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아픔의 연대에 대하여

패트리어트 데이 (Patriots Day, 2016)

by 효신

영화 '패트리어트 데이'는 2013년 4월 15일, 패트리어트 데이에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를 기반으로 한 재난 영화이다. 133분의 텐션이라는 포스터 속 광고 문구처럼 영화는 테러의 발생과 함께 꾸준하고 은근한 긴장감으로 극을 이끌어 가며 이야기의 진행에서 관심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단순한 실화 바탕의 재난 영화로 치부하기에는 품고 있는 매력 포인트들이 너무 많다. 어쨌든 귀차니즘의 극강을 달리는 내가 굳이 굳이 이렇게 영화 리뷰 포스팅을 남기고 싶었다는 건 최소한 나한테만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영화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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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어트 데이'에는 재난 영화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그 흔한 대통령이나 부통령, CIA나 FBI의 국장 같은 거물급 인사들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추모 연설을 하는 오바마의 당시 실제 영상이 등장하고 둘러앉아 회의를 하는 담당자들이 나오긴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수사 진행을 명령하거나 극 진행을 좀 더 간략하고 빠르게 하기 위한 역할에 그친다. 우리는 지금까지 재난을 다루는 영화에서 현장과는 동떨어진 채 책상머리에 마주 앉아, 혹은 안전한 지역으로 이미 대피한 국가 원수 간 화상회의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패트리어트 데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테러 발생 이전부터 테러 발생의 순간 그리고 최종적으로 범인 검거까지 정말로 현장에서 발로 뛰는 여러 직급의 경찰관들, 그리고 곳곳에 숨어 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재난을 해결해 나간다. 자기 지역 지리를 꿰뚫고 있어 범인의 동선을 바로바로 알아내는 경찰관, 총을 뺏으려는 범인에게 끝까지 저항하다가 순직한 경찰관,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으며 그 망할 놈들 (정확하게는 motherfucker, 배우의 fucker 발음이 찰지다) 꼭 잡아야 한다고 두 눈 똑바로 보고 말하는 납치 피해자, 경찰에게 이거라도 쓰라며 망치를 던져주는 시민, 범인을 향해 함께 총을 저격하는 시민과 덕분에 든든하다는 FBI 요원까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 혹은 그 이상을 해내며 보스턴의 시민으로서 마주한 테러를 함께 이겨나갔다. 결국 우리를 두렵게 하는 재난은 높으신 분들의 몇 마디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지만 연대하는 존재들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는 것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들이라고 두려움이 없었을까. 집에 돌아와 참사 현장을 목격한 트라우마로 바들바들 떠는 경찰관은 총을 들고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경찰관이기에 앞서 낭자한 피와 잘린 팔다리를 보며 무서워하는 한 명의 인간이었다. 테러범에 의해 죽은 동료가 맥박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는 경찰관은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겠지만 테러범 검거 과정에서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 역시 분명 느꼈으리라. 그러나 그 모든 본능적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보스턴의 경찰관들은 갑작스러운 호출 요구에 차를 돌리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으며 무전을 통해 들려오는 폭발음과 총격 소리 가득한 현장에 지원을 위해 달려갔다. 두려움과 위기의 순간에서도 그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며 물러서지 않는 것. 결코 쉽지 않은 그 일을 훌륭하게 해낸 당시의 보스턴 경찰관들에게 늦게나마 박수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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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는 911 테러 이후 미국 본토에서 발생한 최악의 테러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음에도 나는 이 영화를 접하기 전까지 이 사건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의 무지를 반성하며 테러 발생 날짜를 보니 2013년 4월 15일, 그리고 일 년 후인 2014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날이었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며 여러 의미에서 세월호 참사와 많은 비교를 하게 됐다. 영화 속 테러 수사는 사건 발생과 함께 바로 전담팀이 설립되며 각계의 전문가와 담당자가 바로 소집된다. 굉장히 넓은 공간에 수사팀을 꾸려지고 지휘관은 "분석팀은 저쪽에, 폭발물 처리반은 코너 쪽으로, 언론대응팀 당장 꾸리고 증거 감식반은 저기 벽 쪽에 자리 잡아."라며 세세한 부분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혼잡한 테러 현장 속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휘관이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기본적이고 중요한가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렇다면 세월호는 어떠했는가? 누구보다 먼저 국민 앞에 등장해 현재 상황과 향후 계획을 설명하며 해결을 위해 전 국가적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어야 할 국가 원수는 참사 발생 후 7시간이 지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아직까지도 그의 행방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명확한 책임자 없이 부유하는 대응팀이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리 만무했고 우리는 그렇게 침몰해가는 세월호를 마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세월호의 모습, 뉴스 자막으로 뜨는 구출 몇 명, 실종 몇 명 등을 보며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는 것뿐이었다. 국가는 재난 해결의 상황으로부터 무책임했고 결과적으로 그 재난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는 국민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테러로 죽은 8살 아이의 시체를 증거 체취 전까지 옮길 수 없어 길바닥에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스턴 경찰은 죽은 아이의 곁에 남아 끝까지 아이를 지켰고 옮겨지는 아이의 시체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였다. 세 번째 폭탄이 터질지도 모르는 긴박한 테러의 현장에서 시민들은 경찰을 도와 다친 사람들을 구해냈고 결과적으로 보스턴은 테러라는 공동의 시련으로 더욱 굳건해지며 하나가 되었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처럼, 비록 테러는 보스턴을 아프게 했지만 보스턴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테러의 아픔과 공포를 이겨냈다. 그러나 세월호를 대하는 우리는 어땠는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퍼부으며 살아남은 이들과 유족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지겹다며 이제는 잊자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가혹한 말들을 쏟아냈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를 겪은 보스턴 시민들은 시련을 함께 이겨내며 하나가 되었지만 우리는 세월호를 철저히 그들의 참사로 분리하며 선 긋기에 여념이 없었다. 국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무책임했다면 우리는 세월호에 대해 무자비했다.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재난 영화가 나올 수 있겠는가? 보스턴처럼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쓰러진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연대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 그럴 수 없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세월호 참사를 우리가 다 함께 겪어야 하는 아픔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보스턴의 시민들은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과 그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 역시 세월호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잊지 않겠다'는 말이 무섭다. 보스턴 시민들은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를 결과적으로 '아픔'으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테러는 아픔을 주었지만 결국 이겨냈고, 그들을 더욱 강하게 한, 'stay strong'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보스턴 시민들에게 마라톤 테러는 잊지 않을, 잊을 수 없는 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세월호는 영원히 아픔이고 봉합되지 못한 상처이다. 아픔은 누구나 피하고 싶고 잊히길 바란다. 우리가 진정으로 보스턴 사람들과 같은 의미에서 참사를 잊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분명 잊혀갈 세월호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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