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춘 줄 알았는데

행복한 임신부이자, 행복한 직장인

by 효나니

아이를 갖기로 한 건 아주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결혼 생활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큰 굴곡도 없었다. 돌아갈 가정이 있다는 것, 책임을 져야 할 가족이 생겼다는 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곧 든든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내가 일에 집중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나에게는 든든한 내 편, 나의 가족이 있고, 믿을 구석이 생긴 것이었으니까. 자연스레 가족을 확장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마음먹기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남편에게 내 생각을 알렸다. 22년 3월, 그렇게 새로운 내 가족이 생겼다.



22년 6월, 이제 어느 정도 형태를 알아볼 수 있게 된 아기


처음 겪는 변화들이 밀려왔다. 입덧은 정말 죽을 맛이었고 한동안 방울 토마토와 오이냉국만 먹었었다. 우리 회사는 아름다운 미술관이 있기로 유명해 광고 촬영이나 드라마 촬영이 잦았다. 그때마다 사무실 밑에는 밥차가 와 종일 밥 짓는 냄새, 고기를 볶는 냄새를 풍겼다. 그런 날에는 화장실을 계속 들락거렸고 앞자리 동료의 걱정스러운 미간을 마주해야 했다.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고기 냄새에 시달린 날에는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가 해준 오이냉국이 먹고 싶어. 고춧가루도 살짝 뿌려서. 내가 하면 그 맛이 안 나.” 엄마가 되었더니, 내 엄마가 더 생각났다. 입덧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나는 프로직장인으로서, 방법을 찾아냈다. 밥차가 오는 날이면 외근을 잡는 것, 점심 식사는 요거트를 먹는 것. 나는 일하는 임신부, 일하는 엄마로서 완벽하고 싶었다. 임신을 했다고 일을 소홀히 한다는 평가를 받는 건 죽어도 듣기 싫었다. 아기가 내 일을 방해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도록 몰입하려했다. 오히려 내 일이 아기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었다.


몇 없는 임신 때의 내 사진


나날이 몸은 무거워졌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가볍고 단단했다. 회사는 내게 배려를 건넸고, 동료들은 어느 때보다 다정했다. 일에 몰입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2주에 한번씩 산부인과에 가서 아기가 얼마나 자랐는지 보는 게 낙인 나날들이었다. 임신 7개월, 이제 누가 보아도 임신부임이 드러날 정도로 배가 커졌다. 엘리베이터가 없었던 회사 건물을 오르내리는 것이 살짝 부담스러워지면서 책 더미를 들기도 버거워졌다. 사려깊은 동료들은 나 대신 사은품 박스를 옮겨 주고 책을 차에 실어주었다. 내 배에 손을 얹고 아기한테 따뜻한 말을 한마디씩 해주기도 했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아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활력이 넘치는 워킹맘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임신부이자, 직장인이었던 그 시기를 버텼다.


임신을 알린 후, 시아버님이 급하게 나가서 사오신 축하 꽃다발


스스로를 출판 마케터이자 기획자라고 생각했다. 프로젝트를 만들어냈고, 동료들을 설득해 그 프로젝트를 실물로 세상에 내놓았다. 작은 굿즈를 만들 때에도 가장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형태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수많은 레퍼런스들을 찾았다. 독서 경험을 확장 시킬 수 있는 굿즈를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하물며 이렇게 작은 굿즈도 오래 고민하고 만들었는데, 내 아기는 더 할 것이었다.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는 내가 세상에 선보인 것 중 가장 귀한 것이었다. 제작 기간도 가장 오래 걸리고, 가장 오래 고심했으며, 외주를 맡길 수도 없고, 가장 고통스러운 기획물이 될 것이었다. 아기를 만나는 날이 점점 더 다가올수록 조금씩 긴장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무엇이든 보통 이상은 해냈기에, 출산도 육아도 잘 해낼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차올랐다. 아마 이때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전성기였을지도 모른다.


KakaoTalk_20250626_101853367_17.jpg 이제 옷으로 가려지지 않을 만큼 배가 나온 시기


출산 예정일 2주 전,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1년 있다가 돌아올게요. 그때도 같이 일해요.”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당연히 돌아올 거라 생각했고, 그때도 내 동료들은 여전히 이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1년 후 나는, 부랴부랴 출근준비를 마치고 잠에서 덜 깬 아기를 안고 어린이집에 맡길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활력 넘치게 일을 하고 틈틈이 아기 사진을 보며 기운을 낼 것이었다. 6시 퇴근을 하자마자 어린이집에 가서 아기를 데리고 나와 놀이터에서 앞머리에 땀을 송송 내며 놀아줄 것이었고, 아기를 재우며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물어볼 것이었다. 아기는 가끔 회사에 가지 않으면 안되냐고 묻겠지만, 나는 부드러운 말로 ‘엄마는 일을 해야 행복해~ 언젠가 너도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거야~’라고 가볍게 달래줄 것이었다. 늘 바빠서 미안한 엄마라 주말엔 여기저기 놀러다니다가 월요일에 회사에 오면 가볍게 숨을 한 번 내쉬고 일에 몰두할 것이었다. 그렇게 믿었다. 이것이 내가 예상했던 아기와 함께하는 내 새로운 일상이었다. 내심 뿌듯했다. 내가 그려낸 미래가 꽤 괜찮을 것 같아서. 동료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책상 위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내 명함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이제 당분간 멈추겠지. 나는 잠시 멈춘다고 생각했다. 그게 정말 잠시일 줄 알았다.


마지막 출근 날, 내 자리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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