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하나

빛과 그림자

by 송새벽
초 하나 / 송선미


초 한 자루가
그림자를 일으켜 세운다

내가 어둠 속에서
벽 앞에 섰을 때

나의 등 뒤에서

- 동시집 《마트료시카 꺼내기》 中 -


몇 년 전에 방송되었던 "환혼(빛과 그림자)"은 장욱을 빛(욱, ‘빛날 욱’), 낙수/진부연을 그림자(영, ‘그림자 영’)로 이름부터 이미 서로를 비추는 관계로 설계된 드라마다.

원래도 판타지를 좋아하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어쩌면 유치하다 평가될 수 있는 이 드라마 속에 많은 철학이 담겨 있다. 그중 '빛'이 있는 곳에 항상 따라오는 '그림자'에 대한 드라마 설정값과 비유가 작가의 영역을 다시금 되짚어 볼 만했다.

드라마를 볼 때만 해도 '내 안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생각들로 꽉 차 있었는데,

송선미 시인님의 동시집《마트료시카 꺼내기》의 <초 하나>라는 시를 보며 '내'가 아닌, '나의 아이'에 대해 그리고 '부모로서의 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너를 비추는 존재,
그것이 부모가 아닐까?




아이는 만들기를 퍽 좋아한다.

이미 초등학교 3학년 즈음부터 이케아 등 DIY가구들이 배송되어 오면 옆에서 곧잘 도왔고, 5학년이 되어서는 혼자 뚝딱뚝딱 나보다 더 잘 조립하는 아이다. (내가 화지와 색연필, 물감등을 보관하는 이케아 서랍장은 거의 아이가 만들었으니, 이건 참 대단한 일!)

아이가 주 2회 다니던 미술학원에서는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은 만들기를 한 것들을 집에 가지고 왔다.

재활용품들을 이용해 만든 실제로 작은 돌멩이를 날릴 수 있는 투석기, 이쑤시개 화살을 날릴 수 있는 활, 캅집에서 꺼내지는 칼 등 대게 남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만들어서 자랑스레 보여주고 작동법도 알려준다.

'내 새끼 잘하네 오구오구' 해 줄 수는 있겠지만, 사실 엄청 잘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만큼 조금은 솜씨가 있다.

나는 딱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니던 학원들을 돌며, '당분간 쉬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아이가 끝나는 시간이 맞아 집으로 돌아오며 지나가는 말처럼 툭 하고 물어보았다.

"넌 나중에 뭘 하고 싶어?"

얼마 전까지 하고 싶은 게 없다고 이야기하던 아이였어서 정말 아무런 기대 없이 건넨말이었는데,

"공예"

하고,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내 어릴 적 꿈은 '치과의사'였다.

이유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원체 고르지 못하고 삐뚤빼뚤 서로가 잘났다고 앞다투는 모양새인 나의 '치아'가 한 몫하지 않았을까도 싶고 형편이 어려워 교정은 꿈도 못 꿀 상황이어서 더 그랬을까도 싶다.

어쨌든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얼마나 잘해야 하는지와는 상관없는 그야말로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어린이였던 내 꿈은 '치과의사'였다.


나의 두 번째 꿈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내 방'이 없던 나였기 때문에 난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했다. 방개수, 문의 위치, 줄줄이 비엔나소시지 같은 집을 그려보기도 했고, 지하부터 2층에 다락방까지 있는 대저택을 꿈꾸기도 했다. 그리고 내 방, 나만의 방에 어떤 가구를 어떻게 놓을 것인지, 동선이 어떻게 될지를 그려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의 상상 속에서 우리 가족 엄마, 아빠, 언니들이 모두 등장은 했지만 누구 방 누구 방을 위해 등장했을 뿐, 관계의 상상은 없었구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내 인생 두 번째 학원인 '입시미술학원'에 등록하게 된다.

셋째 언니가 미술을 좋아했지만, 형편도 어려웠고 흔히 미술 하는 사람을 '환쟁이'라 비하하던 아빠의 가치관으로 꿈도 못 꿀 일이었어서 포기를 해야만 했었기 때문인지 내가 하겠다는 미술을 전폭 지지해 주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입시미술을 시작했고, 다른 상황들을 겪으며 내 꿈과는 상관없는 '의상&텍스타일 디자인 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난,

어릴 적 꿈꾸어 왔던 것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꿈은 꿈일 뿐인데, 왜 자꾸 아이에게 꿈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인지.



아이가 '공예'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내 머릿속에는 '공예'를 하기 위해 가야 하는 학교 학과들이 그려진다.

대학을 안 가면 못하는 것인가!

그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당연히 지나야 하는 코스처럼 학과들의 명칭, 종류, 커리큘럼등이 어떨지 생각하는 내 모습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아, 이런 나란 사람...'


앞서 가지 말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가 주자 다짐을 하면서도, 내 마음은 이미 앞서가고 있다.


길을 먼저 그리고, 방향을 정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미리 생각해 버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꿈이라는 것이 꼭 그렇게 선명하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꿈을 찾았다고 해서 그 꿈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좌절을 겪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더 나아가기도 하며 전혀 다른 길이 열리기도 했다.

잘하는 일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충분한 힘이 되었다.


나 역시 글을 써본 적도, 배워본 적도,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이 살다가
지금은 잘 쓰고 싶고, 못 써도 여전히 좋고, 막히는 순간마다 또 다른 길을 찾아가며 살고 있다.

마흔이 넘어서야 찾은 꿈이다.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생각하면 한참 늦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공예”라고 말하던 그 순간, 내가 먼저 그려버린 수많은 길들이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졌다.



송선미 시인님의 동시 <초 하나>에서,

초 한 자루가 그림자를 일으켜 세운다는 말에 큰 울림이 있었다.

나는 너를 밝히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너의 그림자를 세워주기 위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자꾸 아이의 앞에 서서 환하게 불을 밝히려고만 했다.

어둠을 없애주고 싶었고, 헤매지 않게 해주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덜 흔들리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아이의 그림자를 눕혀버리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앞을 환하게 비추는 빛이 아니라, 자기 그림자를 마주하고 그 그림자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등 뒤에서 조용히 켜져 있는 초 하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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