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산모님’이라고 했다
39주 동안 행복한 엄마의 뱃속에서 아기는 큰 이벤트 없이 잘 자라주었다. 아기가 평균보다 큰 편이라 병원에서는 예정일보다 일찍 유도분만을 권했고, 나는 내가 시간과 날짜를 정할 수 있다는 말에 바로 수긍했다. 언제 진통이 올지 전전긍긍하며 기다리는 것 보다는 준비된 상태에서 아기를 낳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휴직이 시작 되자,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놀았다. 언제 혼자 돌아다닐 수 있을지 모르니 원없이 돌아다녔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아기를 낳은 선배 엄마들은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기이니, 마음껏 즐기라고 했다. 나는 그 무거운 배를 들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친구와 점심을 먹고 예쁘고 힙한 걸 구경하고, 평일 낮을 즐겼다. 10년 동안 평일 낮을 온전히 즐긴 적이 없다니, 조금 억울해 하면서 SNS에서 핫하다는 곳은 모조리 돌아다녔다.
입원하는 당일이 되어서야 맘카페를 이리저리 뒤지며 캐리어에 짐을 쌌다. 여행을 앞둔 것처럼 설레기도 했다. 이렇게 둘이 집을 떠나면, 2주 뒤에 아기랑 함께 셋이 돌아오겠구나, 하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산모가 100명이면, 출산 이야기도 100가지라던데 굳이 내 출산 이야기까지 더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 날의 감각만은 생생하다. 짧게 말하자면 상상했던 것보다 고통스러웠고, 난산이었고, 그래서 결국 수술실로 들어갔고 무척 추웠다. 아주 밝은 수술실 침대 위에 누워 의료진들이 내 몸을 이리저리 흔들더니 아기를 쑤욱 꺼냈다. 아기는 빨갛고 회색이었다. 갑자기 차가운 세상으로 꺼내져 으앙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를 나에게 보여주었고, 모든 게 다 정상이니 잠깐 재워주겠다고 했다.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1인실이었다.
수술을 했지만 산통을 온전히 겪은 탓에 온 몸이 부서진 것처럼 욱신거렸고, 살짝 움직일 때마다 수술했던 부위가 찢어지듯 아팠다. 3.5kg의 아기가 쑥 나가고 양수도 빠지고, 태반도 빠져나왔을 텐데 내 배는 아직도 부풀어 있었고 심지어 얼굴과 손과 발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붓고 있었다. 몇 시간에 한 번씩 간호사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수술 부위를 살피며 수액이 잘 들어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 덕에 잠을 잘 수 없었고 수술 부위를 보자고 할 때마다 나는 병원복을 걷어올려야 했다. 엉덩이 밑에는 내가 흘리는 피를 흡수할 패드가 깔려 있어서 엉덩이가 계속 축축했다. 씻고 싶었지만 앞으로 며칠 동안은 씻을 수 없다고 했다. 하긴, 고개를 살짝만 움직여도 배가 아파서 씻을 수도 없었겠다. 그날, 그 시간부터 나는 내 몸을 내 뜻대로 쓸 수 없었고 내 시간을 내가 설계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 수술한 환자였고, 아기를 낳은 산모였다. 동의도 거절도 하지 않은 채 그 모든 순간들을 통과했다. 내 몸이지만 내 것이 아닌 시간들이었다.
병원에서는 나를 ‘산모님’이라고 불렀다. 누구누구 씨, 과장님, 팀장님이 아니라 산모님이라고 불리니 처음에는 나를 부르는 줄 몰랐다. 누가 나를 산모님, 이라고 부를 때마다 ‘아, 나구나’ 하고 의식해야 했다. 산모라는 호칭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래야 이 모든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몸을 만졌고, 보여주기 싫은 부분도 들여다 보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무언가 빠르게 적었다. 내 일인데 내가 배제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어깨를 움츠릴 수도,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냥 가만히 내 몸을 내어준 채 이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다행이 회복 속도는 빨랐고 나는 금새 일어나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아기를 보고 싶었지만, 아기를 보는 시간도 병원에서 정해주었다. 수강신청을 하는 것처럼 아기를 볼 시간을 예약했고 10분 전부터 앞에 서 있었다. 하루에 5분 아기를 유리창 너머로 구경했다. 아기도 나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아기를 구경하는 5분 동안 내내 자고 있어서 아쉬웠다. 내 아기인데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보지도 못하게 하는 병원 시스템에 구시렁거리며 병원에서의 4박 5일을 보냈다.
이 모든 일이 끝난 뒤, 조리원이라는 기이하고 이상한 공간에 나 혼자 남겨졌다. 작은 아기들이 통 유리방에 누워 울거나 자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땡기는 배를 부여잡고 방 안을 이리저리 걸었다. 시간이 되면 원장이 들어와 아기 상태를 브리핑 해주었고, 내 옷 앞섬을 열고 가슴을 주물렀다. “어머, 완모할 수 있겠는데?” 완모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지만 원장이 축하해주길래 감사하다고 했다. 마사지를 받으러 가면 마사지사가 내 속옷을 내려서 수술 부위를 살펴보기도 했고 나를 이리저리 만져주었다. “다리 붓기는 다 빠졌네요” “살짝 척추가 휜 거 같은데 원래 그랬어요?” “키가 커서 한참 걸리네, 키가 몇이에요?” 내 몸에 대한 이런저런 품평을 듣는 경험이 좋진 않았지만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시기라는 것을 받아들인 이후라 한귀로 흘려넘겼다.
조리원에서는 아기를 내 방에 하루에 두 번 데려다 주었다. 너무 작고 연약한 존재, 소중한 내 아기. 만지면 깨어질까봐 침대에 눕혀놓고 여기저기 구경만 했다. 속싸개를 살짝 풀어서 완두콩 같은 발가락을 구경하기도 했고, 가만히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을 쓰다듬기도 했다. 품에 안는 것도 어색했고 혹시나 떨어뜨릴까봐 무서웠다. 너구나. 내 뱃속에서 꿈틀거리던 게 너였구나. 반가워. 잘 부탁해. 앞으로 잘 살아보자. 내 모든 게 망가졌는데, 너는 그걸 알까? 아마 모르겠지. 그저 속절없이 귀엽구나.
어느날 밤, 누구의 아기인지 모르는 아기가 신생아실에서 울었고 나는 조리원 침대에 누워서 조용히 울었다. 저 작은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나는 직감하고야 말았다. 이 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가 없겠구나, 나는 저 아기를 키워내기위해내 모든 것을 포기하겠구나, 아기의 세상은 당분간 나로 채워지겠지,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까지 그 밤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기가 잠든 신생아실 너머로 나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