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이의 시
어느덧 우리 집의 가족회의가 100회를 맞이했다.
아이가 3학년때부터 시작해 여행, 행사 등의 이유로 몇 차례 쉬는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한 덕에 100회까지 오게 되었다.
그 100회의 가족회의, 내 차례가 되어 어떤 이야기를 할까 며칠 고민 했다.
아이의 두 달의 시간을 이야기할까, 내 작업물을 공유할까, 무얼 할까.
괜히 아이의 시간을 거론하지 말아야겠다.
말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아이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10여 일 정도 후부터 이안 시인님의 동시 수업이 시작된다.
그림책 어법과도 닮은 동시.
시그림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내가 만들고 싶은 그림책도 궁극적으로 시그책과 가깝지만, 표현에 한계가 너무 뚜렷했고, 동시라고 해 봐야 어릴 때 배웠던 쌀알보다 작은 지식이 전부였다는 것들을 깨달았을 때부터 배워야겠다란 생각을 했었다.
그 동시 수업이 곧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이번 가족회의 주제가 정해졌다.
동시.
긴 글을 읽는 게 어렵다면 짧은 동시를 같이 보는 게 어떨까?
이야기를 나누고 동시를 한 편 쓰게 해야지.
동시 <童詩>란,
아이에게 맞추는 시가 아니라 아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다.
설명 대신 여백을 남기고, 가르침 대신 발견을 일으키며, 아이의 옆에 서서 함께 바라보는 언어다.
동시는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짧고 간결하게 표현된 시를 말한다.
주로 일상적인 소재나 자연, 상상력을 자극하는 주제를 다루며, 어린이의 감성과 상상력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동시는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아이들이 시를 통해 언어 감각을 익히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 시절,
흔히 여학생들이 그러했던 그 시절에 나는 친구들과 참으로 많은 손 편지를 주고받았다.
안타깝게도 내가 쓴 편지는 상대방에게 있을 것이기에 무엇들을 썼는지 알 순 없지만, 나에게 있는 친구들의 편지를 보면 능히 짐작이 가능하다.
나는 아직 편지함을 가지고 있다.
두 달 전쯤인가.
내가 힘들 때 자기 방의 한 자리를 내어준 그 친구가 작업실에 방문했다.
아버지 장례식 이후로 처음 본, 참으로 오랜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우리의 이야기는 깊었고, 애틋했다. 친구가 다녀가고 난 창고에 쌓인 짐들 속에서 편지함을 꺼냈다.
참 별 것 아닌 것들에 서로에게 서운함을 전하고, 소소한 일과를 나누고, 수업시간 재미없다 졸리다 투정하고, 보고 싶다 언제 오냐 나누던 편지들이다.
용혜원 시인님의 시, 나태주 신인님의 시, 원태연 시인님의 시까지 많은 시인님의 시들도 필사해 보내주던 시절이었다.
지금 보면 이불킥에 홍당무처럼 빨개질 얼굴을 할만한 자작시도 보내곤 했다.
그 시절의 고민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 아이는 어떤 고민과 생각들로 가득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될까?
일요일마다 "동시마중 레터링 서비스 블랙" 카톡이 온다.
지난 일요일 아침에 온 동시 우미옥 시인님의 <하얗다>라는 동시를 보며 아이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송선미 시인님의 <초 하나>를 보며 두 동시가 가진 이야기를 아이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결정한
'동시 한번 같이 볼래?'를 제목으로 진행한 욱이네 가족회의.
두 동시를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감수성과 공감성 제로인 남편, 생각하기 싫어하는 아이. 가족회의를 준비하며 내가 기대한 모습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어떤 느낌이든 생각이든 상관없다고는 했지만...
하얗다 를 백치미
초 하나를 무섭다
라고 대답을 하는 부자를 보며 아, 아, 아, 그렇구나...
그래도 동시를 써보라고 내어준 종이에(창작이 어렵다면 필사를 해도 괜찮아) 끄적끄적 거리는 두 사람이 조금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이가 쓴 반려묘 솜뭉치에 대한 동시, 가족의 모습을 끄적거린 남편의 동시
솜 / 욱이
귀엽다
만지작거리다가
쓰다듬고 깨물어
버리고 싶다
귀엽다
오늘도 끄적이며 / 남편
오늘도 끄적인다
마누라의 업무를
아들의 시간을
나의 생각을
고양이는 그것들을 씹는다
풋
"생각을 좀 해!"
라고 얼마나 많이 이야기했던가!
정작 내가 아이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생각은 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
아이 나름의 이 화법이 퍽 귀엽고, 본인의 감정에 충실히 적었다는 생각에 기특하다.
좋아서 계속 만지고 싶고, 좋아서 깨물고 싶고, 좋아서 견디기 힘든 마음.
아이의 언어는 늘 그런 식이었다.
우리가 쓰는 말보다 조금 거칠고, 조금 덜 다듬어졌지만, 그 안에는 훨씬 솔직한 감정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동안 아이에게 ‘생각 좀 해’라는 말을 쉽게 꺼내왔다.
하지만 돌아보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정답처럼 말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여겼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은 틀린 말이라고 넘겨버렸던 것은 아닐까.
생각은 가르쳐서 자라는 게 아니라 안전하다고 느낄 때 조금씩 꺼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오늘도 어디쯤에서 자기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걸 조금 덜 방해하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