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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May 28. 2023

[보홀 이야기] #03. 가자 남쪽으로...

"통찰(洞察) :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쌌다.

오늘은 묵던 레지던스의 방을 비울 생각이다. 

어제 막탄의 메인 거리라 할 수 있는 뉴타운과 리조트 밀집 지역을 돌아다녀 봤다.

별로 변한 게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2년 넘게 여길 떠나 있었는데 거리에 나서니 아는 사람을 계속 만나는 거였다. 


그중 제일 반가왔던 사람은 팬데믹 때문에 그만뒀던 사무실의 사장님을 만난 것이다. 

사무실 닫을 때 내게 두 달치 월급을 주며 몇 달만 버티면 다시 열거라고 했던 사람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코로나로 카장 큰 피해를 본 사람으로 호핑 배 세 척과 거의 전재산을 

날렸다. 우연히 슈퍼에서 만났는데 날 보자 다짜고짜 손을 끌고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내가 무척이나 반가왔던 것 같다.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내게 들려줬다. 

그중에는 귀중한 정보도 많았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보면,

1) 현재 세부에는 가이드가 무척 부족하다. 그래서 본인도 부업으로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2) 생각보다 빨리 여행업이 활성화될 것이다. 이쪽으로 일을 구해라 곧 좋은 일이 있을 거다.

3) 넌 경력도 있고 아는 사람이 많으니 일단 가이드를 해라 자본 없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다. 

4) 보홀에도 가이드가 부족하다더라. 

5) XX 보홀에 있다더라. 그 자식 아직도 살아있네 나쁜 놈.

세부는 필리핀 중부의 중심 섬
세부시티와 막탄섬(라푸라푸시티)은 삶의 방식이 다름. 

사실 세부 시티에 사는 한인들과 막탄에 사는 한인들은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르다.

세부 시티에는 장사를 기본으로 하는 사업가가 많고 막탄에는 공항과 관광지가 집중되어 

있는 만큼 여행사 관련 일 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이 다르다.


나는 예전 사장님과 만남 이후 약간의 희망을 얻었다. 

그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비슷한 말을 했다.

아무래도 같은 업종에 종사했던 사람이어서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한 것 같았다.

내게 전화로 아픈 말을 했던 친구들은 세부 시티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같은 상황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던 것이다. 난 사장님의 말에 더 공감이 됐다.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희망이 있어 보였다. 


나는 이번에 한국을 떠날 때 세운 계획이 있었다. 

그건 "한 달 이상은 무조건 놀고먹는다."는 것이었다. 


놀고먹는다는 것은 표현이 과격하지만 어쨌든 예전 좋아했던 곳을 돌아보면서 쉬고 싶었다. 

오슬롭 고래상어, 투말록 폭포, 수밀론 섬, 모알보알 해변, 말라부욕 온천 등이 가고 싶은 곳이었다.

이런 포인트들은 대부분 세부 남쪽에 집중되어 있어서 여길 한 바퀴 돌면 '세부 남부투어'가 된다. 

예전에는 운전을 해서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차가 없으니 대중교통으로 다닐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난 세부에서 한 번도 대중교통으로 여행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하고 싶었다.


불필요한 짐은 캐리어에 넣어 4일 후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레지던스 카운터에 맡겼다. 

숙소를 나서며 산에 있는 후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세부 남쪽으로 여행가. 돌아오면 연락할게."

"진짜 세상 편하게 산다니까. 지금 여행이 가고 싶어요?"


"세부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그게 왜 궁금해요. 알아서 잘 변했겠지.."


"그냥 궁금해. 그리고 나 가이드할지도 몰라"

"그 험한 일을 또 하겠다고요? 가이드님은 가이드 체질 아니에요. 아직도 그거 몰라요?"

(이 친구는 아직도 날 '가이드 님'이라고 부른다.)


"농사나 잘 짓고 있어, 나 모알보알에서 보홀로 넘어갈 수도 있어, 보홀에도 만날 사람이 있거든"

"알았어요. 조심해 다녀오세요."

나는 문자를 마치고 남부 터미널 티켓 카운터에 줄을 섰다. 

뒤에서 서양 친구들이 두런두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둘러보니 남부터미널에는 배낭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세상은 이미 팬데믹을 한참 벗어나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오슬롭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어디로든 가면 된다. 

지금이라도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다행이다. 

멈춰있지 않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냐. 


이렇게 길을 떠날 때면 떠오르는 글이 있다. 

처음 세부에 와서 말공부를 시작할 때 벽에 붙여 놨던 글이다. 


※통찰(洞察) :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


흔히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방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찰’이다.

‘통찰(洞察)’을 못하면 방향을 상실한다.

그래서 지금은 방향보다 ‘통찰’ 해야 한다.

‘통찰’하고 방향을 잡으면 속도는 얼마든지 낼 수 있다.

<최윤식- 대담한 미래 2..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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