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있니?

내가 받았던 사랑의 기억

by 송새벽

"나 몸이 좀 이상해. 속이 메슥거려."

아침부터 아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때면 오만가지 생각이 휘몰아치듯 떠오른다.


학교에 장염 돈지 얼마 안 지났는데, 장염이면 어떻게하지?

학교고 나발이고 병원부터 가야 하나?

오늘 학원들 다 취소해야 하나?

나의 오늘 일과는 어쩌지?

오늘 은행일도 보려고 했는데.

많이 안 좋은 게 아니면 일단 학교를 보내야겠지?

조금만 아프다고 자꾸 결석하게 해 주면 안 되는데.

혹시 꾀병 아니야?

꾀병도 실제로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어.


"많이 안 좋아? 토할 것 같니?"

하고 물어보기 전, 그 짧은 시간에 내 머릿속은 이미 하루를 다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걱정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불안을 키우고 있었을까




부모가 되어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부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렇지만 나의 과도한 걱정이 아이에게 썩 좋지만은 않으리라.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조금만 열이 나면, 학교에 전화를 하고 병원에 데리고 가고 학원들도 모두 취소한 채 아이를 보살폈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금세 멀쩡해져서 좋아하는 게임도 하고, 에니매이션도 보고, 밥도 잘 먹다가도 밤이 찾아오면 다시 열이 오른다. 정말 신기하게도 낮에 멀쩡한 아이를 마주하면 '보냈어야 해.'라는 마음이 절로 들다가 아침이 오기 전 새벽녘에 다시 38도 이상의 열이 오르면 또 학교에 전화를 하는 반복의 일들이 일어났다.

아이가 크게 아팠던 일이 나에게도 PTSD처럼 작용해 과도한 반응을 종종 보이게 된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몸이 조금만 안 좋아도 결석을 하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을 이미 눈치채고 있는 나여서 이제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습관이 되게 하지 않으려고 이제는 조금 아픈 정도로는 학교에 꼭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도 몸이 많이 안 좋으면 보건실에 먼저 가봐."

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몸은 괜찮아?"하고 먼저 물어본다.


'널 사랑해서 염려하고 있어.'

아이가 자신은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사랑하고 있는데, 아이는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까?



유일하게 내가 아버지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이 하나 있다.

연축주공아파트에 살았던 고등학교 1학년.


어려서부터 불안도가 높고 잔병치례가 많았던 나는, 감기에 걸렸다 하면 편도가 부어 고열에 시달렸다.

평소에도 워낙 편두통도 심한 편이어서 그렇게 감기에 걸리는 날이면 두통과 고열에 손하나 까딱할 수 없는 몸이 되곤 했다. 그리고 내 몸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흡사 환각증세까지 보이는 일이 자주 있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끙끙 앓고 있던 나에게 나가온 아버지는, 내 머리맡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이마에 손을 얹었다.

무섭고 싫기만 했던 아버지의 손이 따뜻하다고 느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아버지는, 내 이마에 자신의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막내딸이 이렇게......


그것 하나가 뭐라고 그렇게 쉽게 따뜻한 손의 온기를 전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온기로 사랑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아버지는 자신의 그 손을 뜨겁게 휘두르며 살았을까.



아이가 성인이 되어 이성을 대할 때에 나오는 모습은, 어린 시절 성별이 다른 부모와의 관계가 밀접한 영향을 끼친다.


나 같은 경우, 성인이 되어서 이성과의 관계가 썩 순탄치는 않았다.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 남편과의 skinship이 부담스럽다.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달라서 이기도 하고, 최초의 이성인 아버지와의 skinship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비해 남편은 skinship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다. 이는 나처럼 폭력가정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유년기에 충분한 사랑을 받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나뿐인 외동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키우셨겠지만, 성장과정에서 '혼자서도 잘 커준 고마운 아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사실 충분한 skinship이 없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다만, 기질적으로 표현을 하지 못한 아이였다는 것을 몇 년 전 부부상담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아마도 이 부분이 남편으로 하여금 skinship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인이 되어 맺는 관계 속에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성이 다른 부모뿐만이 아니다. 성이 같은 부모와 형제, 자매와의 관계와도 밀접한 양향을 받는다. 그로 인해 연인, 배우자만이 아닌 모든 인간관계에 영향을 준다.

"나는 잘 모르겠어. 싸우고 혼나고 자랐어도 난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거 같은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건강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넌 참 행운아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아이에게 충분한 skinship을 하고 있는가?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skinship의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이건 달라져야 하는 거지 멈춰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나도 어느새 멈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한 번의 포옹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어깨의 토닥임도, 손을 마주 잡는 일까지 하루 종일 어떤 것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서로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고, 마음의 시간도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사실이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내 아이임에도 순간순간 어색하고 낯설고 조금은 징그럽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 놓고 나니, 반성의 시간이 찾아온다)

나의 결핍을 물려주지 말자 다짐을 하면서도 어쩌면 나는 물려주고 있었구나.
관계 속에서 건강한 skinship이 얼마나 중요한데!

"오늘은 아이를 꼭 안고 등을 토닥여 줘야지."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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