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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Oct 21. 2022

자투리 글

가끔 "이걸 내가 언제 썼지?" 이런 생각 할 때가 있다.

글쓰기가 직업은 아니지만 글을 써서 남기는 것에 대한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투자해서 계속 글을 쓰게 된다. 난 내가 써놓은 글을 읽고 고치는 

게 재밌다.

    

가끔 글을 편집하다 보면 문맥상 쓸 수 없는 문장이 생기면 일단 한 곳에 모아놓는다.

또 갑자기 좋은 문장이 떠오를 때도 있는데 이럴 때도 메모를 남기곤 한다.

이렇게 문장을 모으다 보면 글이 마무리될 즈음이면 자투리 폴더가 생겨 난다. 


가끔 이 자투리로 이리저리 짜깁기를 해서 글을 만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자투리

폴더는 글이 완성되면 지워버린다. 그런데 이런 자투리 폴더를 지울 때 보면  

"어? 내가 이걸 언제 썼지?" 하는 문장을 볼 때가 있다. 

2022년 9월 말 즈음에 "착한 사람과 인연 맺으며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글을 썼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의욕적으로 시작한 글이었는데 막상 쓰다 보니 결론을 내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좀처럼 끝내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새벽 불현듯 글이

써지더니 깔끔하게 마무리까지 했다. (기특~ ^^b) 


그런데 한순간의 실수로 마무리했던 글을 날려버리는 일이 생겼다. 

신기한 건 20분 전에 썼던 문장들이 단 한 줄도 기억이 안 나는 것이었다. 

뭔가 멋지게 결론을 낸 것 같은데 그 결론마저도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정말 황당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그 뒤로 거의 한 달에 걸쳐 쓰다만 글의 뒷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했지만 그때만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결국 억지로 끝은 냈지만 분명 처음 썼던 글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질질 끌며 글을 쓰는 과정에서 꽤 많은 자투리 문장들이 생겨났다. 

오랜 시간 머리를 쥐어짜며 글을 쓰다 보니 썼다 지운 문장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글을 마무리 짓고 며칠이 지난 후 메모장을 정리하려니까 처음 보는 문장이 눈에

많이 띄었다. "어라? 이걸 내가 언제 썼지?" 하는 생각을 하며 계속 읽다 보니 

지우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아 있던 문장들을 다른 글 쓸 때 써먹자(?)는 간사한 생각을 하며 정리해 

놓기로 했다. 정리를 하다 보니 '자투리 글'을 정리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앞으로는 자투리 폴더도 따로 잘 관리해볼까 생각 중이다.





"착한 사람과 인연 맺으며 살아야 하는 이유", 자투리 글


*내가 지나온 길에 만났던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을 추억하는 시간이 행복할 것이다. 

인간은 선함을 마주할 때 느끼는 힘이 있다. 그건 행복감이다.



*세상살이라는 게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다 보니 듣기 좋은 말만 하게 되거나,

진심을 말해도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또 상대가 진심으로 

날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도 내 성향과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힘들 때도 있다.



*내일 아침 내가 만날 사람이 무례하고, 이기적인 데다가, 

악(惡)하기까지 하다면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이 참으로 괴로울 것 같다. 



*그 친구가 떠오를 때면 난 그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던 내가 생각나고 나에게 끝까지 

미안해했던 그 친구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 느낌이 그리 나쁘지 않다. 



*이런 말 하는 친구가 있다면,

훗날 삶의 궤적이 달라 만나지 못하게 되더라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뿌듯해지지 않을까.



*만약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게 인간 착한 거야"라든가, 

"사는 건 원래 다 그런 거야, 약육강식이 삶의 진리야, 다들 이러고 살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만 기억에 있다면 그 사람이 떠오를 때마다 속이 메슥거릴 것 같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게 인간 착한 거"라는 둥, "약육강식"이라는 둥 하면서

세상 이치를 다 아는 듯이 말하고 충고하는 친구 보다,

진심으로 상대를 생각해주는 착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가.

 


*세월이 흘러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이 상처를 주고 피해를 준 사람만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모르겠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물질적 풍요가 지상 목표로 삶을 설계하고 사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본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진 않는다. 그 풍요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게 맞다.

그런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게 그리 부럽지 않다. 



*착한 것과 무능한 것, 악(惡) 한 것과 합리적인 것은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착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세상을 살면서 내 맘대로 착한 사람만 만나고, 악한 사람은 안 만나고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말 하는 친구가 떠오를 때 우리 삶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자본주의 세상에 사는 우리는 돈의 힘에 의해 착함과 올바름을 결정하는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돈은 편리함의 상징이지 행복함의 상징이 아니다.



*착한 것과 무능한 것은 구분할 수 있고, 

악한 것과 합리적인 것을 구분해서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먼 훗날 안락의자에 앉아 자식이나 가까운이 들에 게 젊은 시절을 이야기할 때

좀 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친구가 말했던 드라마에서 딸의 결혼을 반대하는 엄마가 사윗감이 착해서 싫다고 하지 않고, 

무능해서 싫다고 했다면 딸은 멈칫했을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는 부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의 엄마는 착함과 무능을 동일시했다. 딸의 입장에서 이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긴 세월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착한 사람과 엮이며 사는 게 좋다.

착한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살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작년에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황당했던 말은, 

"그 사장이 형보다 돈이 더 많으니까 그 사람 말이 옳아." 이 말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는 싸울 수도  없다. 

기본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걸 진리라고 믿는 사람과 평생 알고 지내야 한다면 그 사람 앞에서 도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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