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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Aug 03. 2022

'편안한 것'과 '편리한 것'

삶은 질문이 아니라 답을 찾는 과정

내겐 몇 가지 장애가 있다.


첫째,

나는 뛰지를 못한다. 걷는 건 그럭저럭 하는데 달릴 수는 없다.

10여 년 전 죽을 만큼 크게 앓은 후 그렇게 됐다.  

고열로 기절하기 직전 119 앰뷸런스에 실려가며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  

"40도 넘었어요!!" 이거였다.


몽롱한 상태에서 이런 혼잣말을 했었다.

"C8 이러다 죽는 거 아냐?" (신기하게도 이게 기억이 난다)


다음 날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도 보이고 소리도 들리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었다.

물론 발가락도 안 움직였다.


눈 깜박이는 거 외에 아무것도 못 하는 내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 "걱정하지 마세요. 몸은 회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   : (가능성????  우 씨~~)


다행히 의사의 말대로 다음 날부터 몸은 조금씩 원상복구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움직이더니 발가락, 목, 발, 다리, 허리 순서로 차례로 감각이 돌아왔다.  

그런데 왠지 우측 다리만 움직이질 않았다. 발가락은 움직이는데 무릎이 굽혀지지 않는

것이었다. 의사는 신경에 손상이 있는 것 같다며 기다려 보라고 했다.


그 후로 시간이 흐르며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오른쪽 무릎 부위의 감각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뛰지를 못한다. 천천히 걸으면 별로 

티가 안 나지만 보통 사람보다 확실히 걸음이 늦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걸을 땐 속도를 맞추기 위해 집중해서 열심히 걷는다.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지금까지 삶의 절반을 바치며 했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은 좀 아쉬운 일이다. 


재작년 한국에 돌아와서 스트레스 때문인지 다리가 조금 더 안 좋아졌다.

그래서인지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다리도 불편하신데 앉아 계세요."

"벌써 다리가 그래서 어쩜 좋아"

"힘들면 말씀을 하세요."

"다리 불편하시니까..."


측은한 눈초리로 이런 말을 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이상하게 다리보다 가슴속이 훨씬 불편하다.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왜 불편하지? 거 참, 희한하네."


필리핀에서 이런 말을 들어 봤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없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영어나 필리핀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기억이 안 나는 거겠지?"

"말을 못 알아들으면 가슴속이 불편한 일도 없는 거구나"는 시답잖은 결론을 내렸다.  


둘째,

예전에 세부(Cebu, Philippines)에서 가이드 일을 할 때였다.

손님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가이드님은 목소리가 우렁차서 좋아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이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언젠가부터 승합차(15인승)에 타면 세 번째 열에 앉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잘 안 들렸다. 처음엔 차 안이 시끄럽고 사람들 목소리가 섞여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유독 내가 "네???, 뭐라고요???" 같이 되묻는 말을 

자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휴가 때 한국 병원에서 귀 검사를 받아 봤다.  


의사: "언제부터 이랬어요?"

나  : "잘 모르겠어요."

의사: "크게 불편하진 않으시죠?

나  :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라면 아니고 그래요"


의사: "선생님은 일정 음역의 소리를 못 들으세요.

사는데 크게 지장은 없지만 좀 불편은 할 겁니다.

아시죠 나이 먹으면 가는귀먹는다고 하잖아요.

그건 치료가 되지 않아요. 적응해서 살아가야죠.


TV나 음악 소리가 잘 안 들리면 소리를 크게 하지 말고 차라리

좀 작게 해 보세요. 그럼 더 잘 들릴 수도 있어요."

나  : "음, 그냥 불편한 걸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거네요"

의사: "네"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무척 집중해서 듣는다.

이런 행동을 보고 사람들은 내가 매우 예의 바른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대의 말을 놓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화 때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듣는다.

집중만 하면 못 듣는 소리는 없으니 별일은 없다. 하지만 지나가면서 툭

던지고 가는 말은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귀가 안 좋은 사람은 말할 때 목소리가 커진다. 

남들도 자기처럼 못 들을까 봐 무의식 중에 소리를 크게 내는 거다.

난 말도 많은데 목소리까지 컸을 테니 나와 대화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그런데 가끔은 아무리 집중해도 말을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내 귀가 이상한 건가 생각이 들어 "네? 뭐라고요?"라고 되묻는다.

그러면 대부분 처음 들은 말과 똑같은 말로 들린다.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닌 걸 확인하면 이렇게 대답한다.

"아하~, 네에~~, 네에~~"


이럴 땐 대부분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이게 확인되면 아직 귀가 완전히 맛 이 가진 않았다는 안도감이 온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맞는 말인양 큰 소리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슴속이 한없이 불편해진다.  


무식과 무지는 자랑이 아닌데 이걸 자랑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이가 벼슬이 되고 직급이 깡패가 되면 입으로 똥을 싸도 들어야 한다. 

이런 사람의 말을 듣고 있는 건 가는귀먹는 것보다 더 불편하다. 

부끄러운 걸 모르는 사람이 주위에 많으면 삶은 피곤해진다. 

그걸 들으며 산다는 것은 심각하게 불편한 일이다. 


셋째,

이건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미각이 조금 '거시기(?)' 하다.

이게 표현하기가 좀 애매한데 쉽게 말해서 맛을 잘 못 느낀다는 뜻이다.


음식을 먹으면 처음 1분 정도는 맛을 느끼다가 그 뒤로는 뜨겁고 찬 거

외에는 거의 맛을 구분 못한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꽤 오랫동안

맛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래 봐야 10분 정도다. 피곤한 날은 아예 첫 술

부터 맛을 못 느낄 때도 많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진 모른다. 어릴 땐 이렇지 않았다.(않았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어설픈 미각 덕분인지 아니면 아무거나 막 먹으면서 커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아직 못 먹는 음식을 만나본 적은 없다.


어릴 때부터 '탕'이라 불리는 각종 음식을 꽤나 즐겼고 지금도 잘 먹는 편이다.  

필리핀에 살 때도 내가 못 먹는 '로컬 푸드'는 없었다.


필리핀 음식 중에 '발룻(Ballot)'이라는 게 있다.

오리알을 18~21일 정도 품어서 부화하기 전 단계에 삶은 것을 말하는데,

한국에서는 '곤계란'이라 불린다. 내가 살았던 경남에서는 '곤계란'을 본 기억은 없는데

충청 전라지역의 시장에는 예전에 많이 팔았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성남 모란시장에서

"곤계란 팝니다" 이런 간판을 본 적이 있다.


어쨌든 계란이든 오리알이든 이게 18일을 넘어가면 눈알도 보이고 부리도 보이고

깃털도 살짝 보이는 그런 상태가 된다. (구글에 찾아보시라 볼만하다)

필리핀에서는 남자에게는 정력에 여자에게는 피부에 좋다 하여 남녀노소가 많이

먹는 영양 간식이다. 예전 우리나라에서 야밤에 찹쌀떡 팔던 것처럼 필리핀에서는

한 밤 중에 "바~알~룻" 하면서 이걸 팔고 다닌다.


세부의 어학원에 있을 때 일본인 여자 학우가 이게 먹고 싶다고 해서 같이 먹으러 나간 적이 있다.

호기심이 많던 이 친구는 발롯을 먹으러 가자며 내방을 찾아왔다.

몇몇 사람에게 가자고 했는데 모두 싫다고 한 것 같았다.

기사도 정신이 충만한 나는 곤경(?)에 처한 이 여인과 함께 한 밤중에 '발롯'을 먹으러 나갔다.


기숙사 골목 입구에서 발롯을 팔던 녀석이 우리가 가까이 가자 

"Hello Mam, Sir" 하며 묻지도 않고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알 속에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오리의 부리와 깃털이 살짝 보였다. 

녀석은 씩~ 웃으며 절반쯤 깐 발롯을 우리에게 건네줬다.

표정이 꼭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너 이거 먹을 수 있겠어?"


일본 친구는 "스고이!" 하며 발롯을 받더니 냉큼 입으로 가져갔다. ("헉~~")

이쯤 되면 내겐 물러설 곳이 없어진 셈이다. 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걸 받아

숨을 참고 한 입을 베어 물었다. 혀 끝에 닿을 때 식도가 막히는 느낌이었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삼켜야지....


그런데 "어라??" 신기하게도 이게 맛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의 무분별한 미각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삶은 달걀 맛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비주얼에 비해서 맛은 꽤 괜찮았다.

둘이서 몇 개를 더 먹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드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입견을 버리면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기는구나..."


필리핀에 살면 불편하다. 솔직히 말해서 불편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일단, 총기가 많아 위험하고  외국인 대상 좀도둑이 극성이라 여차하면

집안이 털리기 일쑤다. (나도 두 번 정도 털렸다)


대중교통은 불편하며 기름값은 비싸다. 기름값이 비싸니 전기세는 당연히 비싸다.

에어컨 켜고 살려면 꽤 많이 벌어야 한다.


의료 시설이 없다시피 해서 위급상황에 대처하기도 어렵다. 제대로 된 의료

기관은 찾기도 어렵지만 있다 해도 너무 비싸다. 응급실의 경우 들어갈 때

문고리 잡고 $100, 나올 때 문고리 잡고 $100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덥고 습할 때가 많아 날씨도 딱히 좋지 않다. 날씨가 안 좋으면 당연히 풍토병도 많다.

내 다리를 망가뜨렸던 고열의 열병도 한국으로 휴가 오기 전날 얻은 '뎅기열'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당시 한국 병원에서는 원인 불명이라 했는데 필리핀에 돌아와서 증상을 설명했더니

한인 친구들이 한결 같이 이렇게 말했다.


"'뎅기열'이었네, 안 죽고 살아난 거 다행으로 생각해"

 

이렇게 위험하고 불편한 필리핀 세부에서 13년을 살았다.

팬데믹이 끝나고 하늘 길이 열리면서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사람들의 소식이 간간이 들려온다.

뭔가 변화의 시기가 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내 사정을 잘 아는 같이 넘어온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이제 거기 갈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편하게 살아."

"갈 일 있으면 한 번씩 다녀오면 되잖아."

"왜 힘들게 거기서 살 생각을 하냐?"


나도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시스템을 갖춘 곳이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내겐 이곳이 왠지 불편하다. '편안'하지가 않다.

이건 어떻게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어떤 친구와의 대화에서 "사람 노동"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있다.

이 단어를 듣더니 친구가 내게 이런다.

"'사람 노동'이 아니라 '감정 노동'이라 부르는 거예요."

"아! 맞다 '감정 노동'이라는 단어가 있었지."


그날 밤 "사람 노동"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내 입에서 이 말이 왜 갑자기 튀어나왔을까?"


아마 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겪는 '감정 노동'과는 조금은 다른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말한 '사람 노동'은 가족이나 친구 동료처럼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말한다. 내편이라 생각되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이런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말이다.


'사람 노동'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한국이 너무나 좋은 곳이지만,

그걸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한국에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이건 물질적 풍요나 시스템의 편의성과는 다른 문제다.

 

"내 맘 알지?" 같은 말을 남기며 하는 무례한 행동들,

경쟁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비교와 배신들,

확증 편향과 반지성의 늪에 빠져 외면되는 정의들,

사랑과 존경, 진실과 신뢰, 공정과 평등에 대한 뒤틀린 시각들,

돈의 힘에 굴복하는 명예로운 가치들....


이런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눈에 보이면 정말 불편해서 미치겠다.


"야! 그게 뭐 대수라고! 세부에서는 그런 거 없었냐? 있었잖아.

우리 같이 겪었잖아. 전 세계 어딜 가도 사람 사는 데는 똑같아.

그러니 편하고 안전한 데 사는 게 맞는 거 아니냐?

너 정신 차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라고 던지는 친구의 말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이 맞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 대답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내 대답은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황당한 대답이다. 

그래서 함부로 하기가 어렵다.


내 대답은 이거다.

"야! 거기선 말이 안 통하잖아,

그래서 사람한테 받는 스트레스가 여기보다 훨씬 덜 하잖아."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으니 내 사생활에 끼어드는 사람도 없고 말이야!"  


이건 내가 봐도 거의 미친 소리에 가깝다. 그런데 진심이다. 

나는 불편한 사람과 엮여 생활하는 게 너무 힘들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혹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편안함을 위해서 편리함을 포기한 사람들 말이다.


'조승연 작가'의 책 '시크:하다'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유럽 사람들이 아직도 불편한 아날로그식 삶을 영위하는 것은 그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다. 아버지가 타던 20년 된 차와 같은 모델의 차를 아들이 사는

이유는 새 차에서 받는 신기술에 대한 스트레스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편리함' 보다 '편안함'을 선택한다.

'편안함'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마지막 대사인 

"지안(至安), 이제 편안함에 이르렀느냐?"가 가슴 깊이 와닿았던 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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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정확히 말하면, '나의 아저씨'의 마지막 대사는 저 질문이 아니라

'이지안'의 "네, 네~"라는 두 번의 대답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삶은 질문이 아니라 답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내게는 '이지안'의 두 번의 대답이 이런 의미로 들였다.  

편안함에 이르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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