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도둑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by 송새벽


"안녕하세요, 욱이 어머님. 오늘 욱이가 학원에 안 와서요."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이 필요했기에 아이와 통화를 하고 바로 전화를 드리겠다 말을 하고 서둘러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일 있니? 어디 아픈 건 아니지?"

혹여나 학교에 돌고 있는 세균성 장염에 걸린 것은 아닌지, 요 며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아들이었기에 덜컥 겁부터 났다.

"그냥... 가기 싫어서..."

라는 대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나는, 가빠진 숨을 잠시 고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6학년이 된 만 12세의 아이는,

이미 작년부터 사춘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혼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대답을 잘 안 하거나 어쩌다 대답을 할 때에는 반항적인 말투로 응수를 하는 정도의 조짐이었다.

그렇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고 정말 학원이 가기 싫은 날에는 전화를 해 반쯤 애교가 깃든 징징 모드를 발동하곤 했어서 정도에 따라 학원을 쉬게 해 주는 일도 더러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도 없이 집으로 가버린 아이가 영 낯설기만 했다.


허덕이며 억지로 조금씩 그림책 작업을 하는 중에,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라 여길 수도 있는 이 '사건'으로 나는 작업창을 모두 닫고 컵에 물을 가득 담아 욱이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아... 난 내가 바본 줄 알았지.

가서 뭘 배우는 건지 모르겠어.

가는 의미가 없어.

하고 싶은 게 없어.

생각을 하라고? 어떻게?

책을 읽고 싶지 않아, 엄마도 내가 안 읽을 거 알잖아.

...내가 안 지킬 거 같아서... (계획을 세워 엄마에게 말하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아니

그냥

자존감도 떨어지고 자신감도 없는 거 같아.


두 시간을 통화하며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들에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에 생각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 책을 한번 읽어볼게.


평소에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아이에게 내가 추천한 방법은 바로 책을 읽는 것.

'읽고 싶지 않다'는 아이의 말을 예상했음에도 적잖이 놀랐지만, 개개인에 딱 맞는 정답은 없을지라도 읽으며 생각하다 보면 공감과 위로와 함께 길이 보일 거라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서둘러 작업실을 정리한 후 아이가 좋아하는 햄버거와 치킨을 포장주문하고 기다리는 2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물음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상담센터에 찾아가 볼까?', '아이가 싫어하면 역효과가 날 텐데...', '양육태도에 문제가 있나?', '상담은 내가 먼저 받아야 하나?'


'하필, 이렇게 바쁠 때...',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터지지...?', '작년 전시 전에도 난리통이었는데...', '이번에도, 순탄치가 않구나...', '그림책이고 나발이고 아이에게 집중해야 하나?'


이렇게도 가열차게 짧은 시간 동안 온갖 물음들로 가득했다.



나의 사춘기도 참으로 고약하고 오랫동안 이어졌다.

말 그대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 싫었고, 창피했다.

뿐만 아니라, 잘난 언니들 밑에서 언제나 난 하찮은 존재처럼 여겨졌다.

거기에 늘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언제나 빨리 집을 떠나고만 싶었다.


남자아이를 한 명 키우는 다방 주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반년을 밖에서 살다가 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4명의 어린 딸들을 앉혀 놓고 유언을 했더랬다.

엄마는 그런 남편도 남편이라고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고, 살만해진 아버지는 다시 폭력을 휘두르며 도돌임표 같은 일상이 되었다.

그것을 못 참았던 나는, 울며불며 그런 아버지 앞에서 내 옷가지를 들고 나와 가위로 난도질을 했었다.

내 마음속에서 아버지를, 엄마를, 나를 난도질했던 분노에 휩싸였던 시절이었다.

그때가 내 나이 만 15세.




포장한 음식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책을 읽어보겠다던 아이는 넷플릭스로 주술회전을 보고 있고 퇴근한 남편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기 방에 콕 박혀 게임을 하고 있었다.

실로 한숨이 절로 나오는 모습에 식탁 위에 음식을 내려놓고 방에 들어와 침대에 발랑 누웠다.

'지금 이야기해봐야 역효과만 날 뿐이야.'

'우선, 내 마음을 진정시켜야지.'


"이제 목욕하고 자야지!"라고 매일 하던 말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데, 졸졸졸 물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다행이다. 그래도 할 일은 하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오는 참 아이러니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가 목욕을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아이 방에 들어가 보니,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읽다 만 흔적이 보였다.

하... 그래도 시도를 했네.

풋... 그런데 하필이면《모모》를!



학원을 모두 쉬게 해 주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 생각 없이 게임만, 유튜브만 보는 아이가 너무 한심하고 답답했다.

그나마 학원에 가는 시간만큼은, 그 시간에 억지로라도 앉아 공부라는 것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 시간이 자기에게 무의미하다는 아이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수학과 영어, 그리고 아이가 선택한 미술.

딱 이 세 개의 학원을 다니는 아이는 주변 아이들에 비해 진짜 널널한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에게는 아니었던가!

그래, 그렇게 힘들다면 잠시 쉬어가자.
하지만 3월은 이미 학원비를 모두 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쉴 수는 없어. 그러니 이번 달은 가야 해.
너에게 얼마만큼 시간을 주면 되겠니?
두 달?
그래, 그럼 4월과 5월 두 달 동안 네가 원하는 대로 모든 학원을 멈춰 줄게.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지낼 건지 계획표를 짜서 보여줘.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네게 가장 행복한 일은 무엇인지 등을 찾아보도록 해.


'미하엘 엔데'의《모모》에 나오는 회색 양복을 입은 시간도둑.

나는 이미 성인이 되어서, 흔하디 흔한 성인이 되어 버려서, 나의 어린 시절을 잊었다.

내 아이가 불행했던 나처럼 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내가 《모모》에 나오는 회색 양복을 입은 시간도둑이 되어버린 생각에 쓴웃음이 나왔다.

'생각'을 하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KakaoTalk_20260315_170820386_01.jpg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