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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Dec 17. 2022

"지금 행복하다"라고 느껴 본 적이 있는가?

"행복한 기억은 사는 동안 받는 가장 고마운 선물"

"행복한 기억은 사는 동안 받는 가장 고마운 선물"... 영화 '좋은 날(One Sunny Day)' 중



"우리도 싸울 때가 있을까?"

"......."

어제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 말이 생각났다.
사랑이 끝난 후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다.
그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기억나는 것은 그곳이 옥탑방 좁은 침대였다는 것과 무척 추운 겨울이었다는 거다.
그 대화를 하고 1년 후 우린 헤어졌다.

헤어짐에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겠지만 모두 포장이 아닌가 싶다.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사랑이 식었다"가 아닐까?

그녀와 나는 헤어질 때까지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우린 말이나 행동으로 서로를 아프게 한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헤어지고 난 후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런 말을 했다.
"니들은 안 싸워서 헤어진 거야, 그게 사람 사는 게 아니거든,
싸우고 화해하고 그러면서 사는 거야. 안 싸우는 게 좋은 거 아니라니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난 대꾸를 못했다.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랑, 행복" 이런 단어들을 들으면 추웠던 옥탑방의 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도 싸울 때가 있을까?"

그동안 나는 그녀의 말이 왜 머릿속에 남아 있는지 알지 못했다.
솔직히 별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냥 기억 속의 낙인 같은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제 영화를 보다가 비로소 내가 그녀의 말을 잊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난 그녀의 말만 기억했을 뿐 그 말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건 기억난다.
"행복하다 지금. 너무나...."

사람이 살면서 '지금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얼마나 있을까?
"행복한 기억은 사는 동안 받는 가장 고마운 선물"이라는 영화의 대사를 듣고서야
그날 밤 내가 느꼈던 '행복하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했던 것인지 알게 됐다. 
그 '행복감' 덕분에 그녀의 말과 그 밤이 잊히지 않았던 것이다.

서로 싸우지 않고 헤어졌다고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만들어준 고난과 그걸 이겨내지 못했던 젊은 날의 시련은 내게 매우 아픈 상처다.
아마 그녀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은 아픈 상처와 함께 '행복한 기억'도  남겼다.
내가 느꼈던 '행복감'은 상처보다 훨씬 두터운 기억이 되어 그 시절의 흉터들을 덮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그리 아픈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슬프기만 하진 않은 '젊은 날의 초상'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내게 무슨 일이 더 생길지 알 수 없지만,
지나온 시간 중에 사랑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 사랑 덕분에 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삶의 자산을 가지게 됐고,

사랑이 얼마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지 알게 됐다.


"행복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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