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는 연습
"오늘 엄마가 갔으면 좋겠니, 안 갔으면 좋겠니?"
매년 학년이 바뀌는 3월이면 열리는 공개수업 날이다.
공개수업에 가려고 옷을 어떻게 입을까? 흰머리가 너무 많이 났는데, 미용실을 들렀다 갈까?
고민하는 시즌이다.
작년에도 엄마가 공개수업에 가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 아침을 먹는 아이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이여서,
"그래? 엄마가 안 갔으면 좋겠는 거야?"
"응."
"그래, 알았어.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아이가 커간다는 건 이런 것일까?
공개수업뿐만 아니라, 엄마와 함께 하는 것들을 퍽 좋아하던 아이가 이제는 혼자서 그리고 친구들과 하기를 원하는 건 성장의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그 과정들에 엄마의 몫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음에 못내 서운하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이 끝나는 시간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던 아이가 며칠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제 다시 전화를 주는 아이에게 고마웠다.
'아, 엄마를 이해해 주고 있구나.'
"엄마가 하는 말들이 잔소리 같아 듣기 싫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구나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야."
라고 이야기 했던 아이에게
"엄마도, 널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라고 대답을 했었는데,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아이가 '보다 나은 존재'로 여겨졌다.
이 사소함이 날 웃게 만든다.
3x5 칸의 책장에는 그림책들이 한가득 꽂혀있다.
무작위로 손에 잡히는 대로 어떤 규칙도 없이 꽂혀 있는 책들은 꼭 필요할 때 보이지 않는다.
'아, 나 그 책 분명히 있는데...'
그림책들을 다 빼서 출판사별로 'ㄱ~ㅎ'까지 정리를 했다.
장장 4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지난번에 찾았던 책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래 내가 원하던 스타일이야. 하며 앉은자리에서 글과 그림을 다시 펼쳐 보기도 한다.
각 출판사 이름이 정확히 보이지 않는 책들이 많아 판권정보를 찾아가며 정리를 하고 나니, 조금은 시원하고 뿌듯하다.
삶도 가끔 이렇게 정리되는 순간을 맞는다.
책장을 정리하듯 나는 내 역할도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코피를 자주 쏟았다.
아주 어릴 때는 코를 파서이기도 했지만, 아무 이유 없이 코피가 나는 아이였다.
지혈도 잘 되지 않아 한번 코피가 터지면,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다 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날도 하교 시간즈음 시작된 코피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쉬이 멈추지 않았다.
하교시간에 손에 들려 있던 선생님이 주신 두루마리 휴지는 집에 도착할 때에 휴지심만 남게 되었고, 그렇게 들어선 집은 텅 비어 아무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걱정해 주지 않았다.
우산이 없는 비가 오는 날, 눈이 너무 많이 내리는 날, 대모로 인해 길마다 뿌연 연기가 가득 한 날, 어떤 날에도 부모의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납치가 될 뻔한 날에도, 보호는 없었다.
나의 유년시절, 부모로부터의 방치만큼은
절대 대물림 하지 않으리라.
나의 이 결심이 어쩌면 아이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부모의 역할도 달라져야 하는데, 머리로는 알고 있는 것들을 실천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이가 나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도 나는 가끔 서운하다.
아직도 나는 아이가 나를 가장 먼저 찾았으면 좋겠고, 나에게 가장 많이 기대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이 마음이 아이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쉽게 따라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조금 늦게 반응하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먼저 묻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지 않고, 아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연습.
나는 아직도 아이의 손을 완전히 놓지 못한 채 놓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그래도, 아주 조금씩은 놓아보려고 한다.
나는 아이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지켜보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