐녀닝”은 모두 폭포를 끼고 진행된다.
“오슬롭 투어”에는 “투말록 폭포 투어”, “가와산 캐녀닝”에는 ‘가와산 폭포’가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오슬롭 투어나 가와산 캐녀닝을 다녀온 관광객 중에는 메인으로 진행되는
“고래상어 관람”이나 계곡 탐험을 하는 “캐녀닝” 보다 폭포가 더 좋았다는 사람도 많다.
나도 “가와산 폭포”나 “투말록 폭포”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이리하여 별생각 없이 구글 지도를 안내자 삼아 “풀랑바토 폭포”로 차를 향했다.
지도로 확인한 바로는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따라 산길로 들어선 지가 벌써 한 시간이 넘었는데 아직도 산속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길을 잃어버린다는 게 믿기지 않겠지만, 필리핀에서는 지도를 믿으면 안 된다.
특히 온라인 지도는 더더욱 그렇다. 이 나라는 뭔가 확실한 것이 거의 없는 나라이다.
나는 지금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의 꼭대기에 있다.
“구글 맵”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즈음에는 이미 차를 돌릴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한 도로에
들어서 있었다. 비포장의 산길로 들어서고 난 뒤에는 너무 위험해서 차를 멈추고 여유 있게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길이 좁고 경사가 심해서 한 눈을 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젯밤에 비가 왔는지 바퀴가 자꾸 헛돌아 차를 세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계속 직진만 했던 것이다.
“구글 맵”의 인터넷 신호는 애초에 끊어졌다.
구글맵을 사용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게 신호가 끊어지면 마지막 화면에서 멈춰있다.
지도를 재시작하지 않으면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 딱 좋은 것이다.
산 정상이 눈앞에 보일 즈음 그것을 알게 됐고 이미 차는 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올라오면서 몇 번을 차를 돌릴 생각을 했지만 길이 워낙 험해서 불가능했다.
돌린다고 해도 미끄러운 비포장 산길을 사륜구동도 아닌 차로 다시 내려가는 건 자살행위로 느껴졌다.
운전을 오래 했지만 이렇게 차에 앉아 공포에 빠져보긴 처음이었다.
꾸역꾸역 산 정상에 이르니 좁은 평지가 나타났다. 일단 차를 세우고 땅을 밟았다.
차에서 내리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허리도 아팠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산 정상에서 뒤쪽을 보니 저 멀리 구름 낀 산봉우리가 보였다.
경치는 좋았지만 그런 걸 감상할 때가 아니었다.
입에서 저절로 이런 소리가 나왔다.
" 젠장!! X 됐다."
(10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