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
[마흔 살에 떠나는 필리핀(Cebu) 어학연수 이야기]
#05. 1:1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1:1 선생님과 만남은 담임을 배정받는 것과 같다.
1:1 선생님은 가까운 거리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담임 같은 사람이다.
학원 규정은 선생이 마음에 안 들면 하루 만에도 바꿀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1:1 선생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인기 있는 선생님은 예약하고 몇 주를 기다려야 하는 일도 생긴다.
나의 1:1 선생님은 제니스(Jenice)이다. 제니스 선생은 우리 학원에서 제일 못생긴
여자 선생님이다. 게다가 학생들의 수업 평가도 별로였다.
나는 그녀와 하루 2시간씩 반 평짜리 방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영어로 대화를 한다.
내 담당이 제니스라고 하자 학생들의 반응은 이랬다.
“어휴~~ 헐~~~"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쁘면 뭐하냐? 사귈 것도 아닌데.”
그녀는 예쁘진 않지만 친절함과 예쁜 웃음을 가진 착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점이 좋았다.
처음에는 1:1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지만 닥치고 보니 할만했다.
교재를 읽고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 문장들을 이용해서 대화를 풀어 간다.
반 평짜리 방에서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과 2시간 정도를 있어보면 대화가
꼭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1 수업은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첫 번째 단계인 “익숙함”을 만들어 준다.
수업이 끝나면 대화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두 시간 동안 영어로 대화를 했다는 사실만 남는다.
어차피 말을 배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 방식의 수업은 외국어 공부에 매우 유용한 방법인 것이 분명했다.
내 입장에서는 그룹 수업처럼 다른 학생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수업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학원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며 지내던 어느 날, 원장이 지나가는 말로
“다음 주에 비슷한 또래 학생들이 두 명 올 거예요. 공부에 도움 좀 되겠네요.”라고 한다.
그 친구들이 주말에 도착을 했다. 한 명은 알렉스(Alex)라고 37세 된 친구이고,
한 명은 레이(Ray)라는 36세 된 친구였다. 우리는 학원 생활을 하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밥을 함께 먹고 친하게 지냈다. 심성이 착한 좋은 사람들이었다.
알렉스는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했고 꽤 괜찮은 기업에서 영업부 과장으로 있다가 때려치우고
어학연수를 왔다고 했다. 부인과 두 명의 자녀가 있음에도 과감한 결정을 하고 3개월 일정으로
어학연수를 왔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결정을 했냐고 물었더니 답은 이랬다.
“한국에 더 있다가는 죽을 거 같았어요."
"사람들이 직장에서 과로사하는 이유를 알겠더라니까요. "
"작년부터 불안감이 몰려오는데 미치겠더라고요.”
“회사 다니면 나중에 내가 어디 있을지가 다 보여요."
"내년에 내가 저기 있겠구나, 5년 뒤에는 저 자리 있겠구나, 10년 뒤에는 저기..."
"이런 식으로 미래가 보이고, 또 끝도 보이죠.”
“지금이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내 인생에 다음은 없지 않을까?”,
“고민이 시작되니까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최근에는 이대로 있다가는 과로사로 죽거나 술독에 빠져 죽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영어에서 손 놓은 지가 오래됐다며 내가 있는 기초반 1:4 수업에 배정되어
들어왔다. 레이의 경우는 실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나와 비슷한 것 같았는데
영어든 한국어든 말이 별로 없었다. 분명한 것은 누구 피해 줄 사람 아니라는 것
그리고 몸을 보니 운동을 꽤나 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과묵하고 친절하며
돈도 꽤 있는 그런 친구였다. 그 역시 함께 공부하게 됐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알렉스가 염탐만 하더니 좀 지나자 모든 수업이 알렉스 중심으로 흘렀다.
알렉스는 독일어를 전공해서인지 외국어에 대한 개념이 풍부했고 영어에 대한 기본기가 탄탄했다.
그는 금방 수업을 장악해서 이끌고 갔다. 처음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생겨서 좋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수업 중에 점점 들러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알렉스는 영업부 마인드가 있어서인지 학원 생활도 잘했다. 어린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고 원장
하고는 골프를 다닐 정도로 사교성도 좋았다. 결국 얼마 후에 그는 좀 더 높은 레벨의 수업으로
옮겨 갔다. 며칠 후 레이도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니저 말로는 1:1 수업 시간을 추가해서
그룹 수업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후 레이와는 한 번도 수업을 함께 해 보지 못했다.
레이와 대화를 해 보니 그 역시 영어 스트레스가 심해서 당분간 그룹 수업은 안 하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클래스메이트가 자주 바뀌는 생활을 계속해야만 했고, 상위 클래스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힘이 빠졌다. 의욕이 상실되니 느려 터진 인터넷으로 “영어 잘하는 법” 같은 걸 찾는 뻘 짓만
하다가 잠드는 날도 많았다. 가장 힘든 점은 "몇 달 후에도 똑같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실력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니 점점 더 의기소침해졌고 초조함이 몸을 죄어왔다.
물론 프랭크 선생이 가르쳐준 방식으로 노트 정리도 하고, 제니스 선생과 열심히 1:1 수업을 하고
있었지만 실력의 느는 걸 느낄 수 없었기에 가슴은 답답하기만 했다. 초보자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벽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문이 보이지 않으니 이 벽을 넘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막함에
자존감이 쪼그라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만 이런 걸까? 다들 그런 걸까? 젠장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누가가 시원하게 "답은 이거다." 하면서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매일 잠들었다.
조급함, 초조함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불안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이 밀려오면 노트를 펴고 글을 썼다. 쓸 말이 떠오르지를 않을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뭔가 써놓고 나면 마음이 좀 편했다.
하루는 노트를 펼치고 한참을 있어도 별다를 말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한동안 낙서만 하다가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
아마도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날이었던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