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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May 26. 2021

마지막 생일

[마지막 생일]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생일은 10년 전이다.

서울에서 묵을 곳이 없어 전전할 때 친구의 사무실 쪽방에서 혼자 맞았던 생일.


나는 살면서 생일상이나 생일선물 같은 걸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경상도 토박이 어머니는 아들만 둘을 키우며 살아서인지 아기자기한 삶을 추구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우리 집의 생일 풍경은 아침 밥상에 미역국 하나 더 올라오는 것 외에는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의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아버지의 생일에는 고기 조각이 덤으로 더 오르긴 했다.

당시 우리 가족에게는 ‘생일’보다는 ‘제사’가 훨씬 중요한 행사였다.

그렇다 보니 생일은 내게 그다지 특별한 날로 남아 있지 않다. 

 

내가 “마지막 생일”이라고 부르는 날을 기억하는 것은

그날이 조금은 특별했기 때문이다.

일과를 끝내고 사무실 문을 잠그고 간이침대를 펴는데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야이~~야, 미역국은 무운나?” (아들아 미역국은 먹었니?)

“무슨 미역국요?” (나는 완벽한 서울말을 쓴다.)


“오늘 니 생일인 거 모리나?” (오늘 너 생일이잖아 몰랐어?)

“그런가? 오늘 음력으로 며칠입니꺼?” (이거 서울말 맞나??)


“니는 니 생일도 모리고 지나가나?” (너는 생일도 모르고 지나니?)

“생일이 뭐가 중요합니꺼?” ('꺼?' 서울말???)

“크리스마스 같은 거 챙기지 말고 니 생일이나 잘 챙기라, 지금이라도 미역국 챙기 묵고..”

(크리스마스 때 놀 생각하지 말고 네 생일이나 잘 챙겨라.)

“나는 크리스마스 안 챙겨요. 그냥 하루 노는 날이지." (으잉? 아직 서울말 맞재?)

 

“그라이까 미역국 잘 챙기 무구라꼬, 그래야 내년에 잘된데이. 알았나?”

(그러니까 미역국 꼭 먹어라, 그래야 내년에 잘 된다. 알았지?)


“내가 알아서 하께. 걱정 마이소.” (내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마세요.)

 

경상도 네이티브 스피커와 세 문장 이상을 섞다 보면 서울말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된다.

아직 수련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어쨌든 이날 전화를 끊고 나가서 3분 즉석 미역국과 작은 케이크를 사 왔다.

혼자 미역국을 끓여 늦은 저녁을 먹고,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빌었다.

그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는다.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오만가지 유치한 짓을 다 했던 것 같다.

사진이 남아 있는데 가관이다.


(유치하기 그지없다...)


이날이 내가 기억하는 나의 마지막 생일이다.

이후에는 어머니도 내 생일에 전화를 하지 않았고,

나도 내 생일을 모르고 넘어갈 때가 많았다. 

(한두 번 그냥 넘어가다 보면 정말 신경 안 쓰게 된다.)


그 뒤 어머니는 가끔 이런 전화를 하셨다.

“니 생일 지난 거 아이가? 인자 생각났다. 미역국 뭇나?"

(너 생일 지난 거 아니니? 이제야 생각이 났어. 미역국 먹었니?)


내 생일이 여러 번 지난 것과 어머니의 기억력이 떨어져 가는 것이

큰 연관이 있다고 생각지 않기에 이런 전화를 받아도 별로 슬프지 않다. 

나는 여전히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도 날 사랑하는 것을 알기에 미역국을 

먹고 안 먹고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았다.

생일인데 축하 좀 해 달라고 하는 메시지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평소에 어머니와 하던 대로 문자를 보냈다.


“아직도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이 있다니~

생일은 혼자 즐기는 거 아닌 감?

생일은 축하의 대상이 아니라고....”


집으로 오는 길에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다가 카톡에 남아 있는 이 문자를 다시 봤다. 

그리고 그때서야 내게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헐~~ 생일이라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다른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며 살는구나... ”


가뜩이나 사회성이 결여됐다고 생각하는데 지난 문자들을 보니 기가 막혔다.

쿨~ 한 척하는 수컷스러운 행동이나 하는 그냥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


가끔 손가락이 통제가 안 될 때가 있다. 

잘난 척과 아는 척이 몸에 베여서 생긴 현상이다.

3초만 생각하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어도 이따위 글을 날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양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오늘 독거노인 걱정해주던 착한 사회복지사가 상처를 받았을 까 봐 좀 걱정이 된다.

앞으로 ‘3초 브레이크’ 수련을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문자 보낼 때 3초간 쓴 글을 다시 읽는 일을 '3초 브레이크'라고 한다.

디지털 세상이 됐으니 이런 교양은 이제 필수가 됐다.


시대가 변하면서 교양의 방식도 변한다.

교양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고 있으니 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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