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참을 수 없는 불리는 #1
https://brunch.co.kr/@hyorogum/112
(1부에 이어....)
학교 다닐 때 유행했던 멋진 제목의 번역 소설이 몇 있다.
“백 년간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가 그것이다.
이 책들은 책 좀 본다는 애들은 모두 옆에 끼고 다닐 정도로 유명한 책이었다.
물론 나는 옆에 끼고 다니지도 않았다.
2004년 즈음에 “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이라는 글의 아래 붙어 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라는 출처를 보고,
“야, 이번에는 이 책을 꼭 읽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생각만 하고 책은 읽지 않았다. 그러고 또 몇 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글을 쓰다가 갑자기 이 글을 인용할 일이 생겼다.
저장해 두었던 글을 베껴서 인용하고 보니 아무래도 출처가 또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책의 어느 부분에 이 장면이 나오는지 아무래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들었다.
당시 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외국이었기에 번역판 책을 구할 방법이
없기도 했지만 일상의 노예가 되어 있던 상황이라 여유 있게 글을 쓰거나 자료를 수집할
수가 없었다.
"나는 책을 못 구하니까 읽을 수가 없어”라고 합리화하며 은근슬쩍 넘어갔다.
글만 인용하고 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 오래된 책은 PDF 무료 파일로 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혹시나 하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검색해 봤다.
그랬더니 웬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원서(영문)와 한글 번역본이 동시에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작권이 어떻게 분류되는지는 모르겠는데 200 페이지가
넘는 PDF 파일의 영어판과 한글 번역본이 무료로 공개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일단, 파일을 내려받아 저장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정말 손이 안 갔다.
도서 리뷰들을 보면 한결같이 ‘어렵다’, ‘난해하다’, ‘재미없다.’, ‘좋은 책 같지만 다음에 읽어야겠다.’
이런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독서는 내게 노동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글을 빨리 읽지 못하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쉬운 책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평소에도 쉽고 재밌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 읽었기에 이렇게 생소한 느낌의 책은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이러니 제목부터 갑갑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책을
읽을 엄두가 났겠는가.
“이 책을 각 잡고 읽으면 아마도 노동의 강도가 너무 심해서 쓰러질지도 모른다."
"자신을 보호해야지... 암~~” 이런 변명으로 게으름을 정당화한 나는 책 읽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뭐 굳이 이걸 다 읽을 필요는 없잖아? 궁금했던 문장 검색해서 확인만 하면 되잖아.
읽었는지 누가 알겠어?” 하는 참으로 비겁한 생각을 해낸 것이다.
일단 PDF 리더로 문장을 검색했다. 행여나 문장을 찾으면 그 부분만 복사해서
붙이려고 페이지들을 하나씩 PDF 리더의 검색에 돌렸다. 그런데 아무리 검색을 해도
문장이 걸려들지를 않았다. 몇 번을 반복했음에도 비슷한 문장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200페이지 가까운 페이지를 속독으로 문장을 훑으며 넘겨봤다.
역시 눈의 검색에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남은 방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건 정말 못할 것 같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책을
빨리 읽지 못한다. 결국 “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이라는 글이 책의 어느 부분에
나오는지 찾는 것은 또다시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뭔가가 개운치가 않았다.
컴퓨터를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라는 제목이 계속 머릿속을 뱅뱅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다음날 다시 평론가들의 서평과 독자들의 리뷰를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 서평이나 리뷰에 글을 인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찾아본 것이다.
그러다가 알라딘 블로거의 게시물 중에서 이 글을 찾았다.
알라딘 블로거 ‘생글보미’님 글 중 발췌....
(전략)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실망감에 땅을 쳤지만.
내용의 부실함에 실망한 게 아니라
내가 그토록 찾았던 구절이 이 책에는 없었던 것이다!!!
난 오로지 이 구절에 감동해서 표지가 맘에 안 들고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손을 들었건만....
만인의 연인 '지식 인!!'에 찾아보니 해석상의 문제로
책의 내용이 다르다고 한다.
그래도 이건 너무 잔인하다. 어안이 벙벙.
그 구절을 소개하자면?
바로 이런 것.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섹스만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한 침대에서 밤에 같이 잠이 든다는 것은..
.....(후략)
이 글을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결국, 저 글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책에 나오는 문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블로거 생글보미”님 역시 나만큼 그 글의 출처를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책을 완독해 준 “생글보미”님께 감사)
어떤 서점의 리뷰 사이트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리뷰에 이글만
달랑 붙어 있는 곳도 있다. 리뷰어가 책을 읽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서평과 리뷰들을
종합해 보면 책의 내용과 “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것” 이 글은 연관성이 깊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럼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이 글은 누가 썼을까? 에 대한 의문은
결국 해소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가설이다.)
첫째, 책을 읽었던 독자 중 한 명이 책의 소감을 쓰면서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이 글을 스스로 작성해서 감상문에 덧붙였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라고
부제 같은 것을 썼는데 시간이 지나며 '복붙'하는 과정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라고
변질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복 부트' 한 사람이 실수로 (혹은 일부러) "읽고"를 "중에서"로
바꾼 것이다.
두 번째,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책이 유명하다 보니 한국어 출판이 되기 전에 원서
(체코, 프랑스어)를 읽고 번역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내가 읽은 PDF 파일이 그중 하나다.
시중에 판매되는 책이 나오기 전에(혹은 이후에) 누군가 원서를 보고 개인 번역본을 만들었는데 그 번역본에는 이 글이 실렸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건 '본문' 일수도 있지만, '머리말'이나 '역자 소감' 일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두 가지 정도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진실은 전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이 글이 고맙다. 이 글은 10년 넘게 내 블로그에 담겨서 인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을 보면서 느낀 또 다른 점은,
좋은 글은 시간이 지나도 감흥이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솔직히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사회에서의 위치가 바뀜에 따라 이 글은 내게 그때그때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물론 좋은 글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진짜 이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자기가 쓴 글이 이렇게 사이버 상에서 작자 미상으로 돌아다니고 있음을 알까?
보고 있다면 이 글을 인용하는 글을 볼 때마다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할 것 같다.
글을 쓴 작가가 이 글을 볼 가능성은 없지만 어쨌든 멋진 글 남겨 주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나도 이런 글 하나쯤 쓸 수 있으면 정말 정말 좋겠다.
(끝)
또 하나 신기한 글,
이런 글은 도대체 누가 쓰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