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녀와...(2부)

(부제: '나쁜 남자' 신드롬)

by 벼랑끝

#2 오늘은 그녀와....

(부제: ‘나쁜 남자’ 신드롬) - 2부.


내 몸은 나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따르고 있었다.

침대 위로 올라가서 팬티 옆에 손가락을 걸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팬티를 내리려

하자 엉덩이 쪽이 시트에 걸렸는지 잘 내려가지를 않는다. 앞쪽의 음모만 살짝 노출됐다.

할 수 없이 팬티에서 손을 떼고 오른손을 허리와 침대 사이로 넣어 허리를 감쌌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을 엉덩이와 침대 시트 사이로 집어넣어 팬티의 뒤쪽을 잡았다.

그녀의 둔부를 안는 듯 엉거주춤한 자세가 됐고 그녀의 배꼽이 내 코끝에 닿으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몸을 비틀면서 “음... 음..”하는 잠꼬대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꿈틀거렸다.

나는 손을 빼고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만약 그 순간 그녀가 눈을 뜨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면 정말 가관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그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그런데 다행히도 그녀는 얼굴을 옆으로

돌린 채 하얀 목덜미를 보이며 꼼짝하지 않고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목덜미 옆으로 브라의 검은 어깨끈이 가슴 위의 조개껍질과 연결되어 있었다.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조개껍질을 보니 어렵게 팬티를 벗기는 것보다 브라를 먼저

벗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고개 돌린 그녀의 목선을 타고 내려 오는

작지만 봉긋한 가슴이 훨씬 더 유혹적이었다. 게다가 브라를 올리는 건 팬티를

벗기는 것보다 훨씬 쉬워 보였다.


엉덩이에서 손을 빼서 두 손바닥으로 검은색 조개껍질을 덮었다.

손바닥 한가운데 뭔지 모를 돌기 같은 것이 닿는 느낌이 왔다.

두 손의 엄지 손가락을 조개껍질의 밑으로 집어넣자 엄지 손가락 끝에 그 돌기가 닿았다.

기분이 좋았다. 엄지 손가락으로 브라를 밀어 올리려고 하는데 그녀의 옆모습과 눈이

마주쳤다. 옆모습과 눈이 마주쳤다는 말이 우스워 보이지만 하여튼 그녀의 잠든 옆얼굴이

내게 이런 말을 하는 듯이 보였다.


"뭐하냐? 비겁하게?"

나는 한동안 엄지 손가락에 돌기가 닿은 채 그녀의 옆얼굴을 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조개껍질로 속의 손을 빼내 옆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겼다. 그러자 섹시한 목선과 둥근 어깨가 드러났다.


그녀가 누워 있었다. 그곳엔 평소 내가 두려워하던 차가운 미모의 댄서는 없었다.

약하고 여려 보이는 평범한 여인이 속옷만 입고 누워 있었다. 잠든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어설픈 행동을 멈추고 침대에서 물러났다. 갑자기

엄청난 수치심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한 곳에 피가 몰려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큰일 날 뻔했다." 중얼거리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담요를 펴서 그녀의 어깨

위까지 덮었다. 얇은 호청 같은 여름 담요 밑으로 아름다운 그녀의 몸매가 드러났다.

내가 돌아섰을 때 그녀의 한숨 같은 숨소리를 들은 것 같다. 아마 착각이었을 것이다.

나는 방을 나와서 거실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으니 피곤함이 물밀듯이 몰려와서

옆으로 쓰러졌고 10초도 안 되어 정신을 잃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이미 아침 7시가 지나 있었다. 오늘은 오전에 중요한 미팅이 있다.

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침실로 가보니 그녀는 등을 보이며 옆으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방안 가득 묘한 향기가 났다. 침대 옆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야, 일어나.” 그녀는 움직이지를 않았다. 어깨를 잡아 돌리니 부스스 눈을 뜬다.

그러더니 뭐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니

한국말로 “나, 아파..” 이런다. 그녀의 입에서 테킬라 향이 섞인 향긋한 여자 냄새가

났다. 처음 방에 들어올 때 맡은 그 향기였다.


화장을 안 한 Mido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다. 무대화장을 했을 때와 지금은 많이

달랐다. 화장기는 남아 있었지만 차가운 느낌은 사라졌고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있는

평범한 여자의 모습만 남아 있었다.


“나, 아픈 거 같아, 조금만 더 누워 있으면 안 돼?” 이런다.

“안 돼! 나 지금 가야 해. 지금도 늦었단 말이야.” 그랬더니,

“미안한데, 나 진짜 못 움직일 거 같아” 이런다.


나는 잠시 보고 있다가 “알았어, 갈 때 문 잘 잠그고 가” 하고는 방을 나왔다.

“응”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나는 오전의 미팅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차에 시동을 거는데 기분이 좀 그랬다. 시동을 걸어 놓고 다시 들어가서 냉장고에서

타이레놀 두 알을 꺼내 물 한 컵과 함께 침대 머리맡 탁자에 놓았다.


“야, 이거 먹어!” 하고 집을 나왔다.


겨우 시간 맞춰 미팅에 참석해서 오전 일정이 끝나고 나니 한 없이 찝찝한 기분이

몰려왔다. 내가 필리핀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필리핀 사람 특히 세부의 댄서들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빈 집에 혼자 두고 오다니. 집안 털어 가라고 도둑놈에게 키를

맡겨 놓은 거나 똑같은 일을 했다.


간혹 빌리지에서도 도둑을 맞는다. 그럴 때면 냉장고의 간장병까지 다 비워가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이다. (*빌리지: 필리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택 단지.

개인 경비업체가 관리를 해서 비교적 안전한 주거지역)


손님들이 댄서들과 2차를 나갔다가 다음 날 찾아와서는 지갑을 잊어먹었네,

휴대폰을 분실했네 항의를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손님들이 2차를

가게 되면 가이드들은 방에 가면 어떻게 행동하라는 지시사항을 알려준다.


예를 들면, 현금은 지갑에서 꺼내 휴지통이나 침대 매트리스 밑에 숨겨

두라고 하거나, 핸드폰은 항상 눈에 띄는 곳에 두고 잠들 것 같으면 베개

밑으로 숨기라고 일러준다. 돈이 없는 지갑은 테이블이나 침대 옆에 두라는

훼이크를 쓰기도 한다.


댄서들은 손님의 바지나 소지품을 뒤지는 것을 예사로 생각해서 도난 사건은

심심찮게 일어 난다. 그런 걸 알면서도 그녀를 집에 혼자 두고 나온 것이다.

오후가 되자 집에 있는 그녀 생각에 마음에 걸려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필리핀은 은행을 사용하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대부분 집에는 금고를 두고

현금을 보관한다. 이러니 도둑이 집에 들어오면 당연히 금고부터 찾는다.

크지 않은 금고는 통째로 들고 가는 일도 흔하다.


도둑들은 빌리지를 빠져나갈 때 경비들에게 걸리기도 하지만 경비들과 몇 푼 나누면

모두 해결된다. 도둑이 경비를 서는 것과 마찬가지이지만 필리핀에서는 흔한 일이기에

도둑을 안 맞게끔 조심하는 일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나는 그날 금고에 꽤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가이드는 행사비를 현금으로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항상 많은 현금을 보유

하고 있어야 한다.


금고 생각이 떠오르니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전화를 몇 번 했지만 받지를 않았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젠장, 내가 왜 아침에 그냥 나왔을까?

억지로라도 차에 태우고 나왔어야 했다.

택시비나 좀 줘서 편의점 앞에 버리고 왔으면 됐을 일을..."


이런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저녁에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차의 속도조절이 안 됐다.

집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더 증폭되어 빌리지 게이트를

통과할 즈음에는 머리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집 앞에 차를 대니 거실에서 불빛이 새 나왔다. 문을 여니 인기척이 없다.

나는 차의 엔진도 끄지 않고 황급히 집으로 들어가 금고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금고를 열려고 했던 흔적은 없었고 열어보니 내용물도 이상이 없었다.

그때서야 겨우 안심이 되며 피로가 몰려왔다.


밖으로 나와서 차의 엔진을 끄고 문 앞 의자에 주저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빨랫줄에 어젯밤 내가 벗겼던 미도의 청바지와 셔츠 그리고 그녀의 속옷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내 빨래들도 보였다. 아마도 낮에 빨래를 한 것 같았다.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일 때쯤, 저 앞 50m 정도에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미 해가 져서 가로등 불빛밖에 남지 않은 빌리지의 집들 사이로

웬 여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였다. 손에 뭔가가 들려있었다.

낯익은 내 비치웨어 반바지를 입고 우리 회사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미도 : 집에 왜 이렇게 먹을 게 없어?
-나 : 쌀 있잖아.
-미도 : 내가 냉장고 위에 있던 동전 통 깨서 계란하고 라면 같은 거 좀 사 왔어.
-나 : 야, 너 그거 어디서 샀어?
-미도 : 빌리지 앞에 한국 슈퍼에서 샀지.
-나 : 너, 우리 회사 셔츠 입고 돌아다녔냐?
-미도 : 뭐 어때?
-나 : 젠장... (티셔츠 오른쪽 가슴에는 내 이름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너, 왜, 전화 안 받아?


-미도 : 배터리가 다됐어. 전화했었어?
-나 : 했지. 여러 번.
-미도 : 왜, 했어?
-나 : 왜 하기는, 빈 집에 사람을 두고 나왔으니 당연히 궁금해서 했지.
-미도 : 걱정했구나. 뭐 들고 갈까 봐..
-나 :.......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그런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뒤따라 들어가 보니 집안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서자 침실로 가서 바지를 벗었다. 흘깃 보니 티셔츠가

허벅지까지 내려와 다리만 보였다.


“야! 너 바지 너무 불편해 뭐 다른 거 없어” 한다.

“그대로 있어 보기 좋네 뭐” 했더니, 나를 잠시 흘겨보더니 침실 서랍장을 뒤져서

내 트렁크 팬티를 꺼내 입었다. 티셔츠가 팬티를 가려서 언뜻 보기에 아래에

아무것도 안 입은 것 같다.


미도는 낮 12시가 넘어서 잠에서 깼다고 한다. 배가 너무 고파서 집에 있는 쌀을

씻어 대충 밥을 해 먹고 내친김에 집 청소와 빨래까지 했단다.


그녀는 라면을 끓였고, 나는 샤워를 했다.
내 집에서 다른 사람과 밥을 먹는 것은 거의 1년 만이다. 1년쯤 전 후배들이 집들이를

한답시고 음식과 술을 준비해와 거나하게 놀았던 적이 있다. 그 이후 우리 집을 찾아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Mido가 김이 나는 라면을 테이블에 놓고는 싱크대에서

유리컵 두 개를 찾아왔다. 그러더니 ‘조니워커-블랙라벨’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나 : 그거 어디 있었어?
-미도 : 싱크대 찬장에 있던데?


나는 술을 못 마신다. 그래서 술을 사는 일이 없다.

도대체 그 '조니워커'가 어디서 나왔는지 신기했다.

아마 집들이 때 먹다가 남은 술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내 잔에 얼음을 넣고 술을 따랐다.

그리고 자기 잔에는 얼음 없이 반쯤 그냥 따랐다.


“넌 얼음 안 넣어?” 하고 물었더니,

“난 괜찮아, 너 술 잘 못 마시잖아”이런다.

그리고 잔을 들더니 “위하여~!”를 외친다.

“뭘 위해?” 하고 묻자,

“한국 사람들은 술 마실 때 다 이렇게 하는 거 아냐?”이런다.


나는 잔에 입만 살짝 대고 마시지는 않았다.

맥주 한 병 정도야 억지로 먹지만 독한 술을 마시면 나는 거의 정신을 잃는다.

그렇다 보니 되도록이면 술자리를 피하는 편이고 어쩔 수 없을 때는 마시는 시늉만 한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술을 못 마시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그녀와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그녀는 컵을 비우더니 후루룩후루룩 라면을 먹었다. 나도 따라서 먹었다.

미도는 라면을 잘 끓였다. 맛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빈 잔에 또 술을 따랐다.

-나 : 야! 양주하고 라면하고 먹으면 맛있냐?
-미도 : 맛있어.. 너도 먹어봐...


나는 우물거리던 라면을 삼키고 얼음이 담긴 조니워커를 한 모금 마셨다.

의외로 양주와 라면은 잘 어울렸다.

"이거 생각보다 맛있네?"

"그지, 맛있지?" 그녀는 살짝 웃으면서 두 번째 잔을 비웠다.


우리는 함께 라면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녀는 혼자 반 병 정도 남았던 술을 다 비웠다.

나도 두 잔 정도를 거들었다.

얼음을 타서 먹었음에도 나는 두 번째 잔을 비웠을 때 이미 정신을

잃을 만큼 취해 있었다.


소파에서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귀에 닿는 그녀의 맨살이 따뜻했다.


그때 갑자기 그녀 허벅지 안 쪽에 있는 하트 무늬가 생각났다.

지금 고개 돌려 다리를 벌리면 바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밤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즈음에....


그녀가 이런 말을 툭 던진다.

"소파에서 자면 불편하지 않아?"




( 3부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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