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녀와...(3부)

(부제: '나쁜 남자' 신드롬)

by 벼랑끝

#3 오늘은 그녀와....

(부제: ‘나쁜 남자’ 신드롬) - 3부.


내 머리가 그녀의 맨살 허벅지에 닿자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TV를 보면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나 : 너 요즘 술 많이 마신다며?

-미도 : 나 원래 술 많이 마셔.

-나 : 만날 사고 치고 그런다며?

-미도 : 몰라, 요즘 일이 자꾸 꼬여서 그런가 봐.

-나 : 뭐가 꼬이는데?

-미도 : 나에 대해서 알아?

-나 : 내가 널 어떻게 아냐?

-미도 : 나 마닐라에 5살짜리 애가 있어.

-나 : 엥?

-미도 : 애 아빠가 한국 사람이야.

-나 :....

-미도 : 세부에서 같이 살았는데, 애가 태어나자 그 사람이 아이를 마닐라로

데려갔어. 한국에 있던 부인이 마닐라로 들어왔거든. 할 수 없이 애를

보냈어.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거야, 그 사람 마닐라에 꽤 큰 슈퍼마켓을

가지고 있어.


젠장, 왠지 이야기가 신파로 흘러가고 있다. 너무 뻔한 스토리다. 술이 취해 정신은

없지만 이런 말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간혹 영어가 좀 되는 한국 관광객이 오면 클럽 걸들이나 댄서들은 이런 스토리로

손님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정말 순진한 손님들은 휴대폰은 물론이고 가전제품이나

옷과 구두 심하게는 집을 구해서 몇 달치 집세까지 내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 두 개 외워서 손님들에게 써먹는다. 영어를 잘해서 대화가

되는 사람일수록 효과는 좋아진다.


-나 : 됐거든, 그 스토리 말고 다른 걸로 이야기해봐.

-미도 : 왜?

-나 : 그 스토리 가진 사람, 너 말고도 10명은 더 알아. 딴 이야기 해봐.

-미도 : 치~,

-나 : 난 관심 없다니까?

-미도 : 그럼 다른 이야기해 줄게, 사실은 나 ‘거기’가 아파.

-나 : 거기? ‘거기’가 어딘데?

-미도 : ‘거기’, ‘거기’,..... 네가 오늘 밤에 관심 있어할 거기 말이야.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허벅지 사이를 가리켰다.)


-나 : 아니 ‘거기’가 왜 아파?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미도 : 얼마 전에 나 한국 손님 한 번 받았었거든.

-나 : 근데?

-미도 : 근데 엄청 세게 하는 거야.

-나 : 어떻게 하는 게 세게 하는 건데?


-미도 : 처음에 호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날 뒤로 휙, 돌리더니 끌어안으면서

뭐라는지 알아? “난, 니 머리 색깔이 마음에 들어” 이러는 거야.

-나 : 그래? (나하고 똑같네)

-미도 : 탁자에 날 엎어지게 하고는 바지를 내리는 거야. 그러더니 팬티를

옆으로 벌리고는 벗기지도 않고 자기 걸 막 집어넣는 거야.

-나 : 으잉??? (이 이야기가 훨씬 재밌다.)

-미도 : 이거 진짜라니까. 테이블에 엎어져서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어.

-나 : 어쨌든 그래서?

-미도 : 그렇게 옷도 안 벗은 채로 끝난 거야. 샤워도 하기 전에.

-나 : 그게 다야?


-미도 : 그러더니 나보고 샤워하고 오래.. 그래서 끝났으니까 가겠다고 했거든?

-나 : 그랬더니?

-미도 : 그랬더니, 그런 거 없다는 거야. 마마상한테 돈 두 배로 지불했다고

전화해서 확인해 보래. 전부터 나하고 하고 싶었다나 뭐래나?

오늘은 자기하고 아침까지 있어야 한다는 거야. 몇 달 전부터 날 찍었데.

꼼짝없이 잡혀서 죽는 줄 알았어.


-나 : 그래? 아무래도 내가 아는 사람 같은데. 이름이 뭐야?

-미도 : 이름 몰라, 몸에 문신도 많고, 무섭게 생겼어. 코리안 마피아 같은 사람이야.

그 나쁜 놈이 샤워하고 나오니까 뭐 하고 있는지 알아?

침대에 누워서 지껄 주물럭거리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나보고 자기 위로

올라오래. 그러더니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리는 거야.

아파 죽는 줄 알았다니까. 그날 몸 여기저기 멍도 들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엉망이었어.

그 더러운 놈이 아침에는 손가락으로 또 얼마나 후벼 파던지.

그놈은 샤워도 안 해.


-나 : 좋지 않았어?

-미도 : 뭐가? 손가락으로 하는 거? 여러 번 하는 거? 때리는 거?

-나 : 전부 다. 너 세게 하는 거 좋아할 거 같은데.

-미도 : 너, 미쳤냐? 그런 걸 좋아하는 여자가 어딨어?

세게 하는 것도 잘해야 좋은 거지. 무조건 갖다 쑤신다고 좋아하냐?

-나 : 잘하는 게 어떻게 하는 건데?

-미도 : 그걸 어떻게 설명해. 거칠게 해도 좋을 때가 있단 말이야.

그래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하는 건 아니지.


-나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미도 : 그 손님 받고 며칠 뒤부터 배도 아프고 느낌이 안 좋은 거야.

-나 : 뭐? 그래서?

-미도 : 우리 일주일에 한 번씩 검사받아야 하잖아. 그때 그러는 거야.

내 속에 상처가 난 거 같다고. 염증이 생겨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거야.

잘못하면 큰 일 날 수 있으니 춤도 추지 말고 몸조심하라고.

아마 손가락 때문에 상처가 났나 봐.

-나 : 음....


-미도 : 그래서 2주 정도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일도 못 가고, 술도 못 마시고

약 먹으면서 집에서 쉬고 있었거든. 그러다가 어제 오랜만에 나간 거야.

-나 : 그래? 지금은 괜찮아?

-미도 : 지금은 괜찮아. 왜? 걱정돼?

-나 : 걱정되지 당연히.

-미도 : 뭐가 걱정된다는 거야? 내가 걱정된다는 거야? 네가 걱정된다는 거야?

-나 : 나!

-미도 : 뭐가 어째? 야! 그럼 하지 마,

나도 너하고 하고 싶지도 않아. 흥!


그러면서 침실로 휙 들어간다. 사실 나는 술이 취하면 섹스가 안 된다.

술이 깰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오랜만에 마신 양주 덕에 머리는 점점

더 아파왔고 또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녀와의 잠자리가 썩 내키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소파에 누워 있다가 잠들어 버렸다. 결국 그녀와 보낸 이틀 밤을

나는 모두 소파에서 지낸 셈이다.


아침에 눈을 떴더니 미도가 자기 옷으로 갈아입고 내 옆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다.


-미도 : 나 만 페소만 빌려 줘. (*1만 페소-약 25만 원)

-나 : 뭔 소리야? 우리 하지도 않았잖아. 밥도 먹여주고, 잠도 재워주고,

클럽에서 술값도 내가 다 냈어. 그런데 또 만 페소씩이나 달라고?

-미도 : 달라는 거 아냐. 빌려줘. 나 급하게 돈 쓸 일 있단 말이야. 다음에 값을 게.

-나 : 뭐가 급한데? 돈 빌린 거 있냐?

-미도 : 그런 거 아냐. 진짜 나 돈이 필요해. 어젯밤에 네 지갑에서 돈도 안 뺐어.

그러니까 조금만 도와줘. 꼭 갚을 게.

-나 : 됐어. 돈 없어. (돈 안 뺀 게 무슨 자랑이냐?)

-미도 :.....


나는 출근길에 미도를 큰 길가에 내려 줄 생각이었다. 차를 타고 큰길로 나오는 동안

옆 자리에 앉은 그녀는 시무룩한 채 말이 없었다. 나는 마음이 무거웠고 갈등이 생겼다.

차가 서자 말없이 그녀가 내렸다. 축 처진 어깨로 차 앞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클랙슨을 울렸다. 그녀가 돌아봤다. 나는 그녀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창밖으로 내밀었다. 그랬더니 그걸 본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돈을 받아 넣고는 차창 앞에서 잠깐 날 바라보더니 “땡큐”라고 소리 나지 않게 입모양

으로 인사를 하고, 손바닥에 키스를 해서 훅~ 불어 내게 날렸다. 그리고 밝은 미소를

남기고 돌아서 뛰어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저 돈 받으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쯤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낸 후 혼자 Bar를 찾았다.

마마상이 옆에 와 앉는다.


-마마상 : 손님 같이 안 왔어?

-나 : 응. 혼자 왔어.

-마마상 : 술도 못 마시면서 혼자 여긴 왜 와?

-나 : 그래도 맥주 한 병은 마신다.

-마마상 : ㅎㅎㅎ

-나 : 미도 나왔어?

-마마상 : 미도는 왜? 너 미도 좋아하니?

-나 : 좋아하기는, 나 미도한테 돈 받을 거 있어.


-마마상 : 그래? 미도 마닐라 갔어. 일주일쯤 된 거 같은데.

-나 : 마닐라는 왜?

-마마상 : 딸이 아프다나 뭐라나?

-나 :......

-마마상 : 애 아빠가 애를 아는 사람한테 맡기고 한국으로 갔다나 봐.

연락이 끊겼다는 거 같아. 가게도 정리했다고 하고, 아마

CASINO에서 카드 좀 만졌나 봐? 한국으로 도망갔나 봐.


-나 : 미도한테 딸이 있었어?

-마마상 : 몰랐어?

-나 :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마마상 : 그래? 미도는 가끔 너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하던데.

-나 : 그래?

-마마상 : 가끔 그랬어.

-나 : 미도 언제 온다는 말 없었어?

-마마상 : 그걸 어떻게 알아? 왜? 얼마나 빌려줬는데?

-나 : 얼마 안 돼, 됐어.


나는 바를 나와서 차에 시동을 걸며 생각했다. 진짜 돈이 필요했었나 보다. 돈은 필요

한데 몸이 아파 일을 못하게 됐으니 속이 상했을 것이다. 댄서들은 급료를 받지만

그건 얼마 안 되는 돈이다. 2차를 나가거나 테이블에서 술을 마셔야 그나마 돈이 생긴다.


집으로 운전해서 오는 길에 기분이 착잡해졌다. 집에 도착해서 미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잠들기 전에 "How are you?" 하고 문자를 남겼다. 다음 날 아침에 핸드폰을

보니 답장이 와 있었다.


"Sorry..., thanks......... everything.."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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