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질문이 잘못된 경우가 많다"....김어준
세부(Cebu, Philippines)에 살 때 일이다.
자동차 키박스가 고장난 적이 있다.
자동차 렌트를 업으로 하는 친구에게 어떻게 수리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이런다.
후배: “형! 도대체 어떻게 하면 키박스가 고장 나요?”
나 : “몰라 어느 날 갑자기 그러네.“
후배: “차를 도대체 얼마나 험하게 다루면 그렇게 되냐고요?”
나 : “나 험하게 안 다뤄..”
후배: “뭘, 험하게 안 다뤄? 새차도 안 하고 다니면서.. 방법 없어! AS센터 가야지.”
나 : “비싸겠지?”
후배: “비싸지!! 한 4만 페소(100만원) 넘을 걸?”
나 : “힉!!”
후배: “그러니까, 차 좀 곱게 써...어쩌고 저쩌고(잔소리)...”
욕만 된 통 먹었다.
차 렌트로 먹고 사는 녀석이다 보니 내 차를 볼 때마다 잔소리다.
할 수 없이 다음 날 현지인 자동차수리공을 불렀다.
수리공: “이거 키박스 갈아야 합니다.”
나 : “그거 되게 비싸다던데..”
수리공: “중고나 대만에서 만든 거 구해 보세요.”
나 : “그거 어디 파는 데”
수리공: 주저리 주저리(설명 해 줌....)
나 : “근데 차가 없으니 어떻게 사러가냐?“
수리공: “그럼 임시로 시동은 걸 게 해 드릴게요.”
나 : “OK"
필리핀 수리공이 키박스를 분해해서 열쇠 들어가는 부분을 떼어내고
드라이버를 열쇠대신 끼워서 시동 거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 후 난 1년이 넘게 이 방법으로 시동을 걸고 다녔다.
덕분에 항상 드라이버를 운전석 옆에 가지고 다녀야 했다.
어쨌든 한동안 세부 전체 부품 상을 다 뒤졌는데도 키박스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한국에서 왔다는 수리공이 있는 자동차수리업체를 갈 일이 생겼다.
한국 수리공: “이거는 키박스만 갈 수는 없어요”
나 : “현지 수리공은 키박스만 교체하면 된다는데, 아닌가 봐요?”
한국 수리공: “이건 핸들을 통째로 갈아야합니다. 키박스가 용접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 키박스만 갈지는 못해요. 폐차가 있으면 핸들을 뜯어 오시면 교체는 해 드릴게요.”
나 :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한국 수리공: "AS센타 가서 접수 하면 2달 쯤 있다가 일본에서 핸들이 올걸요? 더 걸릴 수도 있고.
그거 차 값보다 비쌀 수도 있어요. 알아서 하세요.“
나 : ㅠ.ㅠ
이후에도 세차장이나 지프니(현지 차량) 수리공등 차를 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수리를 해야 하는지를 항상 묻고 다녔다. 모두 전문가인양 답을 했지만
대부분 써 본 방법이거나 안 되는 방법이었다.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어서인지 드라이버로 시동을 걸고
다니다 보니 이게 별로 불편하지가 않았다. 할만 했다.
보기는 좀 그래도 익숙해지니 별로 나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 재밌어 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시동을 건지 1년쯤 지난 어느 날 처음 전화했던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후배 : “형 세부시티에 가면 BMW나 벤츠 키박스도 고친다는 애가 있데요.
자기 페이스북에 광고하고 있더라고요. 거기 한 번 가보세요.“
나 : “그래? 고마워”
후배가 보낸 페이스북 동영상을 보니 매우 비싸 보이는 BMW, 벤츠 같은
차량의 문짝이나 키박스를 수리하는 장면이 올라와 있었다. 비싸보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일단 가보기로 했다. 어쨌든 핸들을 교체하는 거 보다는
쌀 거라 생각했다.
며칠 뒤 어렵게 시간을 내서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헉! 그 집은 문이 닫혀 있었다. 일이 꼬인다. 젠장!
옆집 문을 두드리니 두꺼운 돋보기를 낀 할아버지 한 명이 나왔다.
나 : “할아버지 옆집 자동차 수리점 문 닫았나요?
할아버지: “몰라, 며칠째 문 안 열고 있네? 근데 왜 왔어?”
나 : “제 차 키박스가 고장 나서요.”
할아버지: “어떻게 고장 났는데?”
나 : “키가 안 돌아가요.”
할아버지: “내가 한 번 봐줘?”
나 : “보실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 “보는 게 뭐 어렵나?”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봤던 기술자들처럼 한참 키를 돌려도 보고,
때려도 보고 하더니, 자기 가게로 돌아가서 이런저런 장비를 챙겨서 다시 나왔다.
그리고 한 10분 쯤 뚝딱이며 뭔가를 열심히 만지더니 돌아서서 이렇게 말한다.
할아버지: “일루 와서 키 돌려봐!”
나 : “네??? 네!!”
내가 가서 분해되어 있는 키박스의 키를 돌렸더니
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빙글 돌았다.
벼랑 : "우잉?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할아버지: “뭐가 어떻게 돼? 내가 고쳤지”
나는 너무 놀라서 이 양반이 도대체 뭘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서 장비를 슬쩍 훔쳐봤다. 할아버지는 영화에서
도둑들이 들고 다니는 자물쇠 따는 장비가 든 파우치
같은 걸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그 할아버지 가게의 간판을 봤다.
간판에는 아무것도 써져있지 않았다.
단지 창문에 조그맣게 열쇠가 하나 그려져 있고,
“열쇠 복사(Key Copy, Repair)”라고 써져 있었다.
나는 고마워하면서 물었다.
나 : “할아버지 얼마 드리면 돼요?”
할아버지: “알아서 줘”
나 : “에이, 그러지 말고 말씀해 보세요.”
할아버지: “그냥 200페소(5천 원)만 줘.
나는 키박스 분해된 건 못 붙여주니까 그건 자동차 기술자 불러서 고쳐..”
나 : “네,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500페소를 드리고 고맙다고 하고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돈을 많이 주냐는 듯이 날 쳐다보더니
키라도 하나 카피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됐다고 하고 기쁜 마음으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서 노래를 불렀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 처음 키박스를 분해했던 친구를
불러서 다시 키박스를 조립했다.
키박스를 원래대로 복원하는 자동차수리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보통 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는 질문이 잘못됐을 때가 많다”... 김어준
나는,
“자동차를 어떻게 고치지?” 가 아니라,
“자물쇠를 어떻게 수리하지?”라고 질문했어야 했다.
질문이 잘못 됐으니 답을 찾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2019년 어느 날, 세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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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차를 팔았다.
2010년 식 차를 2013년에 사서 어제까지 타고 다녔다.
아마 7년 쯤 탔나 보다.
이 차로 여행도 많이 했고 업무용으로도 요긴하게 사용했다.
차를 산 후로 차 때문에 곤란을 겪은 적이 별로 없다.
새차를 자주 하지 않아 지저분 할 때가 많았지만
늘 고맙게 생각하며 타고 다니던 차였다.
차가 늙고 마일리지가 높아 팔 때 좋은 값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차를 내놓자 이틀 만에 팔렸다.
돈이 급한 나를 마지막 까지 도와주고 떠난 것이다.
물건에 애착을 느끼는 편이 아닌데 차 키를 넘겨주고
돌아서는데 마음이 약간 뭉클했다.
이렇게 내 인생에 또 하나의 매듭이 생기나보다.
(2020년 6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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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만나게 된 모든 물건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다.
물건에는 역할이 있다.
역할이 끝난 물건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별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나씩 정리를 해야 비로소 또 다른 자신의 삶이 찾아온다.
‘정리’를 한다는 뜻은 ‘매듭’을 짓는다는 뜻이다.
한 단계가 끝난다는 매듭.
매듭이 있어야 다음 단계가 찾아온다.“
(곤도 마리에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