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산에 오지 않는 게 좋아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中

by 송새벽
"조금만 걸어도 금세 길을 잃어버리는 게 산이니까."

극 중 은섭이 자신을 찾아 밤중에 산을 오른 혜원에게 이야기한 부분이다.


마음에 밤이 찾아왔을 때, 길을 찾겠다고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오히려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빨리 길을 찾아야 해!”
스스로를 몰아붙일수록 어느새 더 깊은 어둠 속에 서 있게 된다.




"엄마가 이렇게 바쁜 게 혹시 싫으니?

너와 조금 더 같이 있어 주었으면 좋겠니?"

"......"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3월인 이번 달은, 4월에 있는 전시회를 위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거였다.

작업의 속도가 더뎌도 '송새벽'이라는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위해 어떻게든 멱살 잡고 끌고 나가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딱 그런 상황 말이다.


그러나,

나의 3월은 '밤의 산'이 되었다.



"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아."


딴 집 살림을 하다 돌아온 아버지와의 숱한 부딪힘으로 가족들은 결국 나의 의견을 수용해 주었다.

그래서 국민학교 4학년 나의 전학 첫날을 기억해 주는(파란 꽃무늬 원피스에 단발머리를 반묶음 하고, 눈은 쭉 찢어진 아이가 전학을 왔는데 그게 너였어!) 친구의 집에 얼마간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은 1년에서 2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녔고, 그로 인해 대천 국민학교->동산 국민학교->석교 국민학교->중리 국민학교를 거쳐 마지막에는 법동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1981년 생으로 국민학교를 졸업한 세대다.)

유일하게 전학이 없던 시절은 중학생 때뿐이었다.


나의 친구는 4학년에 전학 간 석교 국민학교에서 만났다.

신발도 못 신고 온 가족이 아빠를 피해 대문 밖으로 도망 나오던 일이 자주 있던 그 시절에 나의 피신처가 되어 준 친구였다. 2년의 짧은 만남 속에 우린 참 많은 것들을 나누었던 참 힘들고 애틋했던 나의 어린 날.


그 친구 집에서 반년 정도를 보내고 돌아왔던 그 시절,

나의 밤은 깊은 산속에서 걷고 달리고 굴러 떨어져 피투성이가 되곤 했던 파란만장함의 연속이었다.

"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아."

라고, 나를 늘 염려하던 친구.

커다란 나무가 되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던 나의 친구.

그 시절, 감사했던 것은 집을 떠나 있는 것을 수용해 줬던 가족과 나를 받아 준 그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족보다 친구가 좋았다.



"엄마가 이렇게 바쁜 게 혹시 싫으니?

너와 조금 더 같이 있어 주었으면 좋겠니?"


반반이겠지.

이제 엄마, 아빠보다 친구가 좋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다. 혼자 있고 싶은 생각도 많을 터였다. 그럼에도 (아주 감사하게도) 엄마와의 시간도 소중히 생각하는 아이다. 그래서 아이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stance를 취해야 할 것인가!

'송새벽'이라는 작가로서의 길에서 하고자 하는 것들이 많아 욕심을 부려 무리하게 세웠던 계획들의 수정이 필요했다.

지금 중요한 것들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차근히 풀어가자 마음을 먹고 진행하던 워크숍의 출판사 대표님을 만나고 돌아왔다.

4월 전시 합류는 잠정 보류.

잘 안 풀리던 작업이었지만, 이렇게 멈추게 되니 나만 도태된 것만 같은 마음에 우울감이 찾아왔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혁신초등학교로, 학교장 재량의 것들이 많아 다른 학교에 비해 안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을 차량 이동거리 30분 내외에 있는 대치동으로 학원을 보내는 부모들이 많아진다. 교육열이 결코 낮지 않은 동네다.

이런 동네에서 중심을 잡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부모가 불일치되는 교육관을 가진 우리 집은 더욱이 힘들다.

아빠와 엄마가 같은 교육관, 양육태도를 보여도 쉽지 않을 사춘기일 터인데 너무나 다른 아빠와 엄마, 거기에 더 나아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직 간접적 push를 받는 내 아이는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나는 잘하는 게 없어.

나 머리 나쁘잖아, 아니야?

결국 하다 말 텐데, 하는 의미가 없어.


말 끝마다 "너 바보야?"라고 말하는 아빠를 가진 아이는 내가 아무리 채워 주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좌절감을 안고 살겠지.

그래도 나는 마음껏 반항이라도 하며 살았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새삼 내 아이가 안쓰럽다.


욱아,

아직은 꿈이 없어도 괜찮아.
너는 아직 잘하는 게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다 해보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거든.
엄마도 한참 동안 뭐가 되고 싶은지 몰랐어.
그냥 이것저것 해보다 보니까 좋아하는 게 생기고, 그다음이 조금씩 보이더라.
그러니까 지금은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해보는 쪽이 더 중요할지도 몰라.
잘하는 걸 찾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니까.
그리고 이건 꼭 말해주고 싶어.
너는 이미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그래서 조금 느려도 괜찮고, 중간에 멈춰도 괜찮고, 다시 시작해도 괜찮아.

너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는 중이야.



사춘기라고 어찌 매일매일이 한밤중이겠는가!

고요한 새벽도 찬란한 아침도 맞이하다가 다시 밤이 찾아오는 반복이지 않을까.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다 보면
반드시 아침은 오게 되어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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