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MaMa & Singing In The Rain 그리고 가을..
두 번째 곡의 전주가 흘러나올 즈음 나는 불현듯 빅마마의 예전 뮤직 비디오가 떠올랐다.
혹시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빅마마의 "Break Away"의 뮤직비디오는 세간에 상당히 충격을 줬던 작품이다.
내가 가요를 안 듣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너무나도 티 나는 립싱크를 방송에서 하는 걸 보고
부터였다. 마이크가 바닥에 떨어져도 가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그걸 '생방송의 묘미' 따위의
말로 포장하는 걸 본 후 더 이상 한국 노래를 듣기 힘들었다.
"립싱크는 팬 서비스"라고 당당히 말하는 가수의 노래는 뭔가 속는 느낌이라 들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훌륭한 가수들이 노래 할 때도 "저것도 입만 뻥긋 대는 거 아냐?"하는 의심병이 생겨서
한동안 한국 가요에 정을 둘 수 없었다.
그런 즈음에 빅마마의 "Break Away" 뮤직 비디오를 보게 됐다.
이 뮤직 비디오는 나를 많이 놀라게 했고 꽤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혹시 뮤직 비디오의 내용을 모르시는 분은 아래 뮤직비디오의 3분 깨 정도부터 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왕이면 전체를 감상하길 적극 권장한다.
매우 좋은 노래와 매우 좋은 구성의 뮤직 비디오이다.
어쨌든 'Dingo Music'의 빅마마 리액션 영상을 보다가 이 뮤직비디오를 다시 찾아보게 됐고,
이 뮤직 비디오를 보다가 내 의식의 흐름은 그 옛날 초등학교 때 TV에서 봤던 뮤지컬 영화로 옮겨 갔다.
나의 아버지는 음악을 그리 좋아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는 무척 좋아했다.
아버지는 할리우드 영화 중에 뮤지컬 영화를 특히 좋아해서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에
뮤지컬 영화를 하면 소리를 키우고 내게 열심히 보여 주셨다.
그때 본 영화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영화는 율 브린너 주연의 '왕과 나', '사운드 오브 뮤직',
'7인의 신부', 마이 페어 레이디 그리고 '싱인 인 더 레인' 등이다. 그런데 이 중 유일하게
나 혼자 본 영화가 있는데 그게 '싱잉 인 더 레인, Singin' in the rain (1952)'이다.
영화 내내 흐르는 경쾌하고 즐거운 음악과 춤도 좋지만 마지막 반전이 어린 내게 무척
인상적이었던것 같다. 수십 년이 흐른 후 '빅마마의 Break Away' 뮤직 비디오를 볼 때
그 장면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아마도 난 뮤직 비디오를 보며 기시감에서 오는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Singin' in the rain (1952)'은 내 인생 영화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제목을 아는 사람은 많은데 영화의 스토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제목은 알았지만 영화의 내용을 아는 친구는 없었다.
다들 빗속에서 춤추는 장면 정도만 알고 노래만 흥얼거리는 정도였다.
물론 빗속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은 이 영화를 대표하는 명장면이지만 영화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결국 이 영화까지 생각해 내고 어떻게 됐냐?
의식의 흐름에 따라 "Singin' in the rain (1952)"을 유튜브에서 찾았고,
이제는 저작권이 해지됐는지 무료로 배포되어 있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했다는 거다.
황금 같은 주말에 7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집구석에서 혼자 봤다는 말이다.... ^^;;
이 영화는 1952년에 만들어졌는데 1928년 경이 배경이다.
미국 영화산업이 유성 영화로 극적으로 변하던 시기를 맞아 자본가와 배우, 스텝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멋진 춤과 노래가 엮인 뮤지컬로 보여준다. 또한 영화에서 배우의 실력이
얼마나 중요하며, 당시 미국 상류사회가 영화배우를 대하는 태도가 어땠는지도 살짝 비꼬고 있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면 이런 장면을 지금 찍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촬영기법이나 배우 인프라가 훨씬 넓고 깊어졌으니 하자고 하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요즘은 이렇게 힘든 방식으로 영화를 찍진 않을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춤과 노래 장면들은 원테이크로 한 방에 찍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날 것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한 컷을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재 촬영을 했을지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또한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코믹화해서 영화를 전반적으로 가볍게 만들었다.
아마 어릴 때도 그 가벼운 느낌 때문에 이 영화를 좋아했을 것이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집 밖으로 나가는 게 싫어졌다.
오토바이 타는 건 더 싫다.
13년이 넘게 방문 밖의 온도가 방 안의 온도보다 높은 곳에 살았다.
그동안 내게 방문을 연다는 것은 더운 곳으로 나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지금은 방문 밖이 방 안 보다 더 추운 곳에 살고 있다.
계절이 뚜렷하면 인간은 부지런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 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먹을 걸 준비하고, 옷을 준비하고, 땔감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걸 알면서도 추위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방안에 콕 붙어 있다 보니 이렇게 의식의 흐름을 빙자하여
예술의 즐거움을 찾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원시인 느낌?? ^^::)
학문과 예술의 차이에 대해서 얼마 전 이런 해석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외국의 유튜버가 이 공연을 보고 이런 말을 남겼다.
"그들은 노래를 부른게 아니라 공연을 했다.
이런 공연을 공짜로 본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 정도이다."라고... ^^;;
나는 감사함을 느꼈다.
시간이 흐른 어느날 2022년의 가을을 떠올린다면,
난 아마도 제주도의 구석방에서 혼자 본 '빅마마의 딩고 뮤직 공연'과 'Singin' in the rain (1952)'이
가장 먼저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살면서 이런 지점이 생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런 작품을 만들어 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