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체불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랑끝 Oct 09. 2022

착한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야 하는 이유

얼마 전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게 사람 착한 거"라는 글을 썼었다.

이 말은 오래전 서울에서 동고동락하던 친구가 술에 취해 내게 했던 말이다.

그 친구는 TV 드라마에서 들은 말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잊히지 않고 계속

생각나는 걸 보면 들을 때 가슴이 꽤나 아팠던 게 분명하다. 


목수일을 하던 그 친구는 일을 하고 돈을 못 받을 때가 많았다.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도급을 줬던 회사가 떼먹거나, 원청이 망하기도 했으며,

동료 중 누군가 돈을 들고 도망가서 받을 돈을 날릴 때도 있었다. 


하루는 이 친구가 출근을 하지 않고 아침부터 소주를 까고 있었다.

저녁에 퇴근해서 보니 그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오늘 일 안 갔냐?"

"쫑 났다. 올 겨울은 이대로 집에 눌어붙어 있어야겠다."


"왜? 또 어음 받았데?"

"어음이라도 받으면 좋게, 사장이 어젯밤에 사라졌단다."


"뭔 소리야?"

"지금 목수 하고, 공구리 하고, 철근 하고, 전기하고 전부 사장 잡으로 다닌다고 난리란다."


"음.... 근데 잡으면 대책은 있는 거냐?"

"대책은 무슨, 사장이 돈이 있으면 도망갔겠냐? 잡아도 별수 없어, 쫑 난 거야. 

C~8, 6개월 일한 거 두 달치도 못 받고 날리게 생겼다."


"그래도 너네 두목이 뭔가 방법을 찾겠지."

"하루 이틀 보냐? 그 인간도 착해서 만날 당하고 살아."

"음~~"


"야! 어제 드라마에서 이런 말 하더라."

"뭔 말?"


"딸내미가 결혼을 한다니까. 엄마가 묻는 거야. 

'넌 그 인간 뭐가 좋아서 같이 살라 그러냐?' 하니까"

"하니까?"


"딸이 그러는 거야, '우린 사랑해요 그리고 그 사람 착해요.'"

"......."


"그니까 엄마가 뭐라는 지 아냐? 

'이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게 인간 착한 거야' 이러더라"

"헐~~"


"그 말이 얼마나 와닿던지..."

"........"


그날 밤 우리는 꽤 길게 술을 마시며 사는 이야기를 했다.

아주 오래전 일인데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다. 


이 친구와는 생각지도 못한 일로 헤어졌는데 친구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녀석의 도박 때문이었다.


어느 주말 친구의 어머니와 동생이 집으로 찾아왔다.

부산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얼굴을 알던 사이라 모습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상황은 굉장히 낯설었다.

내가 어머니께 인사를 하자 동생이 날 데리고 밖으로 나가더니 봉투를 하나 보여줬다. 

유서였다. 나는 내용을 읽지 않았지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해 겨울 녀석이 좀 심하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이틀 전 내 차를 끌고 나가서 연락이 안 되고 있었다.  

흔한 일이라 크게 걱정 않았는데 동생의 말을 듣자 불현듯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저녁 늦게까지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내게 연락을 당부하고 돌아갔다.

늦은 밤 녀석은 아무 일 없는 듯이 돌아왔고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식탁 위에 차키를 놓고 방으로 들어가는 등 뒤에 말했다.


"어머니 왔었어."

"알아"

그날 밤 녀석과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어머니와 동생이 와서 나는 슬그머니 집을 비워줬다. 

집 옆 공터에 앉아 있는데 잠시 후 친구가 나왔다.   

우리는 짧은 대화를 하고 담배 몇 대를 나눠 피웠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난 이삿짐을 쌌다.  


어머니가 그날로 방을 빼고 아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어머니 눈에는 망가져가는 아들을 보고만 있었던 내가 더 미웠을 수도 있다. 

몇 년 뒤 어렵게 연락이 되어 부산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옛날이야기를 하며 한참 수다를 떨고 헤어지려는데 친구가 뜬금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서울에서 내가 갑자기 쫓겨난 일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당시는 내가  신세를 지고 있던 상황이어서 친구는 내게 미안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내가 갑자기 쫓겨나 오갈데 없는 상황이 된 것이 미안했던 것 같았다.   

나는 괜찮다고 했고 우린 웃으며 헤어졌다. 그날 이후 그 친구를 더 이상 보지 못했다. 

시골에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만 간간히 들었다.


난 기억력이 부족해서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을 잘 잊어먹는다. 

그래서인지 머릿속에는 남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사람들은 상처를 준 사람이나 물질적 피해를 준 사람을 오래 기억한다는데,

난 내게 피해를 줬던 사람이나 사랑했던 사람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잊어버린다.   


그런데 그 친구처럼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이름도 생각나고 얼굴도 생각나고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이 사람들은 왜 안 잊히는 걸까?"


결론은 간단했다. 그 사람들은 내게 잘해줬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착하다'는 것이었다.


착한 것의 정의를 말하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로 정리는 못 하겠다.   

하자고 마음먹으면 횡설수설 할 수는 있겠지만 딱히 자신 있게 규정짓지는 못 하겠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착함'의 느낌은 있다.


자본주의 세상에 살다 보면 착함과 약함 또는 무능을 혼동할 때가 있다.

모진 것과 합리적인 것도 가끔 헷갈린다. 


때로 내게는 착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남들에게는 착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고,

남들은 착하다고 하는데 내게는 별로인 사람으로 비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착함'이라는 개념은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착한지 착하지 않은 지는 본능으로 알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착한 사람'의 개념을 이렇게 정의한다.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났을 때 불편하지 않을 사람. 

세월이 흐른 후 문득 떠올랐을 때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  


우리는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과 영원히 관계를 맺으며 살 수는 없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또 잊힘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반갑고 불편하지 않다면 그 사람은 내게 착한 사람이다.


얼마 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TV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봤다.

최수연이라는 친구가 우영우 변호사와 하는 대화이다.


최수연 :  나도 그런 거(별명) 만들어줘. 

            음~, '최강 동안' 최수연 어때? 아니면, '최고 미녀' 최수연?


우영우 :  아냐~ 

최수연 :  아냐??? 


우영우 : 응~, 넌 그런 거 아냐. 

최수연 : 그럼 난 뭔데?


우영우 : 너는~ 

최수연 : 나는?


우영우 : '봄날의 햇살'같아.


최수연 : 어~?

우영우 : 로스쿨 다닐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너는 나한테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 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날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지금도 너는 내 물병을 열어주고 다음에 구내식당에 또 김밥이 나오면 

           나한테 알려주겠다고 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작가는 평범하지만 내면이 착한 최수연과 그것을 꿰뚫어 보고 사랑하는 우영우의

사려 깊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걸 참 멋진 대사로 표현했다. 


세월이 흘러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때,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게 사람 착한 거"라고 말했던 사람보다는

"봄날의 햇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해 준 사람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살면서 이런 말 해주는 사람을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할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볼 것이고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보게 될 것이다. 

내 지나온 걸음이 착한 사람들과 많이 엮였다면 돌아볼 때 뿌듯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의 삶을 정당화시키며 끊임없이 합리화해야 할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합리화하는 불행을 겪고 싶지 않다면, 

착한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사는 것이 좋다. 

인간은 선함을 마주할 때 얻는 힘이 있다. 

그건 행복감이다. 


긴 세월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착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착한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살면 삶은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 진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고....




https://youtu.be/et5AbuHFnn0


매거진의 이전글 숙식 30일간 무료 제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