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체불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랑끝 Jan 02. 2022

천사가 지나간 시간

안규철 작가, "사물의 뒷모습"의 머리말 중 발췌....

'천사가 지나간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갑자기 끊기고 낯선 정적이 흐르는 순간을 독일어나

불어에서는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을 빌리면 이 책의

글들은 내 안에서 천사가 지나간 시간들의 기록이다.


하루 종일 혼자 작업실에 머물며 대부분의 시간을 침묵 속에서 지내지만,

혼자 있어도 대화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림을 그리거나 나무를 다듬는

동안 재료들과 대화하고 머리와 손이 대화하고 왼손과 오른손이 대화한다.

이 말없는 대화가 어느 순간 끊기고 정적의 시간이 찾아올 때, 내 안에서

천사가 지나갈 때, 사물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들을 따라가는 짧은 산책 속에서, 무심히 지나쳐왔던 풀과 벌레와 나무들을

만나고, 우리가 만들었지만 알지 못하는 사물의 뒷모습들을 만난다. 정처 없는

이 여정은 끝이 없지만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이 길들은 어딘가에서 서로 만날

것이다. 짧은 한 순간일 수도 있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이 시간,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만이 내게는 예술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다.


(하략)


안규철 작(作), "사물의 뒷모습"의 머리말 '천사가 지나간 시간' 중 발췌 필사.....




'딴지'의 가장 오래된 게시판 중 하나인 "정체불명"의 '콩쥐' 이장이

2021년 마지막 무렵에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는 멋진 글을 올렸다.


이 글을 읽자니 해가 바뀌기 전에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 두 개(?)를 썼다. 완성됐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됐다.

2021년 마지막 날 뭐라도 했으니...




2021년은 지구에 천사가 지나간 시간이었다.

우리의 삶이 정적 속에서 허우적 된 시간이 아니었을까.

살면서 이런 시간을 또다시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떠나야 했던 시간이었고,

그리워하는 것을 보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10년 후에 스무 살이 될 아이들은

'천사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떠올릴 수나 있을까?


10년 후의 나는 2021년 '천사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때까지 존재하고 있기는 할까?

지나는 시간을 가늠하며 나의 의무를 다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21년은 그대와 나 사이에  

천사가 지나간 시간이었소.


우리 사이에 천사가 지나가지 않았다면,

그대가 내 삶 속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거요.


천사의 시간이 없었다면,
그대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거요.


그대와 나 사이에 천사가 없었다면,

나는 그대를 떠나지 못했을 거요.


그 시간이 없었다면

그리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지 못했을 거요.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도 이야기] "탑 건-메버릭" & 아이맥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