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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Aug 10. 2022

어떤 청첩장(?)

"날씨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저는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1967년 5월 3일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에서..


벗님에게

요즘  워싱턴 지역의 날씨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저는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은 결혼을 알리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벗님을  결혼식에 초대하는 것이 예의인 줄 압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에 나가 결혼하게 되어, 벗님이 난처하게 느낄 것 같아 청첩장을 띄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정을  말씀드리면 저는 5월 17일 워싱턴을 출발, 19일 서울에 도착, 그 다음날 하루 동안 약혼녀와 사귀고, 21일 어느 곳인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 열흘 동안 아내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 후, 6월 3일 홀로 미국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신부는 이민  수속, 입국 수속을 마치고 금년 말에야 미국에 올 것 같습니다.


신붓감을  소개해 드립니다. 그녀의 이름은 천건희(千建喜, 천 가지 기쁨을 세우는 아가씨)입니다. 만약에 그녀가 그녀 이름의 반만큼  훌륭하다면, 저는 정말로 행운아가 되는 것입니다. 그녀의 생김새와 인품을 묘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8년 전으로 그 당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그녀는 이제 의젓한 노처녀로  시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저의  기억에 의하면 그녀는 키가 150센티미터 정도, 포동포동 살찌고, 흰 살결에 크고 둥근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록앤롤을 포함하여 모든 음악을 좋아하고 글솜씨가 제법 있습니다. 여자니까 로맨틱하면서도 어리석고, 몸이 건강하니까 열적적으로  쇼핑을 좋아하겠지요. 요리를 할 줄 모른다고 고백했는데, 라면이라도 끓일 줄 안다면 오랫동안 미국의 기름진 음식을 참아왔던  저에게는 엄청난 진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는 꽤나 명랑하고 살짝 까불고, 발끈하면 톡 쏘는 싱싱한 말도 곧잘 구사할 줄  압니다. 어쩌면 한없이 착하고 무던한 여자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녀를 안다는 것은 지난 12년 동안에 그녀가 저에게 보낸 6백여  통의 편지를 통해서였고, 편지란 대체로 자기의 장점을 내세우고 단점을 숨기는 일종의 외교적 각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논리는 그녀가 훌륭한 여자라고 속삭여 줍니다.


첫째,  외국에 있는 건달기 있는 남자를 10년 이상 기다려 주었다는 것은 그녀가 무한한 인내심의 소유자라는 것을 입증합니다. 저는  보수적인 성격을 가진 탓에, 결혼이 거액의 배당금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결혼 생활이란 항상 즐거움이요. 언제나  로맨스라고도 믿지 않습니다. 사실상 결혼했다고 해서 행복이 정장을 입고 우리 집을 찾아와 큰절을 올릴 것이라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행복은  문자 그대로 요행이며 복입니다. 행복은 삶이 의당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우연히 얻게 되는 선물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삶은 공정합니다. 만족스러운 생활이 요구하는 것은 겸손입니다. 따뜻한 화로 옆에서 마음에 드는 아가씨와 커피를 마시고, 좋아라고  떠들어 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바로 행복의 그림이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이 결혼에서 바라는 것은 이와 같은 단순한 축복입니다. 저는 노총각, 그녀는 노처녀. 약혼녀는 잃어버린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결혼하면 당장이라도 쌍둥이를 낳아 올리겠다고 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저희들은 둘 다 착실한 무신론자입니다. 저희들은 해를 믿고 달을 믿고 산과 물을 믿고 바람과 비를 믿고 풀과 나무를 믿고 생()과 사()를 믿습니다. 


((중략))


사적인  일인데, 결혼 통보서가 이렇게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김치를 맛있게 담그고, 칼국수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아가씨를 모신다고  생각하니 온갖 주책이 방끗 웃으면서 튀어나왔습니다. 부디 저희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굳이 선물을 보내 주시겠다면, 먼길을 찾아오는  저의 아내에게 미소와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전시륜 올림...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중.... (필사)]


(※50여 년 전에 쓰인 영문판 글을 20여 년 전에 본인이 번역한 것이니 

지금의 잣대로 글을 해석하지 말기 바람)




도서관에서 이 책을 두 번이나 빌렸다. 

두 번을 완독 한 것이 아니라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통에 할 수 없이 

두 번이나 빌린 것이다. 게으름은 인간을 피곤하게 만든다.


내가 애용하는 '우당도서관'은 책을 반납하면 그날 그 책을 다시 대출할 수가 없다. 

사흘이 지나야 다시 빌려준다. 한 번에 16일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주니 그동안 

다 못 읽었다면 더 긴 시간을 줘도 못 읽을 거라 생각해서 주는 페널티인 듯하다.

(아니면 도서관 시스템상 그럴 수밖에 없어서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이 책 때문에 도서관 문헌자료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첫 번째 반납일은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날이었다. 

창 밖의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폭우를 뚫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책을 반납했다. 

행여나 다음번 대출이 막힐까 싶어 빗속을 달려간 것이었었다.


그 난리를 치고 반납한 이 책을 사흘 뒤 다시 빌렸다. 

그런데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 확실하다.

나의 게으름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두 번째 빌려서도 책의 끝을 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두 번째는 10페이지도 못 읽고 16일을 보냈다.  


첫 번째 책을 반납하면서 "하루 10페이지라도 꼭 책을 읽자"라는 다짐을 했었는데

그것마저 실패했던 것이다. 나는 두 번째로 책을 반납하던 날 알라딘 온라인 서점에 

책의 구매 주문을 넣었다. 


1932년에 태어난 작가는 이 책을 "세상에 남긴 단 한 권의 책"이라 명명하고 있다.

그는 평생 글을 썼던 사람이라 책을 많이 남겼을 거 같은데 책의 표지에는 보란 듯이 

"세상에 단 한 권의 책만 남긴 사람, 전시륜"이라 쓰여 있다. 


내가 "어떤 청첩장(?)"이라 이름 붙인 위 글의 원래 제목은 "알리는 말씀"이다.

미국 친구들에게 보냈던 오래된 편지를 글에 등장하는 '천건희 여사'가 우연히 

발견하여 책에 넣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남편(작가)에게 물었다고 한다. 

지은이가 직접 번역한 것 같은데 원문이 어떨지 궁금하다. 내가 영문 수필을 읽을 

정도의 실력은 안되지만 재치 있고 멋진 문장으로 쓰인 글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무척 재밌게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내 눈에는 그렇다)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의 전형이어서인지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즐겁게 읽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첫 페이지부터 황당하고 재미난 문장이 많아 줄을 긋고

싶은 충동이 가슴 가득 일었지만 도서관 책에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공공재가 아니었다면 아마 엉망이 되었지 싶다.   


지금은 내 책이 생겨서 맘 편하게 줄을 죽죽 그으며 읽는다. 

역시 책은 더럽히며 읽어야 제 맛이다. 


책을 다 읽으면 독후감을 써 볼 생각이다.

독후감을 쓰면 시간이 지나도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책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무거운 내용은 가볍게, 가벼운 내용은 무겁게 표현한 좋은 글이 많다. 

가끔 무작위로 펼쳐 읽다 보면 반복해서 읽는 부분도 생기는 데 

읽을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처럼 마음에 드는 

예술 작품을 만나는 일도 점점 더 힘들어진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편협해져서인지 고집이 세져서인지 마음에 드는 것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취향이 까다로워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집에 빠진 꼰대가

된 것이다.  


연식이 쌓이면서 생각은 고루해졌고, 말은 투박해졌고, 글은 과격해졌다. 

이러니 주변에 사람이 남아나질 않는다. 인간이 매력이 없어지면 외로움은 

운명이 된다.


그럼에도 나쁜 기운에 마음 상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은 

가슴속 빈자리를 채워주는 무형의 즐거움 때문인 듯하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등등...


많진 않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있어 다행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어 다행이고, 하고 싶은 것이 있어 다행이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글을 올릴 곳이 있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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