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더러 많은 것을 아는 것"
어제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모두 슬픈 내용이었다.
처음 전화는 25년 넘게 알고 지내던 후배가 자전거 사고로 뇌를 다쳤다는 소식이었다.
말이 어눌해진 상태에서 전화를 해서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진짜 큰 사고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는 참담함이라니....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에서 또 다른 전화가 왔다.
이 친구도 25년쯤 알고 지낸 친구다.
녀석: "언제 서울 올라오세요?(목소리가 무척 밝음)"
나 : "글쎄, 당분간 갈 일이 없을 거 같은데"
녀석: "한 번 오세요."
나 : "왜? 무슨 일 있냐? 비 피해는 없고?"
녀석: "없어요. 공항동에 비 피해 있으면 서울 시내 다 잠긴 거죠. ㅎㅎㅎ"
나 : "그래? 정말 다행이다"
녀석: " 서울 올 일 없으세요?"
나 : "없어, 왜 자꾸 물어?"
녀석: "저 어제 소상공인 보상금 나왔어요."
나 : "그래? 잘 됐네, 잘 됐어"
녀석: "네, 600만 원이나 나왔더라고요."
나 : "많이 나왔네, 좋겠다"
녀석: "지난번에 300만 원 받은 거 하고 이것저것 합하니 올 해만 1000만 원은 받은 거 같아요.
나 : "어휴~~, 정말 잘 됐다."
녀석:" 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윤석렬 좋아하기로 했어요."
나 :"잉???"
녀석: "이번에 대통령 잘 뽑은 거 같아요"
나 : "엥??
녀석: "대통령 바뀌니 돈이 막 나오잖아요. 그러니 잘 뽑은 거죠."
나 : "이번에 나온 돈이야 지난 정부 때 다 준비된 거지."
녀석: "어쨌든 윤석렬이 준 거잖아요. 전 앞으로 윤석렬 무조건 지지하기로 했어요"
나 : "........."
폭우가 내려 서울이 난리가 난 다음 날 했던 통화다.
비 피해로 많은 사람의 생계가 위기에 처했는데, 우리 동네는 피해 없고
내 주머니에는 돈 들어왔으니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앞이 막막했다.
서울에 올라오면 거하게 한 턱 쏜다고 연락하라고 한다.
대충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는데 기분이 착잡했다.
이 친구는 심성이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그는 고등학생 나는 사회인으로 만나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을 이어가고 있다.
때가 되면 매번 먼저 전화를 하고 내 안부를 묻는다.
그건 외국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나면 어떻게든 날 도와주는 이 친구에게 이럴 때 뭐라 해야 하는 걸까?
최근에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직업윤리와 양심, 본능과 이성에 관한
갈등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현실에서 저런 일을 겪을 땐 참 힘들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내게 그런 일이 닥치니 머리가 멍해지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런 일에 답이 있기는 한 걸까?
요즘, "교양(敎養)"이라는 단어에 꽂혀 계속 이 단어에 대한 글을 찾아보고 있다.
모 유튜브에서 이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 걸 본 후 모든 문제를 "교양"과 결부시키는
버릇이 생겼다.
"'교양'이 없어서, 혹은 부족해서"라는 말을 붙이면 웬만한 문제는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아는 것과 '답(해결책)'을 찾는 건 다른 이야기다.
원인을 알면 답에 가까워질 순 있지만 그 자체가 해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황당한 대화를 끝내고 나니 며칠 전 봤던 이 문장이 더 가슴에 더 와닿는다.
"'교양(敎養)'은 세상의 구조에 대해서 이해하는 능력이다."
(채사장 지음, '시민의 교양' 중)
인연은 교양과 또 다른 문제라 마음이 아프다.
괴팍한 선택을 하지는 않겠지만 씁쓸함은 지울 수가 없다.
※교양(敎養, gentility):
1)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표준국어대사전)
2) 지식, 정서, 도덕 등을 바탕으로 길러진 고상하고 원만한 품성.(고려대 한국어사전)
3) 더러더러 많은 것에 대해서 아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