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시 Jun 25. 2024

평범함이라는 이름의 행복

욕심내지 말기. 스스로에게 하는 말.

딸이 급하게 학교에서 조퇴해서 병원으로 왔다. 예약 환자가 많아서 3시간 이상 후에 오라는 이야기에, 집에 갔다 오기도 애매하고 병원에 계속 앉아있기도 힘들 것 같아 근처 에스프레소 전문 커피숍에 들어갔다. 아이스 초코라떼를 먹고 싶어 하는 딸에게 눈으로 레이저를 발사해서 자몽에이드로 급선회하였다. 당분으로만 따지면 초코라떼랑 그다지 다를 바가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비타민이 조금이라도 더 들어있겠지. 음료를 쾌속으로 마시고 함께 주문한 플레인 스콘을 흡입하는 딸에게, 커피숍은 비싼 음료 한 잔을 재빨리 해치우고 나가는 곳이 아니라 부동산을 초 단기간 대여하는 곳이라고 단단히 당부하였다. 천천히 먹으란 얘기다.


맞은편에 앉은 딸아이는 엄마에게는 별 관심 없이 핸드폰 액정 속의 친구와 대화하며 배시시 웃는다. 나 역시 딸에게 큰 관심을 바라지 않고 근처 풍경을 둘러본다. 액자처럼 보이는 네모난 창문 바깥으로 구름이 느릿하게 흘러간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바스락 소리가 아름답다. 조퇴하고 병원에 가려고 대기 중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참으로 평온한 일상이다. 병원에 갈 수 있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니 이것도 썩 나쁘지만은 않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게 이렇게 소중한 일이라는 걸 어릴 땐 미처 몰랐다.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오늘도 어제처럼 평온하기를 소망한다. 매일 밤 눈 감을 때마다 오늘도 어제처럼 별 일 없이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안도한다.


특이하고, 특별하고, 뛰어나고, 최고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필부필부, 장삼이사, 초동급부의 삶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아이들에 대한 욕심이 고개를 들려고 할 때마다 나 자신을 타이른다. 평범한 하루의 연속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고.


욕심내지 말자. 욕심내지 말자. 괜찮다. 다 괜찮다.

작가의 이전글 돈은 배신하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