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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l 12. 2021

"제 혈액형은 'L형'인데요."

"혈액형이 뭐예요?"

"저는 L형이에요."

"엥? L형이라는 것도 있나?"


"ㅋㅋㅋ..."




솔직히 나는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부산에 30년 가까이 살았지만 한 번도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야구장에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부산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롯데의 성적과 주전 선수들의 프로필을 다 꿰고 있었다.


내가 알고 싶어 아는 것이 아니었다.

부산에 살면 이런 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부산에서는 주위에 야구 이야기가 둥둥 떠다니기 때문에 야구가

좋든 싫든 롯데 자이언츠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되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서울에 취직을 했을 때 누군가 내게

“야구 좋아하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야구를 무척 좋아하는 LG 팬이었다.

나는 야구 안 좋아한다고 했다.

그 친구는 부산 사람이 어떻게 야구를 안 좋아할 수가 있냐고 되물었다.

나는 부산 사람 전부가 야구를 좋아할 거라는 편견을 버리라고 했다.


하루는 그 친구가 주말에 있을 롯데와 LG의 서울 3연전에 대해서  

한참을 설명하기에, 나는 롯데의 주전이 어떻게 바뀔 거며 1, 2차전에는

누가 선발 등판을 하고, 3차전 선발이 부상 중이라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번 경기에서 롯데가 2승만 해도 선두 그룹에 합류할 수도

있다는 견해도 말했다.


그 친구가 다시 물었다.

“야! 너 정말 야구 안 좋아하는 거 맞아?”


그래서 내가 답했다.

“야! 나 야구 안 좋아해.

그래도 이 정도는 다 알아 부산 살면 그냥 그렇게 돼.”


서울에 있는 동문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중 한 명이 웃으면서 이런다.


“형, 우리에겐 롯데의 피가 흘러, 몰랐어?

형이 야구를 안 좋아하는 거 하고 롯데 응원하는 건 다른 문제야.

부산 사람 피에는 롯데 DNA가 있거든 그거 유전이야.

혈액형이 L형이라고 Lotte의 피가 흐른다고........ㅋㅋㅋ..”


"으~잉~~??"


아주 예전, 별다른 즐거움이 없던 시절, 사직구장 앞 주차장에는

'롯데 자이언츠' 주말 경기의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텐트를 치고

밤을 새우던 사람들이 있었다. 부산의 중소기업 사장들이 야구장

입장권을 보너스로 주던 시절이 있었고, 직원들이 돈 보다 더

좋아하며 그걸 받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 시절 그런 열정이 이해가 안 됐다.

"도대체 저게 뭐가 좋다고 저 난리들이지?"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인간이 뭔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알게 됐다.


평범한 일상에서 열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살면서 행복함을 느끼며 살 수 있다면 그것보다 멋진 삶이 어디 있겠는가.


https://youtu.be/6oSerCxLMZI


이 영상을 보면서 생각했다.

부산에는 정말 'L형'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 참 많구나.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참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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