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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May 25. 2023

[보홀 이야기] #01. 프롤로그

#01. 프롤로그, "흘러갈 것인가 파닥여 볼 것인가?"

1년 만에 양산 집으로 돌아왔다. 

이곳을 내 집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왔다.

펜데믹으로 필리핀에서 쫓겨온 지 2년이 지났다. 

1년은 서울 생활을 했고, 1년은 제주도에서 살았다.

직장에서는 내가 외국에 살다 온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제주도 사무실에 사표를 낼 때는 모두가 의아해했다.


"도대체 어딜 가려고 그래?"

"누가 괴롭혀? 누구야 말해봐."

"좋은 자리 있으면 같이 가자, 어디 혼자 좋은 자리 가냐?"

"그 나이 먹고 또 직장을 옮긴다고? 미쳤냐?"

대충 반응은 이랬다.


나는 제주도 생활이 서울 생활보다 힘들었다. 

꼭 도시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건물 주차장에 모래를 깔고 모내기를 하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티를 내지 않으니 동료들은 내가 제주도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가 속내를 감추고 음흉하게 행동해서였을 것이다.  

솔직히 미안한 마음이 많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세부에서 탈출할 때 비행기에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었다.

1) 1년 안에 코로나 사태가 끝날 가능성이 높으니 그때 다시 돌아간다.

2) 한국에서 괜찮은 자리에 들어가면 영원히 한국에 남는다.


나는 코로나 사태가 2년 이상 갈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계획은 모두 1년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 버렸다. 


제주도에 남는 것에 대해서 몇 번을 되짚어 생각해 봤다. 

한국에 머물면 궁핍하지만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고 편리하며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세부로 돌아가면 불편하고 위험하며 수입은 불투명하다. 


2년간 내가 한국에서 느낀 것은 육체적인 편안함과 물질적인 풍족함이었다.

세부에서 경험하지 못한 안정적인 삶과 편리한 시스템은 내 몸에 양질의 에너지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자 지병들도 모두 성공적으로 관리됐고

운동을 꾸준히 하자 몸도 조금은 예뻐졌다. 


하지만 안락한 한국생활에도 단점은 있었다.

그건 주변 사람들이 질문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직장생활은 조직에 자신의 사생활을 일정 부분 노출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서울에서는 그나마 피해 갈 틈이 있었는데 제주도에선 그런 빈틈을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평범한 한국식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자존감 결여 때문이겠지만 나의 답은 내 또래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정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두리뭉실 넘어가는 대답이 많으니 이상한 소문만 더 돌게 됐다. 

그러니 더더욱 얼굴의 가면은 두꺼워질 수밖에 없었다.


2022년 가을이 지날 무렵 나는 본사에 있는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이번에 재계약 포기한다."


아직도 나는 물질적 안락함이 주는 편안함 보다는 심리적 통증이 주는 불편함이 더 참기 힘들다.

그래서 또다시 본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세부에서 무엇을 할지 누구를 만날지 아무런 계획도 없다. 

도착하면 짐을 풀 곳도 마땅찮다. 

타지에 홀로 떨어질 때의 막막함을 또다시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그리 무겁지만은 않다.   

오래전 편도 비행기표만 들고 길을 떠날 때처럼 그리 비장한 각오는 아니란 뜻이다. 

그때는 각종 살림과 옷까지 깡그리 버리고 떠났었다. 


팬데믹에 등 떠밀려 한국으로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팔순 노모는 나 때문에 피난을 떠났고 난 엉망이 된 몸으로 격리된 빈집에 들어와야 했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망가진 상태로 집에 돌아온 것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훨씬 낫다. 

낯선 땅에서 당분간은 버틸 여력도 생겼고 한국에 뒷 배경도 만들어 놨다.


편리함을 버리고 편안함을 쫓아가는 것이 좀 바보스럽긴 하지만 내게 아직도 

무엇을 선택할 기회가 남아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30년 전에도 똑같은 생각을 하며 서울로 갔었다. 

아직도 그 짓을 반복하는 것이 한심하지만, 

"그때 그거 해 볼 걸" 하는 말을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삶이 맞닥뜨리는 무게는 시기에 관계없이 언제나 똑같았다. 

그리고 언제나 반복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흘러갈 것인가? 파닥여 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지만 나의 답은 언제나 같았다. 

"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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