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를 모두가 체념하고 살아간다.
남편이 아니었으면, 결혼을 안 했더라면 내 인생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이미 예전에 돌아가신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음식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차례를 지내러 산에 올라간다. 작년에 묘소를 새로 단장했다며 자랑하시는 시아버지. 비석에 가득 새겨진 자손 명단을 흘깃 쳐다본다. 남자들 이름만 잔뜩 쓰여있다. 나는 딸이 둘이고 아들이 하나인데, 내 딸들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손들 명단에 적히지도 못한다. 차례상에 절도 남자들만 하고, 술잔에 술도 남자들만 따른다. 그 차례상에 올라간 음식들을 만든 여자들은 추운 겨울 묘지 옆에 덩그러니 서서 일련의 행위들이 끝나길 기다릴 뿐이다. 왜 내가 결혼이라는 것을 해서 이런 부당한 행위를 당하면서도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지 여러 의미로 화가 났다.
성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점심밥은 남편이 만들겠다고 한다. 약간은 화가 풀려 방에 누워 잠시 쉬고 있는 나를 거실의 안마의자에 누워계신 시아버지가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신다. 밥때가 되었는데 왜 누워있느냐고 물으시길래, 애기 아빠가 음식을 하기로 해서 저는 쉬고 있다고 했더니 시댁에 와서 드러누워 있는 며느리가 어디 있느냐며 솔직하게도 당신의 심경을 털어놓으신다. 제가 할 일이 없어도 부엌에 가있어야 하냐고 여쭈었더니, 가서 옆에 서있기라도 하란다. 어이가 가출을 하기 직전의 상황이었지만 나만 참으면 지켜낼 수 있는 가족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제가 굳이 부엌에 서있어야 아버님의 마음이 편해지신다면 그렇게 해드리겠다고 했더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하신다.
몇십 년간 남으로 살던 사람들이 결혼으로 인해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묶이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강자가 되어 권리를 누리고 누군가는 원치 않아도 강제로 약자가 된다. 이제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아마 대부분 그렇게들 살 것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당연하다는 듯이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꾹 참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며 다시금 생각했다. 내 자식들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결혼하게 되더라도, 어딜 봐도 비정상인 현상을 전통이라는 명분으로 정상인 것처럼 외면하거나 참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