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으로 대하는 마음
"이야~ 너무 기특한데!"
남의 아이는 작은 일에도 대견하다.
감기가 며칠 만에 나았다는 이야기였을 뿐인데도 괜히 대견하게 느껴진다.
남의 아이는 작은 일에도 기특하다.
밥을 잘 먹어도, 인사를 잘해도, 감기가 빨리 나아도.
그런데 나는 내 아이에게도 이렇게 말해 준 적이 있었을까.
나는 내 아이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걸까.
옆집 아이를 바라보는 그 따뜻한 시선으로 내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게 맞을까.
아이가 만으로 4세에 크게 아팠다.
중환자실을 거쳐 병원에 한 달을 입원해 치료를 받고, 그 후로 3년을 꼬박 약물 치료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완치판정을 받고 얼마나 울었던지, 그날이 아직 생생하다.
임신 중 8~9개월 차에는 조산끼로 인해 한 달 정도를 꼬박 누워만 지냈고, 신생아라서 그리고 아기라서 어떤 상황이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상황들로 늘 눈에 불을 켜고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아프고 난 후로는 아이가 잠들면 두 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숨소리가 규칙적인지 확인하려고 귀를 가까이 대곤 했고, 숨이 고르게 들리면 그제야 마음이 조금 내려앉았다.
완치 판정을 받은 지 오래지만 아이 눈이 잠깐 풀려 보이면 나는 아직도 숨이 멎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13년째 엄마로 살고 있는 중이다.
2019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엄마를 모시고 막내 언니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매사에 짜증과 자격지심,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엄마와 함께 여행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름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며칠 우리 집에서 머물다가 대전인 엄마집으로 내려가시는 계획을 세웠더랬다.
몇 년 만에 처음 온 막내딸 집에서 엄마는 입버릇처럼,
"막내 언니네 집은 네 식군데 집이 너무 좁더라, 너네 집은 세 식군데 집이 왜 이렇게 넓니? 너네 집이랑 언니네 집이랑 바뀌어야 맞는데..."
"네가 이렇게 넓은 집에 살 필요가 있니?"
"언니네 집이 더 넓어야 하는데..."
다소 감정에 북받친 나는, 원래 생각 없이 필터링 없이 쏟아내는 엄마의 말들을 아는대도 불구하고 듣고 있을 수가 없어 그만하라고 버럭!
"나는 엄마딸 아니야? 내가 잘 살고 있는 게 그렇게 아니 꼬아?"
서로에게 날 선 말들을 퍼부었다.
"네가 성격이 지랄 맞아서 욱이가 아픈 거야! 너 때문에 니 성격에 사달이 났던 거지! 잘 클 애를 네가 지랄 떨어서 그렇게 만들었어!"
"벼락 맞을 년!"
그 뒤로 10만 원을 쥐어주며 집 밖으로 엄마를 내쫓았다.
나는 그걸 마지막으로 다시는 엄마를 초대한 적도 초대할 일도 없게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었을까?
그건 내가 인정받고 싶었던,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덜 자란 아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서 뭘 배우는 건지 모르겠어.”
라는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먼저 올라왔다.
학원을 가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그 이유가 더 화가 났다.
“가는 의미가 없어.”
그 말이 나를 건드렸다.
그 다음에는 당황이었다.
아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그리고 조금 지나자 걱정이 밀려왔다.
인정과 사랑이 고팠던 나였던 지라, 내 아이가 인정과 사랑에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순간순간 나의 결핍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를 이렇게 지키고 있는데! 왜 그걸 몰라주니?'
하는 서운한 감정도 불쑥불쑥 올라온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의 결핍을 채우고 있는 걸까?
자식을 귀한 손님 대하듯 하라
그런데 나는 가끔 그 손님에게 내가 받지 못했던 사랑까지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