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못하는 마음
"제빵사가 되고 싶다고 해요."
학부모 상담에서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무척 신선했다.
지난 공개수업 때에는 아이가 원치 않아서 가지 않아서 몰랐던,
욱이의 담임 선생님.
임용고시를 보고 첫 담임을 맡게 된 듯 앳되보이는 예쁜 선생님을 처음 보고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아이의 입을 통해 무척 '젊으신 선생님'이라 듣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선생님을 보니 나도 모르게 이모미소가 띄어진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5년째 근무 중이고 그전에 다른 학교에도 있었다는 이야길 듣고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니,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하시는 마음이 보였다.
인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 수록 그 사람의 태도가 저절로 겉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아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조금은 보이게 되어 있다.
태도가 사람을 만든다.
문득, 선생님의 눈에는 '내 아이'가 어떻게 보일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졌다.
6학년이 된 지 이제야 한 달이 되었다.
이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23명의 아이들을 모두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집에 가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나요?
아이가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누군지 알고 계신가요?
학교가 끝나고 학업에 도움이 되는 공부는 어떤 것을 하고 있나요?
한 달의 시간 동안 학교 생활에 대해 아이와 나눈 대화라고는
선생님이 젊다. 5학년 때보다 나쁘지 않다.
반 친구들도 나쁘지 않다.
공부는 싫다.
쉬는 시간이 제일 재미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의 표현들에는 부정의 언어를 깔고 있다. 예쁘게 포장하려고 해도 결국엔 날것의 거친 언어들이 대부분이다. 날이 갈수록 선뜻 물어보기 겁이 난다. 아이의 부정적 언어들 만으로도 나는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대화를 멈출 수는 없지.
아이가 원한다면 나도 심플하고 건조하게 툭툭 이야기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할 터였다.
다정하고 세세한 방식이 오히려 '귀찮게 왜 이러지?'라는 결과를 초례할 수 있다는 것을 '사춘기'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나.
중학교 1학년,
처음으로 다니게 된(셋째 언니와 넷째 언니가 다니던) '진학학원'은 나에게 즐거운 곳은 아니었다.
이미 빛나는 언니들의 그림자에 가려진 존재였다.
벚꽃이 흩날리던 봄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일주일즈음의 그 시점에 나는 학원을 같이 다니던 친구와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늦은 저녁에 학원 셔틀버스 운전기사님을 설득해 신탄진 벚꽃 축제에 갔다.
밤의 벚꽃은 밝았고, 사람들은 행복했다.
그 짧은 기억을 끝으로 나는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허락받지 못한 일탈의 끝이다.
나의 부모님은 나의 학교 생활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야말로 모범생들인 언니들에 비해 나는 그저 몸이 약하고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자꾸 나쁜 친구들만을 사귀는 돌연변이 같은 아이였다.
이 부분에 나 또한 일정 부분 보탬이 되는 사건들을 만들기도 했지만, 어디 처음부터 그러했겠나!
늘 10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오는 언니들 밑에서 내가 어쩌다 100점짜리 시험지를 자랑스레 들고 들어와도 그것은 전혀 칭찬받을 일이 아니었고, 그런 경험들이 쌓여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부모님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칭찬받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으리라.
"네가 5, 6살 때 동네에 살던 시영(?) 이를 그렸는데, 어찌나 똑같던지!"
엄마는 아직도 가끔 그렇게 말하곤 하니까 말이다.
"두 달의 시간을 주기로 해서 지난 월요일부터 따로 공부를 하고 있지는 않아요."
방과 후에 아이가 따로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시는 선생님께 짤막하게 내막을 말씀드리고 아이가 원하는 시간인 두 달을 주고 있다 대답을 했다.
"6학년은 5학년 때와는 조금 달라요. 공부를 하지 않으면 학습에 따라오기 힘들 수도 있어요. 그 부분에서 뒤처지지 않게 제가 조금 더 신경 쓰겠습니다."
1학년부터 시작해 6학년이 되면,
계단을 6개 오르는 것과 같을까?
그 6학년이 된 계단은 밑의 계단들에 비해 더 높은 계단인 것인가?
얼마 전부터 나는,
'그림책 작가', 그리고 창작을 하는 사람 '작가'가 되기 위해 이제 한 계단 올라왔구나.
다음 계단은 언제쯤 오르게 될까? 이 계단을 얼마나 올라야 문을 열게 될까?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던 터라 '5학년때와는 다르다.'라는 부분에서 다시금 조급함이 밀려왔다.
물론, 공부를 잘한다면 좋겠지만,
저는 아이가 건강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당당하게 이야기는 했지만,
아이가 너무 뒤처지면 어떻게 하지?
불안한 마음이 뒤따라 오는 걸 지우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이다.
"얼마 전에 꿈에 대해 적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런데 욱이가 제빵사가 되고 싶다고 적었더라고요. 그런데 어머님 말씀을 들어보니, 욱이가 요리에 관심이 있었구나 싶어요."
방과 후에 아이의 일과를 물어보셔서 평소 아이가 하는 것들을 이야기했었는데, 간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이야기에 반가움을 표하는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제빵사'는 또 언제지?
나한테는 '공예'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말이지.
궁금해서 물어본 아이에게서 예상치 못한 답변이 흘러나왔다.
"공예가 생각보다 빡센 거 같아서, 쓸게 없어서 썼어."
내가 시작도 하기 전에 아이에게 어려움을 심어준 것인가!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아 시작도 하기 싫어졌다니.
인생을 날로 먹으려 하는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 그런데 있잖아, 세상에 쉬운 일은 없어."
...
말을 꺼내놓고도 괜히 했다 싶었다.
이 말은 늘 어른들이 편하게 쓰는 말이고, 아이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말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으니까.
아이는 대답 대신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아이는 쉬운 걸 찾는 게 아니라 그냥 하기 싫은 걸 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기 싫은 공부, 비교당하는 자리, 어차피 안 될 것 같은 것들.
그래서 시작도 안 했고, 그래서 더 멀어졌고, 그래서 더 자신이 없어졌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또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그래도…"
이 말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몰라서 그다음을 삼켰다.
아이의 시간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나는 벌써 결론부터 말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